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8호(200610) 과학에세이
고도를 기다리듯

이성우 / 공공연맹 사무처장   kambe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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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TV를 켰더니 어떤 과학자가 출연하여 패널들에게 질문공세를 받고 있었다. 일전에 영화배우 정진영과 축구선수 이영표가 각각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얼마나 대중적인 인기와 관심을 모으고 있기에 과학자가 저런 인터뷰 프로그램에 나왔을까 하고 지켜보았다. 앞서 정진영의 솔직한 모습이나 이영표의 겸손한 자세에서 좋은 인상을 얻었기 때문에, 진작 알고 있던 그 과학자의 이름에 새로운 이미지 하나 추가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은근히 일었다.

자연에 대한 무지와 여성을 억누르고 비하했던 마초적 삶을 반성하고 환경주의자와 여성주의자로 탈바꿈한 그의 인생역정은 미국 유수의 대학 박사학위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만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합을 지향하는 ‘통섭(統攝, consilience)이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도 학제간 연구조차 빈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 현실에서 자못 흥미로웠다. 실험실의 벽에 갇혀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대다수 과학자들이 인문학자, 사회과학자들과 전공의 장벽을 넘어 자유롭게 교감한다면 과학계도 크게 달라질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가 ‘알면 사랑한다’하는 믿음을 강조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그만 맥이 좀 풀렸다. 그것은 통찰력을 가진 인문학자의 분위기와 달랐고, 잘난 체하는 사회과학자의 면모나 남다른 세계관을 가진 자연과학자의 것도 아니었다. 천박하고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허덕이며 살아가는 평범한 지식노동자가 지닌, 그야말로 소박한 인생관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느낌! 어쩌면, 배신이었다. 그래서 그를 좀 더 알고자 곧바로 책을 한권 샀다. “제게는 소박한 신념이 하나 있습니다. ‘알면 사랑한다’는 믿음입니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시기한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돌에 맞아 싼 사람도 왜 그런 일을 저질러야만 했는지를 알고 나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들 심성입니다.” 그가 쓴 글의 일부이다.

그는 어릴 적에 자연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그것을 파괴하는데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고 했다. 이제 그는 학문(동물행동학, 사회생물학)을 통해서 자연(동물)을 잘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으며, 거기에서 인간사회에 적용할 교훈을 적잖게 찾은 듯했다. 그러나 앞에 인용한 글에서 나타나듯이, 인간 ‘사회’가 아닌 사회 속의 ‘인간’들을 개별적으로만 들여다보고, 단지 개체 상호간의 작용으로서 好惡와 사랑을 얘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는 동물‘사회’ 연구를 통해 인간이 먹고 먹히는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통섭’적으로 알아낸 것도 아니었고, 그 대안사회를 제시하고 실천하는 과학자는 더욱 아니었구나!

내가 잠깐이나마 가졌던 바람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TV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 다 그런 거지 뭘, 하고 나를 타박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스타과학자만 섬기고 받드는 사회에서, 사회모순을 갈파하고 저항하는 지식노동자로서 과학자들의 모습이 대중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은 때로 고도를 기다리듯 간절하다.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중에서 싹수가 보이면 참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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