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7호 기획 [경찰의 지문날인 요구를 거부하라!]
감히 어떻게 지문날인을 거부해?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경찰의 지문날인 요구… 인권활동가들 범죄수사 명분에 지문날인 일체 거부

장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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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수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명석한 수사관이 지문을 채취하여 범죄자의 신원을 확인한다. 지문은 사람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평생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지문을 이용한 수사는 객관적인 ‘과학 수사’의 전형으로 이야기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 경찰도 피의자로 조사 받는 사람에 대하여 신원 확인, 조서 확인, 수사자료표 날인 등의 용도로 광범위하게 지문을 채취해 왔다.

인권단체활동가 30명, 경찰연행 후 집단적으로 지문날인 거부해
이런 와중에 경찰에 연행된 인권활동가들이 집단적으로 지문날인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 12월 24일 인권단체 활동가 30명이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집시법 개악과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등을 주장하며 침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들은 신원 확인 서류를 비롯한 수사 자료에 지문 날인을 하라는 경찰의 요구를 계속 거부했다.

수사과정에서 지문이 채취되어야 할 경우는 지문이 범행을 입증할 증거가 되는 경우뿐이다. ‘범죄수사규칙’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도 피의자로부터 신체정보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법원으로부터 ‘검증영장’을 발부 받아야 한다. 그러나 경찰은 그동안 수사과정에서 이러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인권운동가들의 집단적 지문거부는 경찰로서는 이례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이번 사건 이전에도 단체 활동가들은 꾸준히 지문날인을 거부해 왔다. 지난 2002년에는 학생·노동단체 활동가가 신원 확인 과정에서 지문날인을 강요하는 경범죄처벌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는데, 법원이 이를 모두 받아들여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상태다.

경범죄처벌법 1조 42호는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에 대해 경찰공무원이나 검사가 지문조사 외의 방법으로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지문을 채취하려고 할 때, 이를 거부하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태료에 처하도록 하였다. 실제 경찰의 신원 확인 절차는 이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지문 날인을 강요해 왔다.(네트워커 6호 70쪽 참고) 위헌제청을 받아들인 서울지법 북부지원 단독2부(판사 박범석)는 결정문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경찰이 지문날인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하였다.

주민등록법에 대한 또다른 사건에서 경찰은 헌법재판소에 낸 의견서를 통해 ‘범죄자가 타인의 인적사항을 도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정확한 신원확인을 위해서는 지문날인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지문이 범죄 수사에 실제로 사용되는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범죄 발생건수가 1,833,271건이고 형법 범죄는 754,605건인데, 그중 지문감식의뢰건수는 18,309건, 그나마 제대로 신원이 확인되는 경우는 고작 5,287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전체 범죄 발생건수 대비 0.3%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로 형법 범죄에 대해서도 0.7%에 지나지 않는다. 범죄 현장의 지문은 그림처럼 깨끗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 정확성이 아직도 여러모로 논란거리이기 때문이다. 2003년 1월 미 필라델피아 법원은 ‘지문감식법에 과학적 신뢰성이 없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겠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지문검색에 이어 얼굴검색까지
경찰은 지난 1990년부터 220억원을 들여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을 구축하고 2001년부터 전국 지방청과 1급지 경찰서에 단말기를 보급하여 일선에서도 지문 검색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데로 수치상으로는 과학수사의 괄목할 만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스템이 도입된 후 경찰이 불심검문이나 신원확인용으로 지문을 요구하는 경우가 급증하여 시민의 불편만 가중되었다. 그런데 최근 경찰은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며 실시간으로 얼굴을 확인하는 무선 시스템을 또 보급하였다. 이를 위해선 지문처럼 국민의 얼굴 사진이 모두 경찰의 데이터베이스 안에 입력되어야 한다. 결국 경찰은 갈수록 촘촘한 신원확인을 시도하지만 그 성과는 아직 불분명하고 시민의 불편과 개인정보 채취는 당장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문에 대한 신뢰와 의존도가 클수록 지문 정보가 오용되거나 유출될 경우 개인에게 미치는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문은 중대하고도 소중한 개인의 신체 정보인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불분명한 ‘과학 수사’를 앞세워 지문날인을 계속 강요할 태세다.

지난 12월 24일 신원 확인 서류를 비롯한 수사 자료에 지문 날인을 하라는 경찰의 요구에 대해 인권활동가들은 끝까지 거부 의사를 밝혔고, 결국 지문날인을 하지 않은 채 그날 저녁 모두 풀려났다. 이후 경찰 관계자는 “해당 동사무소나 경찰청에서 보관 중인 지문을 다시 받아 뒤처리를 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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