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9호(200611) 블로거TO블로거
자전거를 타는 사색가, 아르님
아르님의 블로그, ‘누구의 것도 아닌 집 - 푸른 문가에 서서’

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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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내가 블로그를 운영한지 만 3년을 채우게 되는 달이다. 3년 동안 한 자리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매일같이 글을 쓰다보니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내 블로그를 지나가는 걸 보아왔다. 개중에는 끊임없이 들러주는 분들도 있고, 또 발걸음이 뜸해진 분도 있고, 안 오다가 문득 생각나 다시 오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정말로 옆집에 자리 잡고 늘 그 자리에 있는 동지같은 느낌의 블로거들이 몇몇 생겼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소개하고 싶은 분이 하나 있으니, 집 문패에 ‘누구의 것도 아닌 집’ 이라 달아 놓으신 ‘아르’(http://archum20.egloos.com/)님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집이지만 빈집은 아니라는 그곳에 내가 찾아가게 된 것은 아르님에게서 독서가로서의 모습을 보던 시절이었다. 내가 읽던 책들은 베스트셀러와는 거리가 먼 인문고전들이었고, 나와 같은 책을 읽어 한 마디나마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찾는 건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드물지 않게 들리는 지금, 위대한 사상가들의 고전을 전공도 아닌데 스스로 자기 사색의 재료삼아 집어 들어 읽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쩌면 외지에서 동향인을 만나는 기분과 같지 않을까 싶다. (외지에 나가 본 적은 없지만!)

독서가라고는 해도, 어려운 말로 어려운 감상을 써서 보통 사람으로선 읽기 피곤할 그런 글은 없다. 책을 읽은 사람이 그 책을 통해 어떤 생각을 하는가, 그 과정을 잘 볼 수 있는 글을 쓰기 때문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집에 올라오는 글을 읽다보니, 이 분, 독서가인 모습은 그리 큰 부분이 아니구나 싶었다. 같은 것을 읽어도 어른스럽다고나 할까, 어려운 책들을 어렵지 않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도록 자기 생각에 얹어 글로 써내고 있었다. 글에는 오히려 책의 비중이 적고 그로부터 가지를 뻗은 자기의 생각이 더 많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사람은 독서가라기보다는 사색가로구나,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반추하고.

그래서 어쩐지 하얀 도포 입은 양반같은 학자타입이겠군 생각했더니, 이번에도 내 짧고 모자란 시각을 깨뜨렸다. 정치, 전쟁, 인권운동, 각종 시위 등 현실의 일들에 기민하게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책 속 사상이 아닌 현실의 뉴스와 시사를 바라보며 생각한 바를 점검하는 확실히 실천적 사색가였다. 아직 대단한 것을 한 게 없노라고 손을 내저을 게 뻔한 아르님이고, 나 역시 20대는 아직 대단한 뭔가를 해낼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는 때라면, 다각도로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은 참으로 소중하다 생각한다. 지금은 평화로운 시대이지만, 언젠가 사회가 비뚤어질 때에는 제대로 지켜보고 시위에 나갈 사람은 이번엔 바로 지금 나와 우리의 세대일 터이므로.

미소를 일으키는 농담 몇 마디 이외에는 진지하기만 해 보이던 그런 아르님이, 정신을 차려보니 언제부터인가 엄청 엄청 자전거 이야기를 쏟아놓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 필요한 장비들을 챙기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 시간들이 어떠했는가를 말하고, 자전거 사랑에 흠뻑 빠져있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차선을 하나 메꾸고 시내를 신나게 달리는 발바리 떼잔차질 행사에 참여하고, 홍보하고, 내가 자전거를 살 때도 더없이 반가워하고 기뻐하며 온갖 조언에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9월 말엔가는 자전거를 가지고 타국의 땅을 달려보겠노라고 나갔더랬지. 거기서 달려본 길은 어떠했느니 하고 즐거움에 겨워 말하는 아르님은 여전하다. 자전거를 타는 시간이 늘다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줄어든다며 조금 아까워하면서도, 자전거에 듬뿍 얹은 애정은 덜어낼 줄을 모른다. 자전거를 좀 더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실천적 사색가다운 의지로 자전거의 영역을 넓히고 싶어한다.

단순 비교는 역시 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내가 그분의 나이일 적에 뭘 했던가, 나도 과거의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이것 저것 하면서 쓸 걸 하고 아쉽게 만드는 사람이다. 베스트셀러가 아닌 좋은 책과, 광고로는 잘 볼 수 없는 인권영화제의 좋은 영화, 어디에도 자주 실리지 않지만 다리힘과 땀과 바람이 가득 느껴지는 자전거 이야기, 그럼에도 조용한 집의 문간에서 종이에 자신의 사색을 기록하는 듯한 아르님의 집은 혼자 보긴 너무나 아까워서, 주인도 아니건만 내가 이래저래 소개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 때문에 집안이 좀 더 북적거리게 되더라도 뭐라 하진 않으시겠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집이므로, 그 문간엔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 하셨으니.

아아, 뭐라도 인용해 올까 싶어 한참을 ‘누구의 것도 아닌 집’ 에 머물러 이것 저것 읽고 또 읽었는데, 뭔가를 인용해 보여주기보다 역시 직접 그 집으로 가서 아르님을 만나 보는 것이 최고이지 싶다. 블로그의 미덕은, 나로선 전문성이나 정보, 유익성, 이런 것들보다도 단연 ‘블로거의 미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마음을 담아 ‘이 블로거를 만나러 가 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아마도 나중에, 쑥스러워 죽겠다고 한 소리 들을 것 같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 사람이 내 이웃에서 역시 2~3년째 블로깅 중이라는 사실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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