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호 영화
런던, 디스토피아... 그리고, 28일후
감독 : 대니 보일 / 출연 : 실리언 머피, 나오미 해리스, 노아 헌틀러 / 2003년

홍문정  
조회수: 4488 / 추천: 61
영국의 한 영장류 연구시설에 무단 잠입한 동물 권리 운동가들은 여러 대의 스크린을 통한 폭력 장면에 노출되어 있는 침팬지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거나 우리에 갇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침팬지들이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연구원의 경고를 무시한 채, 동물 권리 운동가들은 그들을 풀어주게 되고, 그 즉시 감염된 동물들로부터 피의 공격이 시작된다. 그리고 28일후....영화 28일 후는 이렇게 시작된다.
대니 보일의 이 영화는 언뜻 보기에 분노라는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20초안에 감염자가 되는 좀비 영화의 경향을 담는 듯 하지만, 좀비들의 폭력성이나 혐오스러움 등을 통해 관객에게 무언가를 주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대니 보일의 이전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다시 한번 나타내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대니보일은 <쉘로우그레이브> 그리고 <트레인스포팅>에 이어 이 영화에서 또한 인간의 폭력성, 배신 등을 통해, 인간은 결국 믿을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계속해서 지적하고 있다. 영화 초반부터 이어지는 좀비들의 양상은 관객들에게 감상적인 혐오감을 주기는 하지만, 극 후반부에 보여주는 비감염자들의 폭력성(인간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보다는 덜 혐오스럽다.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겨우 주파수를 맞춰 흘러나온 라디오 방송은 그들에게 한줄기 빛을 선사한다. 그러나 감염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겠다며 비감염자들을 유인한 군인들의 말은 ‘영국의 미래를 위해’라는 논리를 세워 여성을 유인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비감염자들의 보호나 인류의 종족 보존 따위에는 전혀 관심 없는 듯 보이고, 다만 따분하게 갇혀 지내는 생활과 공포심을 좀비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으로 해소한다. 살인에 대해서 주저하던 짐 역시, 외딴집을 찾아 들어가 어린 좀비를 죽이고, 셀레나를 범하려 했던 군인의 눈을 파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좀비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한 이후, 군인들의 지도자쯤으로 보이는 헨리소령이 내뱉은 “전에도 살육을 자행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정상”이라는 말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그래왔던 인간의 폭력성을 한층 더 꼬집는다. 28일 후, 전편에 흐르는 분노라는 바이러스는 단순히 좀비를 생성시키는 기재로서의 것이 아니라 극한에 몰릴 때 인간 스스로가 갖고 있는 비인간적인 요소로서 작용한다. 분노에 의해 비인간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갖는 폭력적인 내면성이 생존이라는 변명 아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합법을 가장한 가장 극악한 폭력적 공간은 아마도 전쟁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영화 후반부의 군대에 대한 정치적인 코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듯 하다. 이라크 전에 대한 파병과 불타는 이라크의 모습들을 그대로 영국에 투영해 놓은 듯한 여러 가지 이미지들은 감독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많은 공통점들을 갖게 한다. 극중 짐과 셀레나, 프랭크와 해나 부녀 등이 자신들을 보호해주겠다던 라디오 방송을 듣고 군인들을 찾아 멘체스터로 떠날 때, 멀리서 보이던 불타는 멘체스터 시의 모습은 CNN에서 보여주던 바그다드의 모습과 흡사하다. 폐쇠회로 느낌을 살린 디지털카메라는 폐허가 된 런던의 모습을 마치 전쟁이 끝난 후의 이라크의 황량함을 보여주는 듯하다면, 전쟁에 너무 과민한 탓일까? 또한 분명치 않은 분노의 대상을 향해 무차별한 폭력을 행사하는 군인들의 모습에서 애초부터 있지도 않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찾다 그 명분조차 없어진 상황에서 희생자만을 더해 가는 침략전쟁을 계속하는 미국과 그에 놀아나는 영국이 보인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영화 종반부, 대니보일은 두 가지 결말을 보여주는데 하나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짐 일행이 누군지 알 수는 없으나 그들을 발견하고 구출하러 오는 헬기를 만나게 되는, 그래서 결론은 그 끔찍한 공포에서의 해방된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결국 주인공 짐이 죽고 셀레나와 해나는 또다시 분노와 폭력만이 난무하는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듯, 병원 복도를 걸어나가는 결말이다. 대니보일 감독이 얘기하고자 했던 디스토피아 적인 세계관에서의 결말은 단연 후자일 것이다. 셀레나와 해나의 희망인 짐을 죽임으로써 인간에게 있어서 삶이란 희망 없는 공허함일 뿐이라는 것, 그저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어쨌든 이 영화 28일 후가 대니보일에게, 헐리웃으로의 외유에서 보였던 타인을 위한 영화가 아닌, 자신만의 색깔을 다시금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디지털 카메라의 기동성을 살린 런던의 생생한 모습 속에 담겨 있는 자신만의 색깔을 더 이상 헐리웃의 간판 속에서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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