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8호(200610) 만화뒤집기
문도 열어주기 싫은 외판원! 근데 내가 그 외판원이라면?
『꽃분엄마 파이팅!』 (글 이은하, 그림 화성/ 한겨레출판)

신성식 / 우리만화연대 사무국장   toonor@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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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판원을 정말 싫어한다. 이유는 이렇다. 살 맘도 계획도 없는데 누군가 와서 현란한 말솜씨로 도저히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산 물건이 제값을 하면 다행이다. 하지만 물건도 시원찮을 때는 정말 화가 지나쳐 분노가 느껴진다. 주로 나의 어머니가 그렇게 당하셨다. 그렇게 산 믹서, 쥬서, 녹즙기, 장판, 갖가지 고기 꿔 먹는 팬, 그릇, 세제 등등등... 울화통이 터진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낮에 동네 주택가에 있다보면 참 할일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도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방문판매는 아니더라도 동네에 차를 끌고 와서는 무료로 뭐 준다고 불러놓고 물건 팔기는 다반사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다. 문제는 그들이 쓰는 상술이 마치 무슨 선심 쓰듯, 큰 봉사나 하는 듯, 베푸는 듯 하면서 현혹시킨다는 것. 걔 중에 그것을 사들고 돌아갈 때 표정이 이 비싼 걸 이렇게 싸게 사서 당장 물건 판 사람이 안 팔겠다고 잡으면 어쩌나 하며 쿵쾅거리는 가슴을 빠른 걸음으로 달래며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있다. 나는 아직도 그들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다. 자기 돈 주고 사면서 그렇게 황송해 하다니... ‘좌아~ OO해서 특별히 OO을 나눠드리고 있으니 OO으로 나오세요. 몇 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이런 확성기 소리가 들릴 때면 정말이지 ‘동네 사람들, 저기 사기 치는 놈들 또 왔으니 조심하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었다. (잠깐 내가 지금 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정신 차리자.)

늘 그렇지만 머리말이 너무 길었다. 아무튼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내가 물건 파는 입장이 되면 어떨까? 아마도 외판하는 나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야속하다 얘기하겠지... 위에서는 길길이 날뛰어 놓고 말이다. 허허, 사는 게 그런가 보다.

여기에 ‘가장으로서는 무능한 남편’과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았지만 사랑만큼은 듬뿍 받고 자란’ 꽃분이와 그들의 아내이자 엄마인 ‘에너자이져, 독립문을 접수한 방문판매의 여왕으로 등극’한 주인공이 나온다. 아, 내가 싫어하는 방문판매업자!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꽃분엄마의 직업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파는 것이 책이라는 것. 아무튼...

하지만 꽃분엄마의 직업이 처음부터 외판원은 아니었다. 일단 만화에서 나오는 그의 첫 직업은 남편의 일정 때문에 서울의 한 반지하에서 셋방살이를 시작한 주부다. 공부 때문에 부양을 책임질 수 없는 남편대신 돈을 벌어야한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아동용 책 판매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이제 작품은 그의 도전과 실패와 성공이 묘사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성공자의 후일담이나 화려한 성공 뒤의 모진... 뭐 이런 식의 여느 성공담이 아니다. 그냥 삶의 과정이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고 돈을 버는 한 주인공과 그의 주변 사람들의 그야말로 ‘사는’ 얘기이다. 그래서 재미나다. 사실 주인공인 꽃분엄마가 아무리 힘이 넘치는 사람이라도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쉽게 쉽게 넘어 갈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그가 원래 그것이 가능한 수퍼맨이라서 어려움을 뚫고 나간 것이 아니라 부대끼고 치이면서도 건강하게 살아감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이 이 작품이 안고 있는 푸근한 인간미이다.
이 작품의 따뜻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악당(?)이래 봐야 꽃분엄마의 직장상사가 다다. 돈 떼먹고 달아난 만화가게 아줌마도 악당이기보다는 그저 동네 아주머니이다. 물어물어 찾아간 그 아줌마 네에는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 엄마와 일자리를 찾으러간 아버지를 대신해 학교도 못가고 있는 아이 둘 뿐이다. 엄마를 대신해 용서를 비는 아이의 모습과 그들에게 화풀이조차 못하고 오히려 측은히 여기는 장면은 이 작품의 전체에 흐르는 따뜻함과 삶의 팍팍함과 등장인물들의 순수함이 잘 어우러지는 대목이다. 그렇게 돈을 날리고 우리의 꽃분엄마는 술을 한잔 걸친다. 그 자리에 만화를 그리는 동생이 동참하고 또 남편이 동참하고...

‘꽃분엄마 파이팅!’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작품들과 추가된 몇 편, 그리고 글꼭지들이 어우러져 한권의 책이 되었다. ‘칠공주집 다섯째의 서울살이 분투기’가 부제인 이 작품에는 남자 독자라면 뜨끔할 부분이 많이 나온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가부장제를 다루고 있다기 보다는 삶에서 남성 중심적인 관성들을 끄집어낸다고 할까? 이부분도 예의 흐름처럼 따끔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담아내고 있다. 그것이 해피엔딩의 장점이겠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꽃분엄마의 머리카락이 파란 것은 실제 모델이 파란 염색을 좋아했고, 또 하나는 만화 작가가 맨 날 머리카락은 까만색이나 밤색으로 칠해달라는 주문에 질려서 맘대로 칠했다는 사실. 작가는 작가 맘대로 할 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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