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9호(200611) 북마크
인터넷세계의 동향에 관한 무협지
『웹진화론』(우메다 모치오, 재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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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서점에서 우연히 뽀대나는 책표지(표지에 홀로그램처럼 무지개가 반짝인다)에 그럴듯한 제목이 붙어있기에 읽게 되었다. 일본의 한 IT컨설턴트가 쓴 이 책은 무협지처럼 술술 넘어간다. 10년 넘게 IT업종에서 일한 자신의 경험과 일본과 미국의 사례들을 상당히 압축적으로 잘 버무려, 현재 인터넷업계의 동향에 대한 친절한 해설서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웹2.0이다. 서구에서는 90년대의 Y2K문제처럼 현재 IT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단어라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이 단어를 네트워커를 통해 처음 전해 들었다. 매스미디어나 하다못해 우리회사 전산실 직원에게서도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그리하여 추천사를 쓴 안철수씨는 이러한 한국의 냉담한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고 적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에 따르면, 정보에 대한 개방성과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를 특징으로 하는 웹2.0은 치프(cheap)혁명, 검색엔진, 오픈소스에 의해 더욱 촉진될 것이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보다 싼 가격에 자신들의 다양한 기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한대의 상품리스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검색엔진에 의해 정보의 옥석을 가릴 수 있을 것이고, 오픈소스를 통해 방대한 지적인 공동작업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지금 우리주위에서 그 맹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존은 자신들의 상품DB와 플랫폼을 개방함으로써 그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인터넷상점이 생겨나게 되었고, 리눅스의 진화와 저개발국의 콜레라 퇴치를 위한 정책수립이 인터넷 상에서 전 세계적인 공동작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웹2.0의 잠재력에 대한 저자의 신뢰는 가히 절대적이다. 그는 이런 방향으로의 웹의 진화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확산과 부의 재분배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그의 말대로 블로그 등 기술의 발전이 민주주의를 위한 총표현사회로 나아가는데 큰 디딤돌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급정보는 곧 돈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현대사회에서 그의 발상은 너무 순진무구해 보인다.

사실 오프라인 상에만 존재하던 각종 범용정보들이 온라인 상에 엄청난 기세로 쏟아져들어와 흘러넘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양의 고급정보는 소수에 의해 관리, 통제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 그 정보를 가진 사람들만이 엄청난 돈을 벌고 있으며, 일견 오픈소스를 지지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구글도 실질적으로는 그 내부구성원들끼리만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배타적인 인터넷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웹2.0이 인터넷의 시대정신이며, 이에 몸을 맡겨야 한다고 말하는 예언자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웹2.0이 불특정다수에 대한 낙관주의와 웹 기득 권력에 대한 안티적 심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인터넷을 좀더 개방적이고 생산적인 공간으로 만들려는 관심 없이, 자신들만의 영역에서 울타리를 친 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제조업에만 충실한 일본 대기업들, 기존 거대 미디어 및 인터넷기업)에게 편치 않은 심정을 드러낸다.

이 낙관주의자는 현재 일본기술전문가연합(JTPA, Japan Technology Professionals Association)이라는 비영리기구를 이끌고 있다. 이 기구는 일본의 우수한 인재 1만 명을 실리콘밸리로 이주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걸 보면서 네티즌들에 의해 주장되었던 해커 10만 양병설이나, 한국의 민족사관 고등학교가 언뜻 떠오르던데, 이건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컨설턴트들은 “무엇을 위해”라는 목적의식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을 찾는데 충실한 사람들이다. 이 책의 저자도 십수년간 IT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며, 현재 몇 개 기업의 비상임 고문과 하테나라는 웹2.0을 표방하는 일본 벤처기업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을 위해”에 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가 진정으로 보다 열린 인터넷공간을 염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지나친 낙관주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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