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0호(200612) 뜨거운감자
그들만의 리그, 지식재산기본법

김지성 /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community@kdl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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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하면 우리도 한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이하 산자위)에는 지금 3개의 지식재산(기본)법이 발의되어 있다. 시간 순으로 보면 김영선, 정성호 그리고 이병석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들이다. 이 세법안의 공통점은 일본에서 2002년 제정된 지적재산기본법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2002년 국회 시정방침 연설을 기점으로 법안이 추진되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산업의 국제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 활동과 창조 활동의 결과물의 지적재산으로서의 전략적 보호와 활용을 국가 목표의 하나로 설정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일본의 90년대의 불황을 극복하고 신흥공업국의 추격에서 벗어나는 방안으로 지적재산의 창조, 보호 그리고 활용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법을 거의 그대로 베낀 산자위의 세 법안들도 동일한 기조를 담고 있다. 차이라면 김영선 의원과 정성호 의원의 법률안에는 일본법에는 없는 지식재산부(처)를 대통령 산하(일본법에서는 총리 산하의 지적재산전략본부)의 위원회에 추가하여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원회 급의 조직을 염두에 둔 법률을 베끼면서 부처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이 두 법안이 내용에서 맞지 않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글을 통해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법안의 추진 체계와 같은 운영 또는 절차적인 측면이 아니다. 운영과 절차의 내용은 사실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국무위원들이 전체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고 여기서 지적재산 전략을 조정 수립하고 매년도 시행계획을 만들어 수행하는 것이다. 추진체계를 두고 보면 정보화촉진기본법에 근거한 정보화추진위원회와 유사한 체계다. 문제는 법안이 요구하는 지적재산 전략이라는 것이 지적재산의 창조, 보호 그리고 활용에 관련하여 지적재산 제도, 학술연구 기관 그리고 교육 등의 변경을 국가, 대학과 같은 학술연구기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사업자들이 추구하라는 것이다.

지식으로 배불리 먹고살자고? 누구 배가 부를까?

지식이 인류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개선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많은 국가가 지식의 창조와 활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지식재산(기본)법을 살펴보면 한 사회에서 지식이 차지하는 자리를 어느새 지적재산이라는 말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적재산은 지식의 창조와 유통을 시장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게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우리의 사회에서 지식의 창조와 유통을 전적으로 시장에 맡기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환경과 같은 공익 연구나 기초 과학 연구와 같이 상품화 가능성이 없는 지식의 창조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법안에 따르면 대학이나 각종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출연연구소는 ‘지식재산’ 창조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공적 연구기관이나 대학 등이 얼마나 열악한 연구조건 하에 놓여 있는지 생각한다면 지식재산 창조에 이바지하라는 것은 자신들의 학문적 자율성, 공익적 연구 그리고 장기적인 지식 기반을 창출하는 기초연구는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몇 가지 간단한 통계를 살펴보자.

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연구개발투자는 대략 4조원에 달한다. 삼성그룹이나 LG그룹 전체가 아니다! 같은 해 연구개발주체별(총 3개 분류 -공공연구기관, 대학, 기업체) 사용연구개발비를 보면 공공연구기관이 약 2조6천억 원, 대학이 약 1조9천억 원을 사용했고, 성격별(총 3개 분류 - 기초연구, 응용연구, 개발연구) 구분에서 보면 기초연구가 2조7천억 원에 불과하다. 또한 2003년 연구개발비 상위 10개사에서 이 두 회사를 뺀 나머지 8개사의 연구개발비를 다 합쳐도 이 두 회사의 연구개발비에 1조원 이상 모자란다. 이런 자원 배분은 국가 전체 연구개발(R&D)에서 대학이 수행하는 비중이 2003년 기준으로 10.1%에 머물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아래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통계를 다 무시하고 공익연구고 기초연구고 다 필요 없으니 지적재산 많이 만들어서 지식 산업을 키워서 배불리 먹고살자고 한다면 지식재산(기본)법안은 찬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역시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지식이 경제에 기여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혁신을 통해서다. 더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기술, 더 깨끗한 기술, 그리고 더 편리한 기술과 같이 것이 기술 혁신의 예다. 혁신은 사회에 유용하다.
지적재산제도 옹호론자들(법안의 취지도 이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은 이러한 혁신을 유도하기 위해 경제적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지적재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 지적재산제도는 항상 혁신에 도움이 될까?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지식의 창조를 방해하기도 한다. 특히나 신생 연구 분야나 원천 분야에서 지적재산은 후속 연구나 상업화 연구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연구자들의 협력이 요구되는 상황에 장애를 미치기도 한다. 때로는 연구 결과의 검증마저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연구개발에서 경쟁 못지않게 협력이 새로운 지식의 창조와 확산에 도움이 된 것은 과거나 현재의 인류의 역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OECD의 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성장론자의 입장에서도 우리나라의 연구개발에 대한 접근법이 얼마나 문제가 큰지 지적한 것이 있다. 기초연구는 부족하고 대신 차세대성장동력사업과 같은 특정 산업 분야의 연구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혁신의 형태는 단지 최첨단의 생명공학 기술 개발과 같은 것만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혁신은 모방혁신과 첨단혁신이 있다고 한다. 지적재산제도는 첨단혁신에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모방혁신에는 불리한 제도다. 우리나라의 산업 모두가 첨단 산업이던가? 아직까지도 우리는 앞선 기술을 배우고 이를 개량하여 산업화하는데서 경제 성장을 일구어 온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적재산도 재산이니 재산이 많으면 좋을 것 같지만, 지적재산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많다고 우리 사회가 부유해지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상황이 이렇지만, 지식재산(기본)법이 통과된다면 절대 손해 보지 않을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바로 지적재산제도의 운용을 담당하는 관료들과 법조계의 사람들이다. 지적재산이 늘어난다는 것은 이런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조직과 사업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학계의 지적재산제도 대가이자 지적재산전략본부의 본부원이기도 하였던 나카야마 노부히로 교수가 사퇴하기 전 마지막으로 참석한 제6회 지적재산전략본부 회의 의사록을 보면 지적재산제도에 대한 맹신과 불합리한 의견 수렴에 대한 노교수의 분노를 엿볼 수 있다. 국회의원들은 일본법 베끼기에 앞서 일본의 분노도 함께 들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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