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9호(200611) 영화
'빅브라더' 삼성에 던지는 또 하나의 돌멩이
<우리에겐 빅브라더가 있었다 > (박정미/2006/100'/노동자뉴스제작단)

시와 / 영상미디어 활동가   fjt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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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갖가지 기능을 탑재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일쑤인 일상. 정보인권을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권의 한 영역으로만 규정짓기에 정보인권을 침해당했는지 더듬이를 곤두세워야 하는 찰나가 지나치게 자주 찾아온다. 기계의 속도에 맞추어 노동자 몸의 리듬을 좌우하려 했던 자본이다. '진일보한' 노동자 감시의 선두주자 노릇을 하는 것은 예의 빅, 삼성이다. <우리에겐 빅브라더가 있었다>는 불법 복제한 휴대폰으로 노동자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집요한 노동권 탄압의 속내를 거리낌 없이 내비쳤던 삼성의 만행으로부터 출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삼성의 전현직 노동자들을 위치추적해온 유령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경위를 보여주는 데에서 시작한다.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부가기능 밖에 사용할 줄 몰랐던 누군가는 자신이 돌연 친구찾기 서비스에 등록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소 통화 시 잡음이 많이 들렸던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바로 삼성에 맞서려했던 다윗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무노조 경영원칙을 고수하는 삼성가에서 빨갱이 사상범이었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삼성의 노동권 탄압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노조운동의 분수령이었던 87년, 삼성에 입사했던 송수근 씨는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노동자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고된 돌팔매의 대가는 해고, 명예훼손이란 죄목, 출소 후 휴대폰 추적 등이었다. 첨단 기술의 도입이 물론 전부가 아니다. 1미터 그림자 마크가 말해주듯 지극히 원시적이고 직접적인 삼성의 노동자 감시 형태는 영화에서 한밤의 추격 장면으로 화한다. 캄캄한 밤, 해고 노동자를 위한 후원 주점의 홍보용 전단지 마저 사람을 동원하여 떼어내는 삼성의 꼼꼼함(?)은, 무노조 신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빅브라더 명예의 전당에 등극할만한 삼성의 노력을 여실히 확인시켜준다. 긴박한 현장감이 전해지는 동시에, 우스꽝스럽게 꼬리가 잡힌 삼성의 실체를 희화화하는 추격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이후 감독은 삼성의 노동자들이 위치추적의 범인으로 삼성 등을 고소한 행동을 기점으로 삼성의 전현직 노동자들과 연대조직들이 벌였던 법률 안팎의 일련의 활동들을 스케치한다. 일인시위는 물론, 삼성을 위치추적의 진범으로 지목할 수 있도록 확실한 물증을 잡기 위한 노력을 꾀하지만 검찰 역시 삼성을 비호하는 등 실낱같은 희망조차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 상황이다. 더불어 삼성을 고소하려는 노동자에 대한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의 촉수가 다가오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의 싹을 일구기 위하여 발걸음을 놀리는 소수 노동자들의 열정과 의지는 자못 놀랍다. 희망과 의지를 잃지 말자는 믿음과 연대의 메시지로 영화는 맺는다.

<우리에겐 빅브라더가 있었다>는 삼성의 불법복제 휴대폰 위치추적 사건을 삼성의 노조탄압의 맥락 위에서 살펴보는 데에 주력한다. 이 사건이 함의하는 정보인권의 현주소, 정보주체의 인지와 동의 없이 시시각각 위치 추적을 받을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이 부족한 점은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가공할만한 노동 감시의 실체를 벗기고, 척박한 역사를 새로 쓰기위한 모색을 지속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영화의 본심은 소중하다.

그런데 제작자의 고운 진심이, 노동자들이 느꼈을 분노와 절망감이, 연대조직들의 따뜻함이 좀더 생생하게 와 닿을 수는 없었을까? 몇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영화는 인터뷰와 내레이션이 주된 축이다. 영상으로 표현되어야 할 정황을 설명하고 때론 노동자들의 심정을 읊조리는 이 영화의 내레이션은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인상을 준다.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다양한 음악들은 보는 이에게 감정의 상승과 하강을 이입하기 위해 사용된 듯싶다. 영화가 좀더 현장감이 느껴지는 몸짓과 육성으로 표현되고, 관객에게 주체적인 시선을 부여할 수 있는 여유가 스며들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 덧붙임: 아직 영화가 최종적으로 완성되지 못하여 가편집본을 보고 적은 글입니다. 이 작품은 제10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http://www.lnp89.org/10th/)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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