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호 기획 [WTO반대투쟁단, 멕시코 칸쿤을 가다]
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한 투쟁의 세계화 칸쿤의 경험

이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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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라울리(Rick Rowley)와 마이클 아이젠멩거(Michael Eisenmenger)의 메일을 건네 받은 것은 칸쿤 투쟁이 있기 2주일 전쯤일 것이다. 그들은 칸쿤 투쟁에 관한 장편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인디미디어센터(이하 IMC)를 기반으로 한 비디오 액티비스트들이 각각 작업한 것을 조합하여 60분 가량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몇 번의 비행기 갈아타기를 마치고 IMC에 도착한 시각은 6일 저녁이었다. 이미 많은 미디어활동가들이 IMC를 기반으로 각각의 몫을 하고 있었다.

이 IMC는 굉장히 특별한 곳인데, 어떤 구체적인 체계나 규칙이 존재하지 않고, 활동가들이 스스로 필요한 간단한 룰을 정하고 거기에 맞춰 자율적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그 운영은 활동가들이 기부하는 돈으로 유지하며, 각 구역의 책임 또한 자율적으로 조절하여 운영하고 있다. 나는 약 20달러의 기부금을 내고 이곳 IMC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곳의 사용방법을 소개한 친구는 슬로베니아에서 온 ‘아이레(aire)’라는 친구였다.
그녀는 디지털 사진을 찍고 그에 관한 기사를 제공하는 저널활동가였다. 머나먼 슬로베니아에서 이곳 멕시코 칸쿤까지 와 미디어운동을 하는 그녀의 열정은 남달랐다. 그녀는 8일 밤, 칸쿤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멕시코 학생들이 경찰들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다면서 이것을 함께 취재하러 가지 않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불행히 나는 스페인어를 몰라 그들의 ‘택’을 알아내거나 그곳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아내기가 수월하지 않아 취재를 포기하고 말았다.

릭을 만난 것은 7일 오후였다. 그는 몇몇 미디어활동가들과 전략회의(?)를 하고 있었다. 기술적인 미디어파일의 조합에 관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영상은 이 기술적인 문제를 얼마나 잘 소화해내느냐에 따라 발빠른 다큐멘터리 완성의 승패가 달렸다고 볼 수 도 있다. 회의가 끝난 뒤 그와 인사를 나누고 나는 내가 가진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첫째는,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가 릭의 배급라인을 통해 배급되기를 바란다는 것이고, 둘째는 지속적인 연계를 통해 서로의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실제 그 제안을 성사시키기 위한 실무적인 부분은 앞으로 맞춰나가야 할 숙제이다. 릭에게도 또한 한국에 배급되는 것이 좋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한국배급에 대해 제안했다. 그런데 그는 이미 영상미디어센터 김명준 소장과 여러 차례 접촉하면서 그를 통한 배급라인을 이용할 계획이 있었다. 단독 활동하는 비디오저널리스트가 배급라인을 제안한다는 것은 그로서도 믿기지 않는 제안이었을지 모른다. 어찌됐든 릭을 포함한 몇몇 활동가들과 이야기하면서 지속적인 교류와 정보교환을 논의한 것은 이번 칸쿤활동에서 가장 소득이 컸던 부분이다.

사실 이후에는 개별적인 작업만이 진행될 참이었으나, 이경해 씨의 죽음은 한국미디어활동가들과 투쟁단을 바쁘게 만들었다. 이경해 씨의 죽음에 관해 주류미디어는 굉장히 우발적인 사고인 것처럼 계속해서 떠들어댔는데, 이에 대해 IMC는 한국참가단이 그 진위를 전달할 수 있는 라디오생방송을 준비하겠다고 제안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아지드’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라디오활동가가 이 제안을 들고 왔다. 우리는 그들의 도움으로 사건의 진위와 그의 죽음을 알리는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한국참가단의 공식입장은 민주노총의 손낙구 대변인이 맡았고, 영어통역은 환경운동연합의 김춘이 국제연대팀장이, 그리고 영어를 스페인어로 통역하는 일은 멕시코 치아파스 미디어센터의 루즈가 맡았다. 3개 국어가 오가는 라디오 생방송은 한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것이 IMC의 숨은 저력이라고 생각했다. 주류미디어가 왜곡하는 진실에 대한 발빠른 대안방송이야 말로 진정 대안미디어센터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인 것이다.

칸쿤 투쟁이 끝나고 릭을 비롯한 몇몇 비디오활동가들은 그곳에 남아 자신의 작업을 진행하며 기획한 장편을 만드느라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멕시코시티로 이동해야만 했기에 후반작업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이들과는 홍콩이나 제네바에서 투쟁할 때 다시 만날 것을 다짐했다. 인디미디어 컨버젼스가 끝나던 7일 저녁 릭을 비롯한 활동가들이 팔라파스 광장에서 마련한 문화행사가 아직 기억에 남는다. 릭은 ‘제4차 세계대전(Forth World War)’라는 작품을 즉석해서 게릴라 상영했다. 스페인어 내레이션을 미리 준비하고 짬을 내어 작품을 상영하도록 기획한 그의 작업 열정이 대단했다. 국제연대의 길은 아직도 멀고, 미디어 네트워크의 길도 멀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 가능성은 무한한 것이다. 투쟁의 세계화, 희망의 세계화를 위해 모두가 연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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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릭 라울리(Rick Rowley): 비영리 미디어 그룹인 빅 노이즈(http://www.bignoisefilms.com/home.htm) 활동가

* 마이클 아이젠멩거(Michael Eisenmenger) : 페이퍼 타이거 TV(http://www.papertiger.org/) 활동가

* 칸쿤 라디오 생방송 인터넷 주소
http://cancun.mediosindependientes.org/hurakan2.m3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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