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9호(200611) 달콤쌉싸름한페미니즘
여성 여행, 기억의 조각모음

쿠나(언니네트워크 여성여행기획팀)   oracul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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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느끼는 자유

“너랑, 지은이, 윤희가 나 자취하던 광주에 여행 왔었잖아? 그때 정말 놀랐다. 여자애들 셋이서만 어딜 다닌다는 게 신기하고 이상했거든.”
“그래? 여자애들만 여행 다니는 게 그렇게 이상했어? “
“응. 정말루...”
“..,….”

여성주의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던 대학교 3학년 때, 남자 동기가 있다는 이유 만으로 여자친구들과 함께 광주를 찍고 해남을 돌며 3박 4일 정도 놀다 온 적이 있었다. 그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는 어디를 가든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라면 박스를 펼쳐놓고 바닷가 소나무 그늘에 누워 있을 때도, 한밤중에 도착해 민박을 찾아 돌아다닐 때도, 해남 기념비를 본 후 마을로 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던 때에도. 하지만 그때 우리는 우리가 주목 받는 이유를 몰랐었다.

아마도 집에는 광주에 산다는 친구가 ‘남자’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단지 그’녀’의 집에서 3일 정도 머물다 올 것이라는 거짓말로 부모님을 안심시켰으리라.

2. 사내놈 한 명이라도 데려가지 그러니?
제법 나이가 들었건만 결혼하지 않은 딸자식이 집 밖으로 나서는 것에 대한 부모님의 걱정은 변함이 없다. 2005년 초 겨울, 처음으로 언니네 시스투어에서 국내 여행으로 소백산을 가게 된 날이었다. 평생 뒷동산 오르는 것도 보기 힘들던 내가 겨울 산을 오르겠다고 아이젠을 찾아 짐을 꾸리자 부모님의 걱정은 끊일 줄 모른다. ‘등산복이 없으니 내복은 두 개를 입고, 양말은 적어도 두 켤레 이상은 입어야 하며, 장갑은 젖을 지도 모르니 예비로 하나 더 가지고 가라’는 둥 갖은 잔소리가 이어졌고, 그 마지막 피날레는 이번 산행에서 코스는 누가 아느냐는 것이었다.
‘길 잘 아는 남자애들이랑 같이 가는 거지?’
‘…. 네. 몇 명이 길을 알아요.’
나는 처음으로 언니들과 떠나는 여행이 저지당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이 상황에 ‘길을 아는 사람은 온라인에서 만난 얼굴도 모르는 한 두 명의 언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나의 간단한 거짓말과 동시에 부모님의 잔소리는 잦아들고 얼굴은 평화를 되찾았다. 친딸인 나조차 안심시킬 수 없었던 부모님의 불안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한 ‘길을 아는 남자애들’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씁쓸한 웃음을 속으로 지으면서도 난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섰다. 한참 뒤 내 핸드폰에 어머니는 문자로 ‘그래도 남자애들 조심해라.’ 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험하고 낯선 길을 갈 때에는 반드시 남자들의 보호와 안내가 필요하지만 또한 신변의 안전을 위해 그들을 멀리 해라?? 그 후 대여섯 차례 언니들과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난 이런 대화들을 반복해 가며 부모님의 마음은 안정시키면서 스스로의 혼란은 가중되었던 것 같다.

3. 또 다시, 길 위에 세 여자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맞는 긴 휴가. 근근이 모은 여행 경비로 비행기 티켓을 사고, 근무시간에 눈치 보며 여행일정을 짜고 있다. 마침 휴가 기간이 비슷한 두 여자 친구들도 동행을 결의했다. 이번에도 여자 셋.

올해 휴가는 어디로 가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스페인이요’라고 답하자마자 어머니는 ‘그 도둑 많고 험하다는 나라’를 대체 누구랑 가느냐고 묻는다. 이번에는 솔직하게 털어놓았으나, ‘결혼도 안 한’ 세 여자가 간다는 나의 대답은 당연히 환영 받을 수 없다. 그 대가로 나는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쏟아지는 걱정과 잔소리 세례를 감당해야 했다.
다행히 잠버릇, 옷 입는 취향, 식성, 하다 못해 여행 관심거리마저 다른 세 여자들은 그걸 장점으로 삼아 다양하고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2주 만에 돌아왔다. 동양인들이 극히 적은 지역에서는 기차를 타고있는 몇 시간 동안 현지인들의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는 시선을 견뎌야 했고, 새벽부터 기차를 타러 가는 우리에게 알아 들을 순 없었지만 뭔가 더러운 소리를 하는 할아버지에게 심하게 화를 내며 싸우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초저녁 도심에서 치근덕대는 남자아이들 무리 덕분에 가까운 길을 두고, 안 보이는 곳으로 멀리 돌아가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세 여자들은 여행 내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지로 버티며, 상황을 즐기며, 분노하고, 끝내는 웃고야 말았다.

4. 여성주의 여행?
여성주의 여행의 플래너로 활동하고 있지만, 여성주의 여행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으면 아직 나는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다. 언니들과 길을 떠날 때마다 생각하지만. 결국, 그때마다 다른 답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는 질문. 열 댓 명의 가지각색 언니들이 숙소에 들어설 때마다 밥을 먹으러 갈 때마다 사람들은 호기심에 가득한 얼굴로 묻곤 한다. ‘뭐 하는 분들이세요?’ 처음에는 나 조차도 당황하여 ‘그냥 모임이에요.’라고 대답을 하던가 비실비실 웃으며 얼버무렸다. 나는 왜 자연스럽게 ‘여성주의 여행 커뮤니티에요’라고 말 하기 힘들어 할까. 아마 그렇게 설명할 경우 이어질 사람들의 어리둥절함이 예상되거나, 혹은 연달아 이어질 질문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여성들만의 여행은 여전히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이 아니다. 광주에 사는 남자동기가 나에게 여자들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던 때와 지금은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여자 혼자, 혹은 여자들만으로 꾸려진 그룹들은 지금 현재 얼마나 자유로운 혹은 어느 정도나 위협적인 여행을 하고 있을까? 나에게는 여성들만의 여행을 꾸리는 것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바로 여성주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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