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9호(200611) 기획
내 주민등록번호, 이젠 정말 나만 써?
새로운 주민등록법 이야기

스밀라디/네트워커   sia@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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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법 개정 전, 누군가가 내 주민등록번호로 다른 사이트에 가입한 것을 알게 되어 해당사이트를 탈퇴하는 경우에, 관리자에게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 하는 번거로운 굴욕과 마주치게 된다. 게다가 주민등록번호 도둑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2006년 9월 25일부터 새로 시행된 주민등록법에서는 단순히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로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만 해도 처벌을 받게 된다. 이전에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는’ 경우에만 처벌했던 것과 달리 ‘단순도용’ 역시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는 가족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는 행위조차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가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처벌을 피할 수도 있지만, 되도록 가족의 번호도 도용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달 24일,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서 게임사이트와 인터넷 쇼핑몰에 가입하였다는 ‘단순도용’으로 30대 남자가 입건되었다. 개정 후, 단순도용으로는 처음으로 적발된 사례다. 피의자는 2002년부터 이전에 인터넷에 떠도는 200여명의 주민등록번호 리스트를 가지고, 그것을 활용해 왔다고 한다. 새로운 법은 그의 오래된 습관적 도용을 중단시켰다.

남이 내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있는지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일례로 개인당, 바꿔 말해서 한 주민등록번호 당 세 개의 아이디를 만들 수 있는 네이버의 경우 명의를 도용해 다른 아이디를 만든다고 해도 그 내용이 메일로 전달되거나 하는 등의 서비스가 없기 때문에 내가 일일이 확인을 하지 않으면 내 주민번호로 등록된 아이디가 몇 개인지, 그 아이디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법이 바뀌고 처벌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위법 사실을 적발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도용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일은 처벌강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애초에 개정 목적을 생각해 본다.

내가 이 땅 위에 갓 태어난 후로
내게 주어졌던 열 세 자리 번호

그 안에 담겨있던 개인 정보
새나가는 일도 다반사지 Oh No!
...
굳이 나를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13자리 번호가 대신 나를 증명해
....
-비폭력 힙합그룹 ‘실버라이닝’의 노래 [빅브라더] 가사 일부

주민등록법이 개정된 이유는 주민등록번호 도용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3천만 명의 주민번호들이 노출되었고, 최근 정보통신부 조사에 따르면 90만개의 주민등록번호가 웹사이트를 떠돌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된 이유는 대부분의 웹 사이트가 회원가입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범위하게 수집된 주민등록번호들은 개인정보의 유출을 낳고 있다.

불필요한 수집을 막아야 당연히 남용의 가능성도 줄어든다. 주민등록번호의 민간영역 사용 자체를 규제하고, 신원 확인을 주민등록번호로만 한정해야 하는지,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개인 식별 번호를 사용할 수는 없는지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 이전에, 본인 확인 자체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인증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습관적인 신원인증 자체가 주민등록번호 과다 수집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법이 개정된 시점에서, 여전히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주민등록법 자체가 갖고 있는 ‘너무 많은 개인정보의 남용가능성’에 대한 접근이 없다면 개인정보 남용 문제는 기술 발달과 공생하여 더 커질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는 이 나라에서 신분확인의 유일한 수단이기에, 수많은 개인정보에 다가가는 ‘열쇠’다. 이미 3천만 명이 열쇠를 도둑맞았다고 한다. 새로운 법은 이제 ‘훔친 열쇠를 또 쓰면 정말 혼난다!“라는 것이다. 이미 내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밖에 있고, 자물쇠도 그대로인데, 우리는 더 이상 도둑맞지 않을 수 있을까?

습관적으로 훔친 열쇠들을 써 왔던 사람은 처벌이 강화되었다는 것만으로 범죄의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 두려움으로 범죄자를 통제하는 방식 외에, 근본적으로 자물쇠를 바꿔 달아야 한다. 주민등록제도가 아닌 새로운 개인식별 체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주민등록번호는 결국 행정편의를 위해 주어진 임의의 13자리 숫자에 불과한데, 오히려 개개인의 정보와 사생활을 파헤치고, 재정적인 손실마저 줄 수도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진정 나만이 나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 새롭고 안전한 방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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