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5호 사람들@넷
“‘펌문화’는 살리고 지켜내야 할 인터넷 문화이다.”
퍼옴과 나눔의 마당 ‘돼지껍데기’ 대표편집인 안동헌씨

김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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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껍데기’는 글을 퍼담아 운영하는 새로운 개념의 여론공간이다. 지난 3월 문을 연 이후 하루 평균 1만 명의 네티즌이 방문할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이 우리생활에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여론사이트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돼지껍데기’는 다른 여론사이트와는 달리 펀객을 통해 운영되는 차별화 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여론사이트가 논객을 한곳에만 머무르게 함으로써,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글을 쓰는데 제한이 된다는 단점을 극복해 낸 것이다.
안동헌씨는 "논객은 야생마처럼 뛰어 놀며 쓰고 싶을 때 마음껏 쓸 수 있어야 한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펀객은 논객의 좋은 글을 활성화시키는 사람들이다. ‘돼지껍데기’ 역시 여기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펀객이 올린 글 삭제하는 일 거의 없어

‘돼지껍데기’라는 특이한 이름과 ‘한점만’이라는 도메인 주소는 우연히 만들어졌다. 술자리에서 돼지껍데기를 먹다가 ‘꼭 사이트와 이름이 어울려야 되는 것은 아니지’라는 생각에, 특별한 의미 없이 지었다고 한다.
처음 사이트를 기획할 당시에는 ‘껍데기굽는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세 명이 함께 운영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안동헌씨 혼자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하고 있고, 다른 운영진은 베스트 게시물을 선정할 때에만 관여한다. 안씨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친구의 사무실 한 쪽에서 남는 컴퓨터를 이용해 ‘돼지껍데기’를 운영하고 있다.
펀객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게시판에 올라온 좋은 글들을 퍼서 ‘돼지껍데기’에 나른다. 이렇게 올려진 글들을 공유하고, ‘댓글(리플)’을 달아 다양한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은 운영진에 의해 따뜻한 글, 냉정한 글, 웃기는 글, 화끈한 글 등으로 분류된다. 이중 베스트 게시물은 댓글을 고려해 반응이 좋고 추천수가 많은 글 중에서 시사·정치 등 7개 분야에 걸쳐 선정된다.
돼지껍데기의 기본원칙은 ‘펀객이 올린 글은 광고성 글이나 욕설이 주를 이루는 글이 아닌 이상 함부로 삭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검증된 글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글이라도 대중에게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중간자입장에서 모든 이념을 포용해야…"

‘돼지껍데기’는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적 성향이나 편향된 이념 그리고 특정한 분야로부터 자유로운 여론공간을 지향한다. 그는 "편향된 이념적 글을 모아서 여론공간을 형성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돼지껍데기’에 올라오는 글은 한쪽 입장이나 분야에 치우쳐 있지 않다.
다만 ‘돼지껍데기’에 진보적인 성향의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것은 펀객들이 ‘서프라이즈’나 ‘한겨레’ 등의 게시판에서 글을 퍼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간자입장에서 모든 이념을 포용해야 한다”며, “진보적인 글이든 보수적인 글이든 심지어 수구적인 글까지도 감동 받는 사람이 있다면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안씨의 운영방침이다.
한편 안씨는 인터넷에 담론을 형성하는 층이 20대가 아니라, 30대와 40대라고 바라본다. 그들은 수구적인 것에 대해 반사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70년대와 80년대의 암울한 현대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간의 과도한 이념 형국은 점점 사라질 것”이며, “우리 사회는 탈이념화로 이행해 가야한다”라고 안씨는 말한다.

상업적 이용 아니면 저작권 문제없을 듯

펌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저작권이다. 이미 저작권 침해와 관련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마이클럽’의 ‘결사모(결혼을준비하는사람들의모임)’ 커뮤니티 이전 문제가 법정공방으로까지 이어진 사건이 있었다.이 경우는 게시물의 저작권이 누구의 소유냐가 문제가 됐었다.(<네트워커> 2호참조)
‘돼지껍데기’의 펀객들은 결사모와는 좀 다른 상황이지만, 저작권 침해 문제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같다. 기본적으로 게시물의 저작권은 글을 쓴 사람에게 있다. 따라서 원저작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글을 퍼올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면 ‘돼지껍데기’는 게시물을 삭제하는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운영진은 게시물 삭제로 면책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펀객의 사정은 다르다. 출처를 밝힐지라도 저작권 침해의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씨는 “퍼온 글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펀객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들의 입장에서 함께 하겠다”며 펀객을 보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저작권 침해만이 아니다. 펀객들은 명예훼손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2001년 11월, 펀객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디지털말’의 웹 마스터 이모씨가 게시판에 오른 익명의 글 ‘[펌]대학동기생들의 눈에 비낀 이회창(필독)’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퍼 옮겨 한나라당으로 부터 고소를 당한 것이다. 결국 이모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펌에 대한 과도한 저작권 적용과 펀객을 명예훼손으로까지 처벌하는 것은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정보공유를 제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의 장점인 ‘단시간내에 급속하게 퍼진다’는 특성을 막음으로써, 인터넷을 통한 여론형성에도 제한을 가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펌문화는 초창기 때부터 관행처럼 내려져 오던 것이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출처만 밝힌다면 살리고 지켜나가야 할 인터넷 문화다”라는 안씨의 말을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돼지껍데기’ 홈페이지: http://www.hanjeomm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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