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9호(200611) 사이방가르드
소비 문화형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한 괴물 그리기,
론 잉글리쉬의 '팝파겐다'

이광석 / 네트워커 편집위원   suk_le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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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한 시민단체의 활동가에 의해 다시 시도되었던 <나를 뻥튀겨줘 Supersize me>란 다큐멘터리를 기억하시는가. 그 미국 영화감독은 몇 달 동안 맥도널드의 패스트푸드 음식으로 연명하며 얼마나 몸이 빠르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그 스스로 온 몸으로 느끼며 실감나게 표현했다. 그 다큐를 주의 깊게 본 사람이라면, 내용 마디마디에 매번 등장했던 음습한 화제 전환용 미술 작품들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여간해선 잊혀질 수 없는 투실투실 살이 쪄 무서워 보이는 로널드 맥도널드 인형들, 그리고 삐에로 얼굴과 복장을 하고 담배를 뿜어내며 정면을 빤히 쳐다보는 기괴한 아이들이 기억날 것이다. 이 얼굴들은 분명 아이들이었으나, 어른들의 놀이를 이미 모두 탐독한 아이들이었다. 술 마시고, 담배를 피고, 펩시콜라를 마시고, 어른들의 옷을 입고, 카드 패를 바에서 돌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을 흉내낸다기 보다는 문화 소비가 이미 어른 수준에 도달한 애늙은이들의 그것으로 그려진다. 이는 자본주의 소비문화로의 오염 혹은 전염에 가깝다. 론 잉글리쉬(Ron English)란 작가는 이렇듯 그로테스크하고 비정상적으로 오염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 표현한다.

자본주의의 기괴한 괴물의 모습을 닮은 아이들을 통해 형상화하고 비꼬는 지점에서 잉글리쉬의 작품들은 충분히 선동적이다. 물론 미국 소비문화의 다양한 캐릭터들을 이용해 이를 미술에 응용한다는 점에서 그의 예술은 팝아트의 기본 요건을 갖추고 있다. 하여 그의 작품은 팝아트와 프로파겐다의 혼합어인 '팝파겐다(popaganda)'로 불린다.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에 매달린 디즈니, 마를린 먼로의 탐스러운 가슴 대신 매달린 디즈니 얼굴, 이상하게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캐릭터 '파워퍼프 걸'의 속옷 입은 모습, 그리고 해적, 카우보이, 선술집 주당들과 삐에로 분장을 한 아이들 등은 자본주의 상품문화가 만들어내는 비정상성의 기괴한 모습을 극대화한다. 그러니 대개 잉글리쉬의 작품을 처음 접하면, 왠지 엽기적인 듯싶고 섬찟하고 슬슬 무섬증까지 나기 마련이다.


마를린 먼로의 맨 가슴이 만지고 싶고 빨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듯, 잉글리쉬가 그린 그녀의 가슴에 매달린 디즈니 캐릭터는 현대 아이들과 그 세례를 받고 자란 어른들에게 또 다른 욕망의 실체다. 철마다 제작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시청하고, 그것도 부족해 디브이디와 관련 비디오 게임 타이틀을 구입하고, 개봉에 맞춰 만들어지는 디즈니 캐릭터 장난감을 사서 놀아보지 않은 아이들이 거의 없다. 잉글리쉬의 탐욕스럽게 살이 찐 로널드 맥도널드도 아이들을 유혹하는데 국경을 초월하고, 당연 계급에 준해 그 대상을 찾는다. 그 본산인 미국에서 맥도널드는 흑인과 히스패닉 등 하층 서민 가족들이 한 끼 식사를 때우고 살을 불리는, 그리고 디즈니 캐릭터와 같은 저질의 장난감으로 아이들의 문화 소비욕을 일시적으로 무마하는 곳으로 애용된다. 이런 현실에서 자란 아이들의 얼굴은 정상일 리가 없다. 아이들의 유전자에 전이된 쓰레기 소비문화는 그들의 형상을 무섭게 일그러뜨린다. 어른처럼 행동하는 아이들. 소비의 욕구만은 이미 어른의 수준에 이른 아이들. 잉글리쉬가 그린 아이들은 대개 모두들 시장에 내걸린 모델처럼 분장을 하고 폼을 잡고 정면을 응시한다. 허나 어느 아이의 얼굴에서도 순진함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팝아트의 작품 말고도, 잉글리쉬는 일찌감치 길거리 대형 광고판을 이용해 걸프전, 부시행정부, 기업 문화 등에 관한 시사 풍자를 지속해왔다. 그는 거리를 가득 메우는 상품 광고의 진열 방식에 되먹임을 놓는 방식에 있어서 길거리 대형 광고판을 불법 점유하는 것 이상 좋은 방법은 없다고 본다. 미국 내 하위문화의 갈래 중 '광고판 해방전선 (the Billboard Liberation Front)' 그룹이 꾸준히 거리 문화를 전복하려 노력했듯, 그의 창작 방식만큼이나 광고판 점유 시도는 길거리 소비문화를 역전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잉글리쉬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자본주의의 비정상성에서 비롯하는 풍자적 표현들은 독자에게 웃음을 유발하기 보단 심각함을 드리우고 왠지 모를 거북스러움을 안겨준다. 그 거북스러움은 일그러지고 중독증을 유발하는 소비문화의 치부를 들춰내기 때문일 게다. 이는 상품 문화의 수많은 오염물들이 인간과 비정상적으로 배합되는 무의식 관계를 적절하게 드러내는데 있어서, 그의 의도가 꽤 잘 먹혀들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새로운 작품 활동이 더욱 기대된다.


참고 할 것들
론 잉글리쉬 웹페이지 http://popaganda.com/
론 잉글리쉬의 책 Popaganda : The art and subversion of Ron English, 2004, Last G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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