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0호(200612) 표지이야기 [AIDS, 후천성인권결핍증]
에이즈 치료제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제약회사, 에이즈 확산의 주범

권미란 /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rmdal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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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UNAIDS, 2006)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HIV 감염인이 4,0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2,600만 명으로 전 세계 HIV 감염인의 2/3를 차지한다. 아시아에는 830만 명,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는 150만 명, 라틴아메리카에는 160만 명의 HIV 감염인이 살고 있다. 국가별로는 인도에 570만 명, 남아프리카공화국에 550만 명으로 가장 많다.
그런데 미국이 전체 에이즈 치료제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아시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 사는 HIV/AIDS 감염인 약 3,800만 명에게 공급되는 에이즈치료제는 전체 에이즈 치료제 시장의 30%도 안 된다는 얘기다.
2005년 한 해 동안 410만 명이 새로 에이즈에 감염되었고, 280만 명이 에이즈로 숨졌다. 하루에 8천 명이 에이즈로 사망하고 있다. 약이 있어도 약을 못 먹기 때문에 죽어가고, 에이즈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 중이다.

죽음을 부르는 약값

로슈(Loches)는 ‘푸제온(Fuzeon)’이라는 에이즈 치료제를 2003년에 미국과 유럽에서 환자 1인당 연간 약 2만 달러(약 2천만 원)에 시판하였다. 한국에서도 이 약을 판매하도록 허가하였다. 그러나 로슈는 한국에서 푸제온을 판매하지 않는다. 로슈가 요구한 가격에 못 미치는 보험약가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로슈는 미국, 유럽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같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푸제온

올해 16차 국제에이즈회의가 진행되고 있던 8월 13일에 제약회사 애보트(Abbott)는 “개발도상국에서 ‘칼레트라(Kaletra, lopinavir/ritonavir)’에 대한 접근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환자 1인당 연간 칼레트라의 약값을 아프리카와 최빈국에서는 500달러로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지역의 환자에게 500달러는 죽음을 부르는 가격이다.

제약회사가 버린 땅

가격 면에서뿐만 아니라 의약품의 연구․개발에서도 돈 없는 환자는 배제된다. 제약회사 애보트는 냉장보관을 해야 하는 에이즈 치료제를 세상에 내놓았다. 대부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민중에게 냉장보관 에이즈 치료제라니!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알약을 만들라는 의사와 환자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나서야 애보트는 알약을 만들었다. 물론 그 약도 비싸서 못 먹기는 매한가지이다. 세상에서 에이즈환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 아프리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환자를 위한 치료제를 만들 요량이었다면 에이즈 환자가 제일 많은 아프리카의 상황을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돈 없는 대륙, 제약회사가 버린 땅이다.

제약자본을 위해 에이즈 이용하기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확산시키는 데 에이즈를 이용하고 있다. 2003년 그는 ‘에이즈 구제를 위한 대통령 긴급계획(PEPFAR, 이하 긴급계획)’을 발표하고, 150억 달러(약 15조)를 들여 5년에 걸쳐 계획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시 대통령이 긴급계획을 발표한 후, 2003년 7월에 아프리카 국가들을 순방했을 때 HIV/AIDS 감염인과 활동가들은 5년에 걸쳐 계획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늦다고 비판했다(ACT UP, 2003). 이에 부시는 ‘아프리카의 의료 인프라가 수십억 달러를 흡수하기에는 너무 약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시는 긴급계획을 관장하는 미국 국제 에이즈 책임자로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CEO였던 토바이어스(Tobias)를 임명했다. 그는 2004년 4월에 긴급계획에서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의약품의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복제의약품(*)에 대해 괜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복제의약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ACT UP, 2004). 복제의약품의 품질을 문제로 삼는 이유는 거대제약사의 비싼 오리지널 의약품을 팔기 위해서이다. 2004년 당시 67개국의 360여 개 NGO들은 부시의 복제의약품 사용 차단에 대한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부시가 자신에게 많은 정치자금을 대는 거대제약사에게 보상해주려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부시의 긴급계획은 복제의약품 사용금지를 옹호하는 국가 혹은 파트너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초국적 제약자본에 이윤을 몰아주고 있다.

에이즈 환자의 생명과 맞바꾸는 FTA

9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주도로 시작된 FTA(자유무역협정, Free Trade Agreement)는 에이즈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FTA는 미국식 법과 제도 혹은 그 이상을 각국에 관철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결국, 초국적 제약회사를 위해 지적재산권에 대한 ‘세계규칙을 변화’시킬 것이다. 즉, 초국적 제약회사가 전 세계에서 ‘의약품 독점 연장’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FTA가 될 한미FTA는 양국의 약속으로 끝나지 않고, 도미노게임처럼 다른 나라의 특허권을 강화시킬 것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체결한 칠레, 싱가포르, 호주, 중앙아메리카, 페루 등과의 FTA는 모두 값싼 복제의약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고 의약품 특허권을 강화시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FTA는 또한,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한다. 인도, 브라질, 남아공,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짐바브웨 등 여러 나라에서는 에이즈 치료제를 국내에서 싸게 생산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공공제약회사를 통해서 혹은 강제실시를 통해서 혹은 인도의 값싼 복제의약품 수입 등의 방법이 있다. 그런데 초국적 제약회사는 특허권과 정보독점권을 더욱 강화하여 값싼 약을 무상공급 하고자 하는 정부, 국제기구의 노력과 환자들의 투쟁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현재 협상 중인 태국과 미국의 FTA도 80만 명의 HIV/AIDS 감염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치료가 필요한 17만 명 중 현재 8만 명만이 에이즈 치료제를 공급받고 있다. 그나마 8만 명의 에이즈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태국 국영제약회사(Government Pharmaceutical Organization)에서 2002년부터 에이즈 치료제를 직접 생산하여 싸게 공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용절감으로 태국 정부는 ‘전체 에이즈 치료 접근 프로그램(Thai program of universal subsidized access to AIDS treatment)’을 유지하면서 무상공급을 하고 있다. 그러나 2차 치료제는 특허가 있기 때문에 국영제약회사에서 생산할 수 없고, 1차 치료제보다 평균 14배 비싸다. 더욱이 태미FTA가 체결되면 국영제약회사가 에이즈치료제를 생산할 길이 차단된다. 태국의 HIV/AIDS 감염인들은 태미FTA가 국가의 에이즈 치료 프로그램에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며, 태미FTA 저지 투쟁을 펼치는 중이다.

제약자본이 에이즈확산의 주범

에이즈는 성차별, 인종차별, 성 소수자 차별, 빈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해 확산되는 전 세계적인 질병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에이즈는 성소수자, 흑인, 여성, 이주노동자, 성 노동자 등 사회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즉, 제약자본은 특허권과 비싼 약값으로 엄청난 이윤을 남기면서, 에이즈를 확산시키고 HIV/AIDS 감염인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그 책임을 감염인에게 돌린다. 전 세계 HIV/AIDS 감염인에게 FTA는 생명포기각서와 같다. HIV/AIDS 감염인이 “에이즈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제약자본의 탐욕 때문에 죽는다.”라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복제의약품 : 특허 보호 중인 의약품(오리지널 의약품)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특허가 만료됐거나 특허보호를 받지 않는 의약품을 통칭한다. 원래 생산된 약품의 특허 기간이 끝난 뒤, 다른 제약사가 공개된 기술과 원료 등을 이용해 만든 같은 약효·품질의 제품이다. 흔히 쓰이는 '카피(copy)약'의 정식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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