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7호 여기는
댓글 문화의 양면성
언론 보도와 네티즌 의견을 통해 본 댓글 문화

이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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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김대중씨가 ‘나는 왜 댓글을 거부하나’ 라는 글에서 요즘의 댓글 문화는 성숙하지 못하여 비판이 아닌 비난만이 난무한다고 했지만, 댓글 문화가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기울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 양면이 공존하고 댓글을 통해 기사가 알려주지 못한 사건의 이면을 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스스로 마련하기도 한다.

오보기사를 바로잡는 댓글들
기자가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교회 쪽에서 배포한 자료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목사, 과로사’라는 기사에 대해 타 매체의 보도와 다른 점이 댓글을 통해 퍼지면서, 단신으로 짤막하게 지나가 버렸을 ‘간통 목사, 추락사’ 사건이 오히려 더 크게 보도된 일이 있다.

한 기독교 단체의 대표였던 장모 목사의 사망 사건에 대해 일부 언론사에서 ‘장 모 목사, 과로사로 별세’로 보도하면서, 이를 그대로 받아 싣는 주요 포털 사이트의 뉴스 면에도 해당 기사가 노출됐는데, 다른 매체의 보도와 차이가 있는 점을 발견한 네티즌들이 댓글로 이 사실을 전파하면서 과로사 기사는 이후 추락사 기사로 모두 대체됐다 .
<미디어오늘>은 ‘교회 쪽에서 보내준 보도자료를 보고 확인 전화까지 했지만, 답변이 같았다’며,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국민일보 편집국의 의견을 인용하고 있다. 사실 확인 없이 보도한 기자의 오보를 네티즌의 댓글이 바로잡아 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어머니 시신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몇 달간 집에 그대로 두었다는 중학생 송군의 이야기도 있었다. 송군에 대한 동정이 지나쳤던 탓인지, 일부 기사에서는 몇 달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을 한 두 차례 밖에 찾아 나서지 않은 담임 선생님에 대한 비난을 덧붙이기도 했다.

네티즌이 이 사건에 대해 한결같이 보인 반응은 물론 따뜻한 동정이었으나, 이 기사 이후에 동정에 쏠렸던 네티즌의 관심은 담임 선생님에 대한 분노로 치환됐고, 송군을 방치한 반 친구들은 졸지에 공범이 돼버려 댓글의 뭇매를 맞고 말았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려져 있음을 지적하고 바로잡은 것은 담임 선생님의 평소 생활을 잘 알고 있는 학생들과 동료 교사의 댓글이었다. 실제로 담임 선생님은 주민등록지와 실제 거주지가 달라 송군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여러 경로를 통해 송군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사에서 읽을 수 없었던 사실들이 댓글을 통해 알려지면서 게시판은 잠잠해 졌다. 이제 더 이상 이슈가 없어진 것이다.

축구장의 ‘실망’ 플래카드, 웃지 못할 언론사의 해프닝!
이른바 ‘댓글 저널리즘’이라고 불리는 사례가 또 있다. 지난 11월 18일, 축구대표팀이 불가리아에 패한 뒤, 모 언론사 기자가 응원석에 걸린 ‘실망’이란 플래카드 사진을 찍어 ‘패배에 실망한 축구팬’이라는 기사를 썼고, 많은 매체에서 이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 보도한 일이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속보가 게재된 이후, 모 포털 사이트의 해당 기사 댓글란은 한바탕 홍역을 앓았다. 많은 네티즌이 패배의 실망에 동조했고 코엘류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대표팀과 축구협회에 대한 비난으로 한 덩어리가 됐다. 또한 어떻게 질 줄 알고 미리 플래카드까지 만들었냐, 당신들이 축구팬이냐? 하는 분노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플래카드 바로 뒤에서 경기를 관람했다는 한 네티즌이 댓글을 올리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게 된다.

붉은악마 응원단이 제작해 내걸었던 실망 플래카드의 목적은 ‘서울시청 축구팀 해체’와 부천SK 문제를 방치한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축구팬들의 ‘실망’을 표현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댓글이 이후에도 여러 번 달렸다. 댓글 쓰기 기능의 바람직한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아쉽게도 다음날 주요 언론 매체에는 코엘류호에 실망한 축구팬의 플래카드 기사가 그대로 보도되었다. 댓글 저널리즘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댓글 기능의 한계를 보여준 경우이다. 잘못된 기사의 사실을 바로잡아 준다고 해도 기존 매체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야말로 댓글로만 남을 뿐이다.

인터넷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를 쓴 귀여니의 성대 특기자 입학 논란 또한, 게시판의 댓글 문화의 현재를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귀여니가 성균관대학교 예술학부 특기자로 합격한 것에 대해, 네티즌이 해당 학부 게시판과 관련 기사의 댓글을 통해 보인 반응을 보면, ‘한글 파괴 주범, 귀여니 입학 안 된다’는 쪽과 ‘귀여니 입학,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 는 두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양상이었다. 이후 귀여니를 학교 홍보에 활용하려는 의도라든지, 수능 성적 만능주의가 빚어낸 구태의연한 모습이라는 다른 의견들을 낳기도 했다. 댓글 기능에는 분명 양면이 존재한다. 익명의 댓글이든 실명의 댓글이든 댓글의 본질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실명제보다는 네티즌의 판단이 바람직
정부가 부처 홈페이지 게시판의 실명확인제 도입 방침을 철회하고 대신 실명확인 우대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게시판에 글을 쓸 때 실명 확인을 받고, ‘익명 글쓰기’를 별도 메뉴로 계속 운영하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 등에도 동일한 내용의 권고안이 전달될 것이다. 게시판 실명제가 줄 유익함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네티즌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댓글 문화를 정부의 권고안이 좌지우지해선 안될 것이다.

익명의 댓글들이 추방돼야 할 문화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네티즌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인신공격과 마녀사냥식의 댓글들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잘못 보도된 사실을 바로 잡아 주고, 건전한 비판과 다양성 넘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할 수 있는 건강한 댓글 문화가 자리잡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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