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0호(200612) 파워인터뷰
감염인 인권증진이 에이즈 예방이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대표 윤 가브리엘, 변진옥

홍지은 / 네트워커   idiot@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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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되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의젓한 어른으로 자라는 시간이다. 그러나 HIV/AIDS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20여 년 전 무관심과 무지의 수준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 11월 6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발의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 및 감염인 인권증진에 관한 법률안’은 감염인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 최초의 문제제기이다. 법안 개정 과정에 참여한 윤가브리엘 나누리+ 대표와 공동행동의 변진옥 씨는 “감염인의 인권 증진만이 HIV/AIDS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아래 에이즈 예방법)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윤 가브리엘(아래 엘) :
에이즈 예방법은 1987년도에 제정됐다. 전염병 예방법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는데, 지금 보면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법이다. 격리조항까지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에이즈는 공포의 병, 죽음의 병이었기 때문에 법안도 그러한 인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후 5번의 개정을 거쳐서 격리조항처럼 상식을 벗어난 것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치료지시(*)와 같은 강제 처분 조항이 여전히 남아있다.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이 조직된 것은 그간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들이 내용상으로 어떤 문제가 있어서인가.
변진옥(아래 옥) :
5차례의 개정과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6차 개정안까지 개악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최초의 에이즈 예방법이 생겼을 때의 기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그 틀이 변하지 않은 이유는 법 개정 과정에서 감염인 당사자가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 전에 감염인 단체들의 의견서를 받기도 했으나, 법안에 반영된 것은 없었다. 정부가 주도해서 조항 몇 개만 바꾸는 식으로는 예방을 달성하기는커녕,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조장해 그들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번 개정 국면에 개입하기로 했다.

인권이 있는 곳에 예방이 있다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을 목표로 이번에 전면개정안을 제출했다. 인권증진이 예방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엘 :
현재 우리 사회는 내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감염인들은 대개 가족에게까지 자신의 감염사실을 숨긴다. 혼자만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 고통이 크다. 아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 이런 생활이 계속될 경우 무슨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뭐랄까, 그 사람은 굉장히 비관적인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누구도 예상을 할 수가 없다. 감염인 관련 사고가 그래서 발생한다. 감염인이 술집에서 일했다, 성관계를 했다는 등의 사건들 말이다.
만약 이 사람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감염사실을 말하고, 주위 사람들이 “그래? 그것 치료 잘 받으면 오래 산다더라.” 이런 식으로 격려해주면 그들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당장 나 자신과 감염 사실을 숨기고 사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나는 친구들에게 알렸고, 그들은 나를 도와주고 격려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이런 활동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염사실을 말 못한 친구들은 내가 봐도 어떻게 살까 싶을 정도로 힘들어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렇게 극단으로 내몰리다 보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감염인이 당당하게 자신을 밝힐 수 있게 하는 것, 즉 인권증진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
옥 : 전염병 역학에 따르면, 어떤 병이든 전파를 막으려면 4가지 요소에 대한 부분적 혹은 전체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병원체(pathogen)’다. HIV를 박멸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HIV를 없앨 수 없다면 예방 백신을 개발해 ‘비감염인(host․숙주)’의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있으나, 백신이 없는 상황이다.
남은 것은 ‘벡터(vector)’와 ‘사회적 환경(environment)’이다. 벡터란 병원체를 운반하는 과정을 잘라내는 방법을 일컫는다. 성관계에서 콘돔 사용, 혈액의 안전관리 등이 그 대책이다. 그런데 성행위는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처럼 국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왜냐면 성관계는 둘만의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협상의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밀감이지 예방행위가 아니다. 강제로 콘돔을 사용하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에이즈를 정말로 예방하는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적 환경이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치명적인 결점이 되어, 한 사람의 인권을 위협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감염인 스스로 예방행위를 하고, 비감염인이 안전할 수 있다. 벌칙조항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해마다 증가하는 국내 에이즈 감염인구가 이를 방증한다. 현재 에이즈 예방법의 억압적인 패러다임으로는 결코 에이즈를 예방할 수 없다.

활동가들만의 논리가 아닐까. 비감염인이 감염인과 함께 지내는 것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
옥 :
감염인의 권리가 비감염인의 생명권을 위협한다고 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반응은 명백하게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HIV는 일상적인 접촉으로 절대 전파되지 않는다. 성관계에서도 콘돔이라는 수단이 있다. 이것은 감염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비감염인의 생명권과도 충돌하지 않는다. 감염인의 인권증진이 어째서 비감염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몰라서 하는 소리다.
오히려 감염인의 인권을 보호하면 비감염인의 인권은 한층 더 보호받을 수 있다. 장애인이 편하게 탈 수 있는 버스는 비장애인도 편하게 탈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감염인이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다면 비감염인은 훨씬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감염인이 병원에서 치료거부를 당하는 이유는 병원이 소독을 잘 안 해서이다. 소독이 잘된다면 비감염인은 HIV뿐만 아니라 무수한 미생물로부터 가장 강력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감염인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면 비감염인이야말로 정말 잘 사는 사회이다.

허울뿐인 익명검사와 노동권 보장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6차 개정안에 대해 평가해 달라.
옥 :
몇 가지 용어 정리가 있었다. ‘감염자’를 ‘감염인’으로 바꾸었다든지. 또 익명검사 조항을 신설했다. 질병관리본부의 HIV/AIDS 관리지침에서 권장사항으로 익명검사를 두었는데 이제 법으로 규정을 한 것이다. 직장에서의 차별 금지도 명시했다. 국제적인 여론과 감염인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정부도 감염인 인권이 실효성 없이 과도하게 탄압받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법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두려워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옥 :
익명검사를 법률로 끌어올린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검사만 익명으로 하면 뭐하나. 보고는 모두 실명으로 한다. 정부가 익명검사를 도입한 이유는 검사를 더 많은 사람에게 확대하기 위해서다. 분명 검사는 예방과 감염인의 건강을 위해서 중요하다. 그러나 감염인 색출이 목적이 아니라, 공중보건을 위한다면 익명검사와 익명보고를 연동해야 한다. 어찌 보면, 검사의 익명․실명 여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감염인을 실명으로 관리하는 상황이다. 이를 간과한 익명검사의 법제화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겠는가.
직장에서 차별 금지를 선언하는 것 역시 좋다. 근로기준법에 있는 내용을 에이즈 예방법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 줬다. 하지만, 이 역시 핵심을 못 집었다. 실제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감염인도 있지만, 제 발로 직장을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익명보고를 한다면, ‘이 사람이 바로 감염인이다.’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예방뿐만 아니라 감염인 지원을 위해서라도 실명 보고는 필요하지 않나.
옥 :
보고과정에서 감염인의 신원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감염인의 정보가 필요한 이유는 의료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어느 지역에서 감염률이 얼마만큼 증가하고 있는지 확인해서 의료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쓸 뿐이다. 이 과정에서 감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역학조사서에는 주소, 주민등록번호뿐만 아니라 ‘당신의 성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까지 있다. 실명 노출의 부작용이 심대한 상황에서 감염인에 대한 정보 수집은 사례조사(*)에만 그쳐야 한다. 게다가 실명보고는 예방에 도움이 전혀 안된다. 익명으로 보고하지 않으면 누가 익명검사만 믿고 검사를 하겠는가. 감염인들이 심리적 안정을 누리게끔 익명보고를 해야 한다.
감염인 지원을 위해 실명이 필요하다지만, 감염인 정보 보고 체계와 지원 체계는 서로 분리되어있다. 보고체계에서 얻어진 정보로 감염인에 대한 약값과 치료비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질병관리본부에 집적된 정보로 감염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 감염인이 시군구의 사회복지과에 따로 신고를 해야 국민기초생활지원법으로 치료비 지원을 받는다. 물론 지원과정에서는 실명이 필요하고, 그것까지 반대하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로 실명을 비롯한 감염인의 정보가 불필요하게 집적되는 것을 반대한다.

감염인들은 왜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가. 질병의 유․무로 인한 차별 금지를 법이 보장한다면 감염인이 움츠러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엘 :
감염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으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HIV에 대한 편견이 많은 상황에서 감염인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루에 약을 두세 번 먹는데, 직장에 다니면 보통 화장실에 가서 먹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호기심이 얼마나 많은가. 그 호기심 때문에 감염인들은 고통받는다. 하다못해 병원에서 약 상자를 받아도, 에이즈 치료제라고 쓰여 있으면 상자를 버리고 약병만 가지고 간다. 감염인은 에이즈에 이 정도로 민감하다. 그러니 직장에서 감염사실이 알려지면 자기 발로 나오는 수밖에 없다.
옥 : 감염인들은 자신의 HIV 감염사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때문에 직장 내에서 HIV 감염 사실이 알려지게 하는 직장검진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HIV 검진을 일률적으로 받게 하거나, 그 내용이 고용주에게 보고되는 일들이 사라져야 한다. 그런 것들이 감염인을 노동권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노동권을 지켜달라는 선언만으로는 감염인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없다.

편견과 통제의 정점, 전파매개행위금지

공동행동의 전면개정안은 기존의 법안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안과 어떻게 다른가.
엘 :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 폐지가 가장 큰 차이점이다. 감염인을 악의적인 전파자로 규정하는 현행 에이즈 예방법의 핵심이 바로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이다.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성행위를 하면 처벌한다는데, 사실 예방은 감염인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비감염인도 같이 해야 한다. 감염인한테만 예방을 강조하는 것도 일종의 억압이다. 왜 예방을 감염인만 해야 하나. 감염인이 항상 콘돔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면 비감염인이 예방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감염인에게만 예방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감염인을 단지 ‘퍼뜨리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독소조항이다. 의도적으로 남에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했다면 형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 굳이 감염인의 삶을 억압하는 조항을 남겨둬야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실제로 전파매개행위를 하더라도, 당사자만 알지 다른 누가 알겠는가? 보건소 직원이 성행위 하는 것까지 쫓아다니면서 관리할 수도 없다. 그러니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다.
옥 : 또 한 가지 특징은 학교, 직장, 병원에서의 에이즈 교육을 명문화한 점이다. 감염인에게는 특히 의료인과의 상담이 중요하다. 감염인이 질병 때문에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의료인이다. 그래서 의료인이 차별적인 태도를 보일 때, 감염인들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아는 사람이 저 정도인데, 보통사람들은 어떨까 싶은 거다. 때문에 의료 인력들이 끊임없이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 내용을 감염인에게 잘 알려줘야 한다.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자신의 건강과 예방을 위해 어떤 것들을 고민해야 할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등 감염인에게 필요한 지식이 많다. 이는 비감염인도 받아야 할 교육이다.
엘 : 감염인은 수혈하면 안 된다는 교육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감염인 됐다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소리만 듣는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보건소장은 나에게 함부로 성관계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했다. 어떤 정보를 주고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라는 말 뿐이었다.
옥 : 감염인이 앞으로 모든 에이즈 정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기존의 ‘후천성면역결핍증 정책위원회’와 달리, 감염인의 참여를 의무화한 ‘후천성면역결핍증 대책위원회’를 설립을 법에 담았다.

법은 인간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기존 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할 수도 있는데 전면 개정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옥 :
사실 이 질문은 에이즈 예방법을 현행 전염병 예방법에 통합시키는 게 어떠냐는 취지로 많이 한다. 에이즈가 다른 질환과 특별할 것이 없다는 호의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전염병 예방법이 급성이면서 불특정다수에 전염되는 전염병들, 예를 들어 장티푸스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법이라 에이즈처럼 만성적인 질환에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행 전염병 예방법 역시 문제점이 많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또한, 감염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은 아직도 특별한 보호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질병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다는 차원에서 폐지 의견이 공동행동 내에서 더 많았지만,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위헌소송도 곧 할 예정이다.

법이 사회적으로 만연된 차별과 편견을 일소할 수 있는 도구는 아니다. 실제로 감염인의 삶을 옥죄는 것은 법이 아니라 비감염인들의 시선 아닌가. 법 개정 운동이 효과가 있을까.
엘 :
법이 실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 못 한다. 왜냐하면, 감염인은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소에서 3개월에 한 번씩 면담을 해야 한다. 만약 연락이 끊기면, 보건소 담당자가 집으로, 때로는 직장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이사를 할 때마다 알아서 찾아온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감염인은 관리를 받아야 한다. 일종의 ‘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옥 : 법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한꺼번에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법은 국가가 그 대상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헌법을 왜 만드는가? 우리 생활을 구체적으로 규율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헌법은 인간에 대해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국가에 요구할 뿐이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에이즈 예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1985년에 우리나라에 첫 번째 에이즈 환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외국에서 에이즈라는 병이 생겼는데, 무서운 병이라더라.’라는 추상적인 두려움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1987년에 에이즈 예방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그 두려움이 구체화되었다. 잘못 만들어진 법이 특정대상을 적시하면서 사회는 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에이즈 예방법은 감염인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틀이다. 국가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법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 틀이 바뀌지 않는다면 차별과 편견을 없애자는 말이 선언에 불과해진다. 법 개정 운동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행동이 제출한 법안의 전망은 어떠한가.
옥 :
미리 어떤 타협점을 둔다는 점에서 말하기가 곤란하다. 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개정안이 문제가 많고 여전히 그 기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우리 법안을 통해서 보여줄 것이다. 당연히 법안의 통과가 목표다.

다른 나라의 에이즈 관련법을 소개해 달라.
옥 :
사실 외국에서 에이즈만을 따로 규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만과 필리핀 정도다. 일본은 몇 년 전에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을 폐지하고 이를 감염증예방법에 편입하면서, 에이즈에 대해서는 실명보고를 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필리핀 법은 법 자체가 국제가이드라고 볼 정도로 매우 선진적이다. 그 외에 미국 같은 나라는 여러 법률에 관련사항을 분산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주마다 정책이 조금 다르다. 우리와 법체계가 다른 서구는 보건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 국가적 전략 차원에서 에이즈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국제적 가이드를 많이 참고해 감염인들의 리더십을 중요시한다.

그러한 법과 정책이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는가.
옥 :
꼭 법률의 효과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서구에서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상당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태국은 실명보고체계를 익명보고로 전환한 후, 감염률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 의도가 인권을 보장하려고 한 것이든 아니든 그러한 장치들이 실제로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다. 감염인들의 커뮤니티도 많이 활성화되어서, 다른 환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알린다

약값과 치료비 지원 때문에 어떤 감염인들은 한국 정부의 에이즈 정책을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이러한 대(對)정부 활동이 부담스러울 것도 같은데.
엘 :
맞는 말이긴 하다. 현재 에이즈 예방법에 관리 규정만 있는 것도 아니다. 치료비 지원, 쉼터 운영과 관련된 내용도 있다. 그래서 감염인 중에는 이런 활동 하면 우리가 괜히 손해 보는 것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것이냐고 말한다. 또 에이즈 예방법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을 옥죄어 온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보건소의 관리도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행동을 할 때 감염인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을 설득해서 자신의 권리에 대해 깨우치게 하는 일이 좀 힘이 든다.

7월 4일 공동행동 발족 이후 반년 동안 법 개정 운동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밝힌다면.
엘 :
입원을 하는 바람에, 공동행동 활동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동행동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했다.
우리의 목표는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에이즈 예방법에 대해 제대로 알려서 차후에라도 법 폐지 운동을 할 때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1987년에 이 법이 제정됐지만 그간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2002년에 나누리+가 처음으로 정부 관리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토론회를 열면서 에이즈 예방법의 문제가 논의되었다. 또 에이즈라는 주제가 선정적일 수도 있어 쉽게 눈길을 끌지만,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금방 알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서 대중적으로 알리는 일이 힘이 들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공동행동은 에이즈 예방법의 문제점을 정말 많이 알렸다.
옥 : 그 이전에 나누리+에서 활동할 때는 그냥 추상적으로 ‘감염인들과 함께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감염인들과 같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니, 그들이 실제로 겪는 일들, 고민을 많이 알게 되었다. 관계가 확장되면서 내 활동의 목표가 더 구체화 되었다. 우리가 믿어왔던 바와 마찬가지로, 또 대다수의 질병이 그러하듯이 에이즈는 개인의 잘못도 아니고 개인의 고통에만 머물러도 안 된다. 사회 전체의 책임과 고통이 되어야 한다. 에이즈를 통해 나는 세상을 더욱 넓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얻었듯이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감염인들 모두 더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힘이 될 것이다.
* 치료지시 : 에이즈 예방법 제14조의 ‘치료지시’와 제15조의 ‘강제처분’ 조항을 일컫는다. 정부 개정안에서는 ‘치료지시’를 ‘치료 및 보호의 권고와 조언’으로 ‘강제처분’을 ‘치료 및 보호 조치’로 바꾸었으나 내용이 다르진 않다. 게다가 현행 강제처분의 내용인 ‘치료’를 개정안에서 ‘보호’에까지 확대함으로써 1999년에 삭제된 격리보호 조항을 되살리고 있다. 감염인의 치료 및 보호는 감염인이 원하여, 되는 것이지 국가가 이를 지시할 수 없다. 오히려 국가의 치료 및 보호조치에 대한 지시는 치료 및 보호를 원하는 감염인의 진료를 거부하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해 해야 할 것이다.
* 전파매개행위금지 : 현행법과 정부 개정안 제19조의 ‘전파매개행위의 금지’ 조항은 ‘감염의 예방조치 없이 행하는 성행위’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타인에게 전파할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전염의 가능성을 근거로 감염인의 사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여지를 두어 법리적 문제점들이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 사례조사 : 현행법과 정부 개정안 제10조의 ‘역학조사’ 조항은 ‘감염자 및 감염이 의심되는 충분한 사유가 있는 자와 감염되기 쉬운 환경에 있는 자’에 대하여 역학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반면, 공동행동의 전면개정안 제15조는 ‘역학조사’ 대신 ‘사례조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기존의 ‘역학조사’라는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전염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에이즈에 대해서도 연장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염병 역학에서도 산발적 발생에 대해서는 ‘환자 사례조사’, 유행 상황에 대해서는 ‘유행 역학조사’라는 용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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