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9호(200611) 표지이야기 [의료정보화의 그늘]
유비쿼터스 건강 사회 ... 복지 사회인가, 감시사회인가?

오병일/네트워커   antiropy@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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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K씨는 매일 집에서 헬스케어 시스템을 통해 혈압, 체온, 혈당 등을 체크하고 인터넷을 통해 담당 의사에게 전송한다. 평소에는 온라인을 통해서 의사와 면담을 하다가, 수치에 이상한 징후가 보일 경우 병원을 방문하기도 한다. K씨의 진료 카드에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K씨의 건강 상태나 치료 기록 등이 모두 기록이 되어 있어, 담당 의사는 K씨의 현재 상태를 진단하는데 이 자료를 참고한다. 병원에는 더 이상 의사와 간호사들이 종이 차트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RFID 시스템을 통해 환자 상태가 자동으로 입력이 되며, 의사와 간호사들이 기록한 내용들은 모바일을 통해 메인 시스템에 전달된다. 환자들의 과거 진료 기록과 현재의 상태, 그리고 최신의 의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병원의 지식관리시스템은 최적의 방안을 의사에게 권고하면, 이를 토대로 의사는 처방을 내린다.

이와 같은 풍경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며, 관련된 시스템들이 이미 개발되고 있는 등 어느 정도는 현실로 다가와 있다. 유비쿼터스 정보사회의 핵심적인 측면 중의 하나로 '유비쿼터스 건강 (u-health) 서비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전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전자건강기록을 구축하여 질 높은 의료서비스의 편리하고 효율적인 이용을 보장'하는 것이 현재 국가보건의료정보화 계획의 비젼으로 설정되어 있다. 의료정보 시스템의 도입으로 실제로 병원에서 종이, 차트, 그리고 필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90년대 초반 원무전산화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진료정보의 디지털화도 확산이 되고 있다. 지난 200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기관 정보화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원무 전산화를 위한 처방전달시스템(OCS)의 경우 종합전문병원의 97.6%, 종합병원의 84.2%에 이미 도입이 되어 있다.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역시 종합전문병원은 90.5%가, 종합병원은 78.6%가 도입을 한 상태이다. 의료정보시스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자의무기록(EMR)의 경우에는 종합전문병원의 약 20%, 종합병원의 약 15% 정도만이 도입한 상태로, 아직 그 비율이 높지 않다. 그러나 최근 각 급 병원이 EMR 도입을 앞다투어 추진 중이며, 정부 역시 EMR 도입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건강보험 청구 전자자료교환시스템(EDI)은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정보화 중 가장 잘 되어있어, 종합전문병원과 치과병원은 100% EDI 청구를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89.2%가 EDI 청구를 하고 있다.

<병원급 의료기관의 정보시스템 도입현황 비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한의료정보학회, '요양기관 정보화 실태조사 보고서', 2005.12

정부 차원에서는 1996년부터 매년 보건복지정보화촉진시행계획이 수립되면서 정부 차원의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본격적인 보건의료 정보화 추진은 2004년 말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2005년 5월에는 보건복지부 장관 자문기구인 의료서비스육성협의회 산하에 e-health 전문분과협의회를 구성하여, 'e-health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주요 검토과제' 8개를 도출하고 기본적인 추진 전략을 수립하였다. 2005년 10월에는 총리실 산하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내에 e-health 전문위원회를 설치하고 보건의료 정보화사업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의료기관의 80% 이상이 민간의료기관이기 때문에 국내 의료 정보화는 민간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정부는 2008년까지 보건소 등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고, '보건의료정보 표준화'를 통해 의료기관간 정보 공유와 교류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개별 병원이나 정부나 할 것 없이, 의료 정보화의 목표로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 '의료의 질 향상'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의료 정보화 과정에서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나 노동 통제의 강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의료 정보화는 단순히 기존 업무의 전산화가 아니라, 병원 내 모든 업무의 표준화를 의미한다. 병원간 의료 정보의 교류가 가능하기 위해서도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의료 업무의 표준화를 필요로 한다. 표준화는 의료 정보의 교류를 통해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도 있지만, 환자 의료 정보의 교환과 집적을 용이하게 하여 프라이버시 침해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병원 입장에서 의료 정보화는 거대 자본의 의료 시장 진출 및 시장 개방 등으로 인한 병원간의 경쟁 격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영 혁신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정부 역시 의료 산업을 21세기 새로운 부가가치 산업으로 보고, '의료 산업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산화, 물류 외주화 등으로 인한 고용의 불안과 병원 노동자에 대한 통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의료 정보화가 단지 병원 자본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의료 복지를 위한 진정한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정보화 과정에 환자, 의료 노동자, 그리고 일반 시민의 참여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처방전달시스템 (OCS, Order Communication System)
의사의 처방을 통신망을 통해 해당 진료 부서에 전달해 주는 시스템.
*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 (PACS, 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
엑스레이, MR 등의 의료 영상을 필름으로 판독, 진료하던 방식을 디지털화하는 것. 의료영상을 디지털 형태로 찍고, 통신망을 통해 전송, 열람, 저장한다.
* 전자의무기록 (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환자의 임상진료에 관한 모든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하며, 진료, 원무, 통계에 걸친 전 병원업무를 자동화하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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