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8호(200610) 칼럼
정보통신부에게 소비자는 봉인가?

전응휘 / 평화마을 피스넷 사무처장   chun@peace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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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고 이제는 상식처럼 이야기하지만, 필자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IT 강국이라는 미사여구에 속아 늘 당하고 사는 한심한 소비자"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많은 이들은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되어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IT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생각이 늘 맞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IT 강국이 되기 위해서 소비자들이 늘 손해를 밥 먹듯 봐야 하는 사회이다.

실제 실례를 들어 보자. 최근에 통신위원회는 LGT의 기분존 요금제가 원가 이하의 요금으로 LGT의 기분존 이외의 가입자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차별했다는 이유로 요금제를 바로잡으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겉으로는 이용자 차별을 내세웠지만, 실제 통신위가 문제 삼았던 것은 기분존 요금제가 유선전화서비스 사업자들과의 가격경쟁을 점화시키게 되면, 유선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의 몰락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특정 요금제가 소비자에게 과도하게 비싼 요금이 아니라 싼 요금제도이므로 고치라는 통신위의 심결 내용이다. 한마디로 다른 유선통신사업자들이 망하게 되니 소비자에게 싼 요금제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게 통신서비스 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독점 내지는 시장지배사업자의 요금제에 대한 심결이었다면 그런대로 납득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문제의 사업자는 이동통신 시장에서 3위 사업자, 유무선 통신서비스 시장을 총괄해도 4위 사업자인 LGT였다.

바로 지난주에 정보통신부는 소위 상호접속료를 새롭게 개정하여 발표하였다. 상호접속료란 서로 다른 사업자들이 다른 사업자의 망에 접속할 때 서로 지급해야 하는 요금으로서 통신요금에서 자기 회사의 망 운영비와 영업비에 타 업체의 상호접속료를 더했을 때 원가가 나오게 된다. 따라서 유무선 통신사업자들의 상호접속료가 바뀌면 원가의 한 요인이 바뀌게 되므로 당연히 유무선 통신비용 또한 바뀌게 마련이다. 일부 업체의 상호접속료가 이번에 약간 높아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상호접속료는 새로운 투자요인이 없는 한 계속 낮아지게 마련이어서 이번에도 전반적으로는 낮아진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보통신부는 유무선 통신비용(유선에서 무선-KT, 혹은 무선에서 유선-SKT)은 바꾸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원가반영요인이 바뀌었는데도 최종 소비자요금은 바꾸지 않겠다니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를 일이다.

이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이동통신에서 발신자번호표시(CID) 기능은 이동통신 음성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소통되는 정보에 포함되어 있어서 결코 별도의 부가서비스라고 지칭할 수 없고 추가 원가발생 요인도 거의 없는 것인데도, 아직까지도 정통부는 이를 이동통신 기본요금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한해 CID요금을 무료로 제공했던 SKT를 제외한 2개 이통사은 1천억이 넘는 요금을 소비자로부터 추가로 징수했다. 작년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이동통신 단말기 보조금 금지정책도 결국은 보조금의 근절을 기대하기보다 이동통신 업체들의 보조금 지급수준을 줄여 이동통신 업체들의 이윤 폭을 높이는 것이 본래 목적으로서, 사실상 일반 이용자는 업체들이 영업비를 줄이는 그만큼 이용 후생의 손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런 모든 정책을 시행할 때마다 정보통신부는 "소비자를 위해서"라는 해괴한 명분을 덧붙인다. 소비자를 위해서 소비자가 손해를 보라는 말이니 참으로 어찌 이해해야 할는지 당혹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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