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9호(200611) Cyber
게임 아이템 현금거래의 법적 규제

양희진 /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lurlu@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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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 바람의 나라, 뮤 등 온라인게임 속의 아이템이 이용자들 사이에 활발히 현금 거래되고 있다. 대부분의 게임업체가 약관으로 아이템의 현금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공정거래위원회는 2000년,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그 약관의 유효성을 인정했다), 현재 아이템 거래 시장규모는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 1조4천억 원의 70%에 달하는 수치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지경이다.

아이템 현금거래 규모, 게임 시장 규모와 맞먹어

아이템의 현금거래가 이렇게 활발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적인 온라인게임인 리니지를 보자. 리니지에 등장하는 아이템은 칼・창 등 무기와 바나나·팬케이크 등 음식, 다이아몬드·사파이어 같은 보석류를 합쳐 300여종에 달한다. 이런 아이템은 원래 게임 속 화폐인 ‘아데나’를 통해 구입해야 하는데, 아데나는 싸움에서 이기거나 괴물을 물리쳐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 게임에 빠진 사람들은 아데나를 얻기 위해 실제 현금거래에 나선다. 리니지는 괴물을 죽여 돈(아데나)을 벌고 다시 무기나 도구를 사고 이를 이용해 원군을 확보한 뒤 힘을 합쳐 성을 정복해가는 게임이다. 이런 화폐 경제적 요소는 현실과 게임의 유사성을 높여 게임 이용자로 하여금 게임을 또 다른 현실로 인식하게끔 하고, 게이머에게는 게임 세계의 부와 명성이 현실의 그것과 동등한 가치로 인식되는 듯하다.

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관련된 법적 분쟁이나 범죄도 따라서 증가하고 있다. 범죄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해킹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타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수집한 다음, 이를 이용하여 온라인게임에 직접 접속해서 아이템을 임의로 팔아 버리는 방법, 아이템을 판다고 속이고 현금을 편취하는 방법, 아이템을 협박하여 빼앗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지난 10월 22일에도 삼성전자가 서비스하는 온라인게임 ‘던전앤파이터’가 지난 8월 이후 수차례 중국발 해킹을 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해커들이 ‘던전앤파이터’ 게임에 접속해서 원래 주인이 보유하는 아이템과 게임머니를 모두 팔아버려 현금을 챙긴 것이다. 지난 10월 12일 인터넷 게임 아이템을 판다고 속여 거액을 챙긴 혐의(사기 등)로 주모(19세)씨가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주씨는 지난 4월 9일경 모 인터넷 게임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리니지’ 캐릭터 계정을 팔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이모씨로부터 200만원을 송금받는 등 최근까지 총 13명으로부터 3천5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아이템 현금거래와 관련한 판결 동향

현금거래로 인한 부작용이 급증하고 있지만 현재 이를 규제할 명백한 법률규정은 없어, 아이템의 현금거래 자체가 불법인가에 관하여도 논란이 있다. 직접 관련된 판례는 찾기 어렵다. 2000년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이 피해자를 찾아가 폭행하고 게임 아이템을 빼앗은 피고인에 대하여 상해죄와 공갈죄를 인정한 바 있으나, 이는 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의 위법성에 관한 판결은 아니다. 다만 게임 아이템의 갈취행위가 재물 또는 재산적 이익을 빼앗은 경우에만 성립하는 공갈죄에 해당한다고 보았으므로, 게임 아이템에 독립적인 재산적 가치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일 뿐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전주지방법원이 NHN에서 운영하는 한게임 사이트에 차명으로 88여개의 아이디를 개설한 뒤 접속하여 자유 게임방을 여러 개 24시간 계속 점거하면서 사이버머니를 현금으로 판매한 피고인에 대하여 업무방해죄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게임 사이트 상의 사이버머니 매매를 알선하는 사이버머니 중간도매상인데, 2001년 10월부터 2005년 1월까지 컴퓨터 30여대를 설치하고, 컴퓨터마다 소위 ‘수혈하기 위한’ 소호라인 프로그램을 깔고 사이버머니를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상대방과 한게임 상의 게임을 실행하면서 소호라인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한게임 사이트 상에 피고인이 직접 게임에 참가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동으로 게임 참가, 배팅, 기권을 순차적으로 반복하고 입력되게 하였다. 그 결과, 사이버머니 구입의뢰자에게 1만원 당 7조 내지 12조에 상당하는 피고인이 보유하는 사이버머니를 잃어주는 방법으로 사이버머니를 충전시켜 주었다. 검찰은 이러한 일련의 행위가 한게임 사이트에 접속하여 게임에 참가하려는 다른 정상적인 게임 참가자들이 한게임 사이트에 접속을 어렵게 하는 등의 결과를 야기하였으므로, 이는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하여 NHN으로 하여금 서버시설 용량을 증설하게 하고 한게임 사이트 상 사이버머니 현금거래자들을 감시하는 인력을 증원시키기 위한 모니터링 인력 요원을 증원하게 하는 등 NHN의 정상적인 한게임 사이트 운영업무를 방해하였다는 취지로 기소했고, 법원이 이를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이 판결은 게임업체의 약관에 의해 금지된 현금거래 행위를 하였다는 점에 초점을 둔 듯하여 마치 아이템 현금거래 그 자체가 업무방해죄로 인정될 수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따라서 아이템 현금거래 자체가 그것이 약관에 의해 금지된 경우 위법한 것으로 인정한 듯한 취지가 포함되어 있으나, 계약위반에 불과한 것을 형법적으로 금지된 행위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어쨌거나 이 판결의 취지는 아직 불명확하여 법원이 아이템의 현금거래 자체의 위법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몇몇 국회의원들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아이템의 현금거래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지금도 정보통신망법이나 주민등록법, 형법 등으로 부작용에 대한 형사처벌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게임 아이템이 공갈이나 사기와 같은 전통적 범죄의 소재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 자체의 부작용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범죄행위에 불과하다.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주민등록번호로 일원화되어 있는 개인정보의 체계 때문에 해킹이 용이하여 대규모 피해가 유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금거래 규모가 1조원에 달하는 현실에서 현금거래 자체의 금지 규범을 창설하는 것은 대규모 암시장의 출현 등의 더 심각한 문제만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게임업체의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강화하거나, 주민등록번호 누출에 의한 대규모 피해를 막는 것이 늘 그렇듯 더 근본적이고 시급한 과제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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