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4호 기획 [WTO반대투쟁단, 멕시코 칸쿤을 가다]
WTO 각료회담 무산 및 저지 투쟁 과정 평가

강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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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WTO 제5차 각료회의가 최종 선언문 없이 결렬되었다. 한국은 200명 가까운 사람이 칸쿤 현지에 가서 투쟁했다. 이경해 동지의 죽음을 시발로 투쟁을 선두에서 주도했던 한국 민중운동의 입장에서, 이번 각료회의의 결렬은 매우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이는 부분적으로 세계화에 맞선 각국의 저항운동이 일구어낸 값진 승리가 분명하다.

WTO 5차 각료회담의 의의

이번 회의는 지난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제4차 각료회의에 이은 것이었다. 4차 각료회의에서는 도하개발의제(이하 DDA) 출범이 선언된 바 있다. DDA는 2004년말까지 모든 협상을 마무리 하고 2005년부터 새로운 무역체제를 출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번 5차 각료회의는 일종의 중간점검 회의였다. 원래 각료회의에서는 농업협상,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개도국 우대에 대한 분명한 입장, 비농산물 시장 접근 세부원칙, 싱가포르 이슈 등 총 13개 의제를 점검하고 향후 구체적인 협상일정을 잡게 되어 있었다. 특히 농업과 비농산물 시장접근 협상에 있어서 세부협상방식의 기본골격을 만들고, 싱가포르 이슈에 대한 협상개시를 공식적으로 선언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번 각료회의에 대해서는 부정적 전망이 많았다. 각료회의는 WTO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며, 적어도 2년에 한번씩 열리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각료회의가 열리기 전에 각국은 WTO 내의 다양한 회의 체계를 통해서 혹은 별도의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서 각료회의에서 통과시킬 의제를 미리 논의하고 이견을 조율한다. 그런데 이번 각료회의의 경우 그 ‘사전작업’이 상당히 지지부진했다.
DDA는 당초에 농업협상의 세부원칙을 올해 3월말까지 정하고 비농산물의 시장접근 세부원칙은 5월말까지 정하기로 했다. 또한 서비스 협상의 경우 양허안 제출 시한을 3월말로 설정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농업분야에서는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 호주 등 케언즈 그룹과 수입국인 유럽연합, 일본, 한국 등이 팽팽하게 맞섰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3월 31일 양허안 제출 마감시한까지 양허안을 제출한 나라가 한국, 미국, 일본 등 18개 나라에 불과했다.

각료회의의 결렬

각료회의는 예상대로, 핵심의제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핵심의제 중 하나였던 농업협상을 대비해 미국은 프랑스와 독일 등을 접촉하면서 유럽농업정책을 수정해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했고, 각료회의 전 실제 유럽과 미국은 일정한 합의를 이루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 농업협상에서의 충돌은 과거처럼 미국과 유럽이 주되게 대립하는 식이 아니라, 농산물을 수출하는 브라질, 인도 등 주요 수출개도국 22개 나라(이하 G22)와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출하는 미국과 유럽이 맞서는 식으로 드러났다. 실제 미국의 경우 우리 돈으로 일년에 약 330조원 가량의 농업보조금을 지출하는데, G22는 이러한 보조금을 대폭 감축하거나 철폐하라고 요구했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각료회의 결렬의 두 번째 이유는 싱가포르 이슈이다. 싱가포르 이슈는 투자, 경쟁정책, 무역원활화 및 정부조달 투명성 4가지 의제를 지칭하는 용어로, 1996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2차 각료회의에서 이 주제들이 무역과 어떠한 관계를 지니는지에 대해 분석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4차 각료회의에서는 이 주제들을 DDA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하였고,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할 것인지는 이번 5차 각료회의에서 정하기로 했었다.
개발도상국들은 싱가포르 이슈가 미국 등 선진국들이 시장개방압력을 강화하는데 이용될 뿐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 이슈 중 ‘투자’부문은 과거에 OECD에서 추진하다 전 세계 사회운동의 비판을 받았던 ‘다자간투자협정(MAI)’과 그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 중국, 인도, 이집트, 방글라데시, 베네수엘라 등 70개가 넘는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은 싱가포르 이슈 4가지 중 그 어느 것도 협상이 개시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EU 등은 무역원활화와 정부조달투명성 분야만이라도 협상을 시작하자고 입장을 바꿨으나 결과적으로 합의에는 실패했고, 이것이 이번 각료회의 결렬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전 세계 WTO반대 투쟁

각료회의 결렬 과정의 한쪽에는 한국 민중운동을 비롯한 전 세계 사회운동의 WTO반대, 각료회담 저지 투쟁이 자리하고 있다. 전 세계의 반세계화 운동 단체들은 5차 각료회의 훨씬 전부터 칸쿤을 ‘제2의 시애틀’로 만들겠다고 결의했었고,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 WTO 반대 국제네트워크인 “우리 세상은 상품이 아니다(Our World Is Not For Sale)”, 미주 대륙에서 자유무역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반FTAA미주대륙캠페인 등이 올해 초부터 전략 회의를 여는 등 각료회의에 맞선 투쟁을 준비했었다.
각료회의 기간 동안 투쟁은 각 나라 차원에서 그리고 칸쿤 현지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는 500여명이 9월13일 미국과 멕시코를 잇는 주요 도로를 점거하여 봉쇄한 채 시위를 벌였고, 일본에서는 도쿄, 오사카, 교토, 히로시마 등에서 반전·반WTO 시위가 벌어졌다. 태국에서는 9월 9일부터 반WTO·반제 행동주간이 시작되어, 농민, 노동자, 학생, 환경운동가 3,000여명이 ‘WTO 반대, 미국 반대’ 시위를 벌였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서도 수천명이 반 WTO시위를 벌였다. 또한,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등 유럽 국가에서도 9월 13일 전 세계 공동행동의 날에 맞춰 큰 규모의 반 WTO시위가 있었다.
물론, 무엇보다 주목받은 것은 칸쿤 현지의 투쟁이었다. 지리적인 요인 그리고 재정적인 이유로 대규모 대오를 조직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칸쿤에 모인 인원은 많이 잡아도 5천명 이상이 되지는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경해 동지의 죽음은 칸쿤 투쟁의 분위기를 일거에 고조시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투쟁단은 전체 투쟁의 중심에 섰다. 예를 들어, 멕시코 현지 조직위원회나, 비아깜페시나 등 국제적 농민운동조직들은 한국투쟁단이 제안하는 집회 기획 및 투쟁 전술 등을 거의 대부분 수용하였고, 이에 따라, 9월 13일 있은 국제민중행동의 날 바리케이트 돌파 투쟁이나 그 전후의 집회 및 거리 행진 기획, 9월 12일 이전까지의 각종 집회는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는 이경해 동지의 죽음으로 인해 국제적 관심이 한국투쟁단에 집중되었기 때문이었지만, 한국투쟁단이 그러한 관심을 강력한 투쟁으로 선도할 역량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평가를 위해 고민해야 할 것

이번 투쟁 및 각료회의의 결렬 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평가들이 존재한다. 특히, 한국투쟁단의 입장에서, 이후 계속될 WTO반대투쟁에 큰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그리고 이번 투쟁을 통해 한국 민중들이 WTO와 DDA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된 것 등은 매우 큰 성과로 볼만하다.
다만, 이후에 보다 엄밀한 평가 혹은 분석이 뒤따라야 할 점을 지적해 두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우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각료회의의 결렬은 개발도상국들 대 유럽, 미국 등 강대국 간의 대립이 주된 원인임이 분명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전 세계적인 반 WTO 투쟁이 이번 각료회의의 결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직접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이후 투쟁과 관련해서 농업 등 대중운동 단체가 투쟁에 나설 수 있는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 대해서는 반대 투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 이슈, 지적재산권 협정 등은 농업 못지않게 중요한 사안이지만 대중적으로 위력적인 반대 운동을 하기가 어렵다. 이 투쟁은 누가 담당해야 하며, 대중적 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셋째, WTO식의 다자간 협정이 난항에 부딪힐 경우 미국 등은 양자간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일 텐데,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제외하고는 투자협정 및 자유무역협정에 맞선 싸움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한국 운동의 입장에서 이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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