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9호(200611) 파워인터뷰
미디어 질서의 코페르니쿠스 혁명, 방송통신융합

김평호 단국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   pykim@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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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융합’이 한국 사회에서 회자된 지도 10여 년이 넘었다. 그러나 이해집단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일반 시민들의 관심은 여전히 낮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7월28일 국무총리실 산하 방송통신융합 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추진위원회의 기구‧법제분과 위원인 김평호 교수는 “융합논의는 방송‧통신의 방대한 분야의 질서를 재편하는 작업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깊은 고민과 시민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방통융합 정책을 추진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기존의 방송‧통신 구분 원칙을 적용하기 어려워진 환경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방송은 ‘1:다(多)’의 일방향 송신, 통신은 ‘1:1’의 쌍방향 송‧수신이라는 소통방식의 차이로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 구분이 디지털과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으로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방송인지 통신인지 알 수 없는 새로운 서비스들과 사업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IPTV나 DMB 같은 서비스를 방송 또는 통신으로 분명하게 정의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 또 위성DMB 사업자인 ‘TU미디어’는 법적으로 방송사업자로 결정됐지만, 처음에는 어느 영역의 사업자로 할 것인지 논란이 있었다. 종래의 미디어 질서가 무너지면서 관련된 정책들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무정부 상태로 놔둘 수는 없기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고 한다.

방송통신융합 추진위원회(아래 융추위)가 출범한 지 이제 겨우 3달 남짓 되었다. 융합 추진 노력이 뒤늦은 것 같다.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90년대 초에 컴퓨터가 엄청난 속도로 보급된 것을 기억하는가. 70년대에 네트워크와 디지털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80년대 후반부터 그런 기술들이 상용화된 결과이다. 그 무렵부터 방송과 통신의 영역이 애매해지는 초보적인 단계가 시작되면서, 방통융합 논의가 수면에 떠올랐다. 90년대 초반의 문제제기가 90년대 후반 들어 정책적인 대응방안 모색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00년 이후, 방송통신융합기구나 관련법 정비 등 구체적인 제안들이 나오게 되었다. 융추위의 출범은 20여 년 가까이 지속된 논의의 연장선에 있다.

방통융합 논의에서 주로 어떤 문제를 다루나.

먼저 방송통신융합현상을 다룰 정책기구 구성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방송 영역은 방송위원회(아래 방송위), 통신 영역은 정보통신부(아래 정통부)에서 담당했다. 그러나 방통융합 시대에는 방송과 통신의 중간 영역을 다룰 통합정책기구가 필요하다.
규제 체계 논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방송과 통신은 규제의 수준이 다르다. 이를테면 통신 사업자는 외국 자본 비율이 49%까지 허용되지만, 지상파 방송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규제의 차이를 방통융합 서비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방통융합 시대에 걸맞은 법제도 마련을 위한 논의가 있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데 지금까지 기구 개편 논의에만 집중해 왔다. 이마저도 방송위와 정통부의 갈등 때문에 지지부진한 상태로 보이는데.

방송위는 방송‧통신 정책 기구의 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우정사업과 같은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 방송위와 정통부를 합치자는 이야기다. 통합위원회를 구성해 기존의 모든 방송‧통신 정책을 총괄하자는 것이 방송위의 안이다.
반면 정통부는 위원회라는 조직이 갖는 본질적인 한계를 지적하며 이를 반대한다. 결정 과정은 투명할 수 있지만, 지휘 체계 문제로 신속한 정책 집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 개발, 연구 지원과 같은 산업 진흥 부분들은 행정기관이 추진력을 가지고 집행할 수 있는 독임제(*)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나머지 규제 정책 부분을 위원회 소관으로 두자는 것이 정통부 안이다.

융추위에서는 어떤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위원은 통합위원회 안으로 개편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통합기구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독임제 부처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 요소를 위원회 조직 속에 적절하게 가미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위원회 조직이지만 콘텐츠 산업에 대한 지원 등의 진흥 업무를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해야 한다.

규제 체계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현행 ‘수직적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데 무슨 뜻인가.

수직적 체계란 네트워크와 서비스가 일관되게 결합한 형태를 말한다. 지상파 방송망이 지상파 방송서비스, 케이블망이 케이블 방송서비스, 통신망이 통신서비스와 결합한 구조다. 다른 말로 ‘하드(네트워크)-소프트(서비스) 동일체 원칙’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융합 환경에서 이 원칙이 깨지고 있다. 이제 케이블망으로 방송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도 하고 전화도 할 수 있지 않은가. IPTV는 통신망으로 방송을 하는 서비스이다. 지상파 방송은 예외이긴 하나 기술적으로는 통신 서비스로의 변용이 가능하다. 요약하면, 네트워크와 서비스가 수직적으로 결합하던 구조가 사라지는 추세다. 수직적 규제 체계 개편 논의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수직적 규제체계 그림)

그렇다면 각각의 사업을 어떻게 구분하고 규제해야 하나.

망과 서비스를 결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비스는 서비스대로, 망은 망대로 별도의 규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수평적 혹은 사업별 규제 체계’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네트워크-플랫폼-콘텐츠’로 사업자를 구분하여 규제와 지원의 틀을 마련할 방침이다.
콘텐츠 사업자는 말 그대로 음성, 영상, 문자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한다. 독립제작사,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등이 있으며, ‘신고’만 하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단, 보도 프로그램 등은 여론 지배력을 감안하여 ‘허가’를 얻어야 한다. 문화적 다양성 확보가 규제의 주된 내용이다.
플랫폼은 만들어진 콘텐츠를 편집‧편성하여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사업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DMB, IPTV, 인터넷 포털 등을 들 수 있다. 공정 경쟁 확보가 규제 목적이며, 허가 또는 등록을 통해서 사업자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KT처럼 네트워크를 관리‧운영하는 사업자가 있다. 네트워크는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물적 토대이기에, 보편적 서비스(*) 확대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사업자를 규제한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은 이러한 분류 체계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은 시장 내의 다른 사업자와는 달리 공공성과 공익성의 의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수평적 규제 체계와 관련해서도 방송위와 정통부의 입장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방송위는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의 3분류 안을, 정통부는 ‘콘텐츠-네트워크’의 2분류 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플랫폼의 인정 여부에 따른 차이이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으나, 3분류 체계가 더 적합하다고 본다. 기차 정거장의 ‘플랫폼’과 같은 사업 공간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쉽다. 그들은 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망의 일부를 빌려서 다양한 콘텐츠 제공 사업을 하고 있다. 지식 검색에서 동영상 제공까지. 더욱이 이런 플랫폼 사업자가 소수의 영향력 없는 집단이 아니다. 구글이나 네이버를 봐라. 인터넷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실제로 그들이 가진 자본의 규모도 막대하다. 이런 사업자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방송위, 정통부 안 그림 2개)

정통부 안은 플랫폼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전송 영역으로 포함할 수 있지 않으냐는 논리 아닌가.

정통부 안의 핵심적인 문제가 바로 그 점이다. 예를 들어 KT가 IPTV사업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KT 같은 소위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자기 망 위에서 콘텐츠 사업을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자신들이 가진 망의 위력을 이용해 다른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차별적인 대우를 할 가능성이 크다. 망을 가진 사업자가 자신들의 망 위에서 플랫폼 사업을 할 때, 일정한 제한을 둬야 마땅하다. 망에 대한 규제만으로는 어렵다. 플랫폼을 따로 두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다.

수평적 규제 체계의 문제점은 없는가. 이를테면 위성방송이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지상파 방송처럼 콘텐츠 제작뿐만 아니라, 플랫폼, 네트워크 사업에도 관여하고 있다. 중복 규제 논란을 일으킬 것이다. 또한, 운용 목적이 다른 방송망과 통신망에 동일한 규제를 하는 것도 합당한지 의문이다.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지적한 것처럼 규제 형평성 문제는 분명 대두할 것이다. 기존의 체계에서 방송은 굉장히 강한 규제를 받은 반면, 통신은 주로 기술‧경제적 규제를 받았다. 그런 구분이 흐려지고 새로운 정책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규제의 원칙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사업자 체계를 분류하고, 분류된 체계에 따라 각각 차별적인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긴 하다. 그러나 그 논리를 극단으로 몰고 가면 네트워크만, 플랫폼만, 콘텐츠만 전담하는 사업자로 쪼개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소리인가. 때문에 3분류 체계를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

방통융합 정책이 미디어 기업들의 융합을 통한 미디어 산업의 고도집중화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실제로 정부와 관련업계 사이에서만 논의가 이뤄지면서, 공공성과 공익성보다는 산업진흥 측면만 강조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동의하나.
이제는 누구나 어느 망을 통해서든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사업의 기회가 더욱 늘어나면서 그만큼 많은 사업자가 등장할 거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따라잡으려고 매일 법률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국가가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게끔 틀만 잡아주면, 시장이 자율적으로 상황을 조정하지 않을까라는 논리도 있다. 그런 시각 때문에 방통융합의 흐름이 경제적인 논리에 치중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하지만, 아무리 경제적 논리가 중요하더라도 그것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본다. 미디어가 지켜야 할 사회적 이익 실현의 의무는 무시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참 많이 나온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국 미디어 융합의 핵심적인 과제는 그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 하느냐이다. 굉장히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이므로 시민운동진영에서도 대안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현재 방통융합 논의가 이해집단 간에만 이뤄지고,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우선 어렵다. 또 굉장히 복잡하다. 방송은 의외로 단순한 측면이 있기는 하나, 통신 시스템은 정말로 복잡하다. 이런 것들을 기술 용어로는 ‘블랙박스’라고 한다. 사실 일반인들이 블랙박스를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방송과 통신은 한 나라의 경제와 문화의 중추이다. 개인의 생활과 소통의 물리적 기반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심을 둬야 한다. 당장 자기 통신 요금이 정말 제대로 부과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기술 시스템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이 분야가 매우 낯설기 때문이다. 방송‧통신 시스템이 눈으로, 손으로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방통융합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지라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방송은 사람들에게 많이 친숙하다. 방송국도 가고, 방송 프로그램도 본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전화국 갈 일은 없지 않은가. 전화국에 무슨 스튜디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시민운동 영역에서도 방통융합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어려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방통융합의 최종 이해당사자는 일반 대중들이다. 어렵고 친숙하지 않다고 해서 그들을 융합논의에서 계속 배재 시키며 전문가 집단에만 맡길 수는 없다.

물론 안 된다. 어려운 용어를 쉽게 설명하고, 낯선 이슈를 친숙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일을 누가 하느냐. 시민운동 단체들이다. 사실 방송통신융합과 관련한 문제는 미디어 운동 영역에서 활동해왔던 단체들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이들이 학습을 통해 전문성을 키워야 하는 과제가 생긴 것이다. 그 과제를 제대로 수행한다면 이 문제를 사람들 사이에서 중요한 의제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시위 내지는 서명 같은 집단적 정치학 차원의 운동은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는 과정에서 이론적인 무장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방통융합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사안 아니겠는가.

홍지은 / 네트워커 :: idiot@jinbo.net

(*) 독임제 : 하나의 행정기관에 정책 결정 권한을 일임하는 제도. 합의제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고 효율적이지만, 관료들의 독단이 전횡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 10월27일 융추위는 전체회의를 통해 대통령 직속의 '합의제 통합위원회' 안을 다수의견으로 채택했다.
(*) 보편적 서비스 : 모든 국민이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기 통신 서비스. 대표적으로 전화, 지상파 방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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