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0호(200612) 표지이야기 [AIDS, 후천성인권결핍증]
HIV 감염인은 직장에서 나가라?
직장, 편견으로 닫힌 문

오병일 / 네트워커   antiropy@jinbo.net
조회수: 8931 / 추천: 75
"2002년 일식당 주방에서 일하던 감염인 김모씨는 감염사실이 알려지자 당일로 해고당했다. 사용자가 종업원들의 감염사실을 의심하여 Y 보건소에 건강검진 및 HIV 검사를 의뢰하고 그 결과를 문의하자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담당자가 먼저 문의 된 비감염인의 검사결과는 ‘이상 없습니다.’로 감염인의 결과는 ‘본인이 아니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응대하여 감염사실이 사용주에게 노출된 것이다. "

위 사례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아래 실태조사)에 실린 여러 피해 사례 중의 하나이다. HIV/AIDS 감염인은 자신의 질병 때문만이 아니라 병원, 직장, 가정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과 인권 침해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직장에서의 편견과 차별, 그리고 이에 따른 해고와 사직은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직장 강제검진, HIV 감염인의 프라이버시권 침해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매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 HIV 검사가 이루어지거나, 그 결과가 당사자 외에 직장 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등 HIV 감염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건강검진에서 HIV 검사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직장에서 임의적으로 HIV 검사를 검사 항목에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임의적으로 검사가 진행됨에도, 검사 전에 본인에 대한 동의절차를 밟지 않는 경우도 많다. 또 다른 문제는 건강검진 결과가 본인에게만 알려져야 함에도, 위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사용자 등 직장 내 다른 사람에게 유출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감염인연대(KANOS) 강석주 사무국장은 “검진 결과는 본인에게만 알려져야 하는데, 사주에게 일괄적으로 통보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직장 검진은 업체에서 직원들의 건강을 잘 돌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직원들의 건강 상태를 감시하고 사직을 종용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감염사실 유출, 해고로 이어져

HIV/AIDS에 대한 편견이 심각한 수준인 상황에서,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직장 내에 알려지면 다른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는 원활한 직장 생활을 불가능하게 한다. 승진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거나, 한직으로 발령을 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미 감염사실을 알고 있는 HIV 감염인은 직장 건강검진이 시행되면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와 같은 편견과 차별은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앞선 실태조사에서 ‘HIV 감염이 직업 및 경제활동에 미친 영향’에 대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51.2%가 HIV 감염으로 인하여 하던 일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 몸이 불편하여(33.9%), ▶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스스로 그만둠 (30.7%), ▶ 동료들에게 알려질 것이 두려워서(11.8%), 회사의 압력으로 직장을 사직한 경우(4.7%)로 나타났다.
강석주 사무국장은 “주변과의 관계가 끊어질 것을 우려해서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관계는 유지할 수 있으니까.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는 모든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HIV 감염은 유지가능한 만성질환의 하나일 뿐

사업주들은 질병에 의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힘들기 때문에 사직하도록 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무지와 편견에 근거한 ‘부당해고’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HIV는 악수하거나 함께 식사하는 등 일상적인 관계를 통해서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는다. 또한, HIV 감염은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유지 가능한 만성질환’의 하나이며, 일반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나 HIV 감염자에 의해 다른 사람이 전염될 수 있다거나, HIV 감염이 되면 정상적인 노동을 할 수 없다는 편견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의 <2003년 전 국민 성 행태 및 에이즈 의식연구>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자가 같은 회사에 다닌다면 쫓아 내거나 직장을 옮겨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28.1%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41.1%로 더 많기는 했지만, 이 설문결과는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고 있다. 과연 당뇨나 고혈압을 앓은 사람에 대해서도 ‘회사에서 쫓아 내야 한다’는 응답이 30% 가까이 나왔을까?

이와 같은 사직, 부당해고, 취업제한 등은 HIV 감염인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이라는 이중고를 야기한다. HIV 감염인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도 조사 대상자의 절반 가까이 무직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석주 사무국장은 “검사할 때 HIV 검사가 필요한 이유나 음성 혹은 양성 판정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담 등이 사전에 이루어져야 하며, 이에 근거하여 본인의 명시적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한, 검사 결과는 본인에게만 통보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직장의 에이즈 대책에 관한 WHO와 ILO의 지침
1988년에 WHO와 ILO가 공동회의를 개최하고 “에이즈와 직장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 후 공동의 팸플릿 “에이즈와 직장에이즈에 대하여 알아둘 일”을 제작하였다. 그 개략은 다음과 같다.

(1) 기본원칙
① HIV에 감염되었으나 건강한 근로자는 다른 동료와 동등하게 대우한다.
② 에이즈로 발병한 근로자나, HIV에 감염되어 있고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근로자는 다른 질병에 걸린 근로자와 동일한 처우를 받아야 한다.

(2) 구체적인 내용
① 스크리닝(집단검사) : HIV 감염 자체는 근로자의 직무수행상의 능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보통의 경우 HIV 감염인이 직장의 동료에게 감염시키는 일은 없으므로 채용 시 또는 채용 전에 HIV 항체검사나 스크리닝을 실시할 필요는 없으며, 이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여기서 말하는 스크리닝이라 함은 혈액검사와 같이 직접적인 방법에 의한 것과, 감염시킬 가능성이 있는 행위의 유무를 질문하거나, 혈액검사 결과에 대하여 질문하는 간접적인 방법 모두 말한다)
② 동료에 대한 정보제공 : 모든 보건의료기관과 같이 에이즈 환자 및 HIV 감염인에 관한 정보는 비밀로 취급해야 한다. 성접촉과 주사 바늘 공동사용을 하지 않는 한, 직장에서 감염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③ 고용자(사용자)에 대한 정보제공 : 피고용자가 스스로 HIV 감염이나 에이즈 발병을 고용자에게 알릴 의무는 없다. HIV 감염인은 통상 직장동료에게 감염위험성을 제공하는 일은 없다.
④ 노동형태와 내용 : HIV에 감염되었다 하여, 일을 하는 데 지장은 없으므로, 노동의 형태나 내용을 변경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만일 발병하여 쇠약해진 경우, 그 피고용자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적절한 노동형태나 내용의 변경을 해 주어야 한다.
⑤ 해고 : HIV 감염은 고용관계를 끝내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발병한 HIV 감염인은 그 사람이 의학적으로 가능하고 적절한 능력을 갖는 한, 가급적 장기간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⑥ 복리후생 : HIV에 감염된 피고용자도 사회보장이나 사회보험 급부를 포함한 노동에 대한 보수와 재 수당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⑦ 교육 : 정보와 교육은 에이즈에 도전하는 유효한 방법이므로, 노동자와 그 가족은 HIV/AIDS에 관한 지식과 교육프로그램을 무료로 수강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
⑧ 차별의 방지 : HIV에 감염된 노동자나 주위로부터 그렇게 의심받는 노동자는 동료, 노동조합, 고용자, 고객으로부터 어떠한 차별이나 모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정보와 교육은 HIV 감염인이 편견 없이 동료로부터 수용 받을 수 있는 기본요소이다. HIV 감염인이나 에이즈환자를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들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는 지원해 주어야 한다.
⑨ 직장에서의 에이즈 대책 : HIV/AIDS에 대한 대책의 입안이나 시행에서 고용자와 노동자는 서로 협조해야 한다.

(출처 : AIDS114, http://www.aids114.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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