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7호 기획 [금융감독원의 이메일 감시]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직원 이메일 백업지시… 사생활침해와 노동감시문제로 증권노조 반발

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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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증권회사에서 일하는 J는 출근하자마자 메일함을 열었다. 연말연시라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연하장 메일이 도착해 있다. 몇 개를 열어봤지만 대부분 연말연시 잘 보내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고객과 거래처의 메일이고 간혹 친구들의 메일이 껴있다.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명함을 줬더니 거기서 메일 주소를 뽑았는지 업무용 메일함으로 들어와 있다.

반가운 마음에 J는 답장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보내기’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아차’ 싶어졌다. J는 보내려던 메일을 이동 디스켓에 저장한 후, 가방에 넣었다. 안부메일은 집에나 가서 보내야겠다.

전직원의 송·수신 메일을 저장하라!
J는 왜 메일발송을 취소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J가 보내려는 메일이 친구에게 보내는 그저 그런 농담을 담고 있는 개인메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7월에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증권회사와 유사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E-mail 업무처리규정해라’라는 공문을 뿌렸다. 금융회사의 이메일관련 정책, 보안과 전산시스템 체계 등 제반 여건과 관련한 업무처리 규정을 제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금감원의 검사총괄국에서 보낸 이 공문은 금융회사의 불법행위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증권사를 비롯한 유사금융기관에서 근무하는 전직원의 송·수신 메일은 물론 메신저 내용까지를 모두 회사에서 백업 받아 보관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는 2004년부터 금융권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면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공문을 받은 곳은 ‘준범감시팀’이었다.

처음 공문을 받았을때까지만 해도 수신처(증권회사를 비롯한 유사 금융기관)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금감원으로부터 재촉공문이 다시 내려오고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은 2003년 3월부터다. 금감원의 조사 결과 이메일관련 업무처리 규정을 제정하지 않은 곳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 공문에는 ‘E-mail관련 업무처리 규정 제·개정시 반영사항’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후 이메일관련 업무처리의 적정성 등을 점검하겠다는 엄포까지 덧붙여졌다. 이어서 지난 9월 22일에는 금감원으로부터 ‘미반영 사항 이행촉구’공문이 내려왔다.

불법행위 적발이라는 실효성보다는 근로조건 무시하는 노동감시
금감원의 요구에 따라 금융권은 내부규정을 만든 곳들도 있었지만, 증권노조의 경우 금감원의 지침에 가장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금감원은 이메일 감시를 통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불법을 방지하고, 민원이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효성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증권노동조합의 이상용부위원장의 설명이다.

증권노조에서 이메일과 메신저 백업보관에 반발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실효성의 문제다. 실효성에 비해 전직원의 송·수신 메일과 메신저내용을 보관하는 데서 오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대략 계산해도 초기 구축비용이 한 지부당 8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그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월 4백만원 이상이라고 한다. 반면 이를 통해 얻어지는 불법행위 적발 건수에는 회의적이다.

증권사의 경우 내부자가 불법행위를 하려고만 들면 이메일 감시쯤이야 우습다는 것이다. 이동디스켓이나 서류를 얼마든지 가지고 나갈 수 있는데 왜 굳이 감시받고 있는 이메일을 이용하겠냐. 조금 불편해질 따름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노동감시와 사생활 침해의 문제다. 실효성도 없는 이메일감시를 통해 결과적으로 노동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부인이 직원에게 보내온 메일을 저장하는 건 내부직원만이 아니라 외부인에 대한 사생활침해라는 부분도 있다.

그 예로 현재 증권사마다 실시하고 있는 전화녹취를 들 수 있다. 전화녹취는 이미 증권사에서는 정착된 상태지만, 실제 이를 통한 사생활 침해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직무상의 통화만이 아니라 사적 내용과 목소리까지 다 저장되기 때문이다. 증권사라는 특성상 노조에서도 업무용전화라는 단서를 달아 묵과하고 있지만, 대화상대에게 녹음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단순히 녹음하는 것에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간혹 고객과의 분쟁이 있을 경우, 회사는 물론 직원 누구나 별다른 정해진 절차 없이 이를 듣고 있다는 점이다. 녹음된 내용을 아무런 절차 없이, 설혹 절차가 마련돼 있어도 여기에 따르지 않고 들을 수 있다면 이는 곧 사생활침해와 통할 수 있다. 더군다나 시간과 상대을 정확히 기록해서 보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하는 부분을 찾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부분을 마구잡이로 다 들어본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직장 내의 근로조건이 변할 경우 사용자는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에 따라 논의하고 여기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과 ‘근로조건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기타노동관계에 관한 사항’에 따른 노동자들의 권리임에도, 금감원의 일방적인 강제시행으로 회사측은 전자통신망에 관한 업무처리규정의 제·개정을 마친 상태라고 한다.

업무용은 의무적으로 백업, 개인용은 회사 자율
현재 금감원의 입장은 두 차례 선회한 상황이다. 9월 22일 ‘백업대상을 회사 업무용으로 한정하며, 웹메일 수신자료는 제외한다’는 내용에 이어, 12월 2일 ‘업무용과 개인용을 구분해서 업무용만 백업한다’는 공문이 내려와 있는 상태다. 하지만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금감원은 업무용만 백업한다고 하면서 개인용 이메일의 백업 허용 여부는 각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내용을 공문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회사 자율적으로 개인 이메일을 백업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여전히 문제의 소지가 남아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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