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7호 만화뒤집기
<라이파이>를 통해 본 ‘내눈의 티’

김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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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어느 애국지사를 다룬 책에서 우연히 이런 구절을 봤다. “왜놈들은 우리 동포를 야만적인 대만의 생번과 같은 수준으로 얕잡아 보았던 것이다.” 일본이 욕을 먹어온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거니와, 애국이란 간판 아래 이런 글을 쓰고 읽는 한국은 과연 그러한 비판에 자유로울 것인가.

한국은 종종 침략의 대상이 되어 왔을 뿐 아니라, 고운 구석 하나 없는 침략자를 돕는 용병 노릇도 강요받아 왔다. 이 아픈 기억 탓에 우리는 ‘국제 사회’에서 얕잡아 보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국제 무대’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고 글로벌 에티켓을 익힌다. ‘국제 수준’의 영어 발음을 위하여 아이의 혀를 자르고 국어를 바꿀 궁리를 한다.

이토록 부단한 노력의 덕분일까. 적어도 국제 질서를 보는 눈만은 이제 ‘선진국’의 수준에 접어들었다. 비록 남들이 우리를 ‘강대국’으로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스스로 ‘열강’의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세기 초, 대만도 한국도 얕잡아 보이는 피압박 민족이기로는 매한가지. 그러나 오늘날 국제 수준에 걸맞는 한국인의 눈에는 대만의 생번은 야만인에 지나지 않는가 보다.

우리의 정체성은 파농이 이야기한 바 ‘하얀 가면’에 다름 아니다. 50년대 한국 최고의 인기 만화라는 <라이파이>에서 한국 탐정은 ‘국제 요원’들과 함께 남미의 인디언을 살해한다. 인디언은 이 ‘국제적’ 한국인에게 욕설을 던진다. “이 백인놈아!” 적어도 부끄러워하기라도 하라는 의미였을까?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에게는 그야말로 바라던 바가 아니던가.

조 사코는 자신의 만화 탐방기인 ‘팔레스타인’에 아랍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옮기고 있다. ‘...이브라함은 아랍인과 당나귀를 묘사한 (여행 가이드북의) 그림을 유심히 보았다 : 어떻게 그들은 우리를 이따위로 생각하죠? 아직도 나귀나 타고 다니는 사람들?...아랍인도 현대 문명을 알아요!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도 교육을 좋아한다고요!’
‘하얀 가면’을 쓴 채 아랍 형제자매에게 총을 겨누어야 하는 우리 한국인들이 이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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