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8호 장애없는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말하고, “수화는 언어다”

김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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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5일에 참여연대의 느티나무카페에서는 ‘수화를 언어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청각장애인들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수화로 회견문을 낭독하고, 한켠에서 음성으로 통역을 하는, 비장애인들이 수화를 알아듣기 위해 눈과 귀에 신경을 집중시켜야 하는 자리였다. 기자회견 이후 한국농아인협회와 청각장애인 김 모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김 씨는 근무 중 오른손가락 3,4지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장애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화를 하는데 꼭 두 손이 필요한가”라는 무지한 질문에 자신의 손은 비장애인의 ‘손이며 입’임을 설명했지만, 장애판정과 보상은 손가락의 노동적 기능만 따져서 정해졌다. 이에 불복하여 재심청구를 하였으나 기각됐다.

사건 이후 김 씨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삶에 대한 의욕상실로 말을 잃어버린 듯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지문자(指文字)와 지숫자를 표현하기 때문에 의사전달이 잘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청각장애인들은 수화를 의사소통을 위한 보조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고유언어로 인정해 줄 것을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정을 위한 국제 워크숍에서도 광범위하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수화언어는 그 나름대로 문법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몸짓과 같이 음성언어를 대체하는 수단과는 명확히 구별해서 일반언어와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의사소통과 정보접근권의 완전한 실현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수화언어는 그 사용자인 청각장애인들에 의해 정립되고 규범화되며 재생산되어야 한다며 당사자들이 직접 나섰다는 것이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청각장애인들에게서 태어난 청각장애아동들이 수화를 배우기 시작하여 발전하게 되는 시기는 10개월 이후라고 한다. 이것은 비장애인 아동이 처음으로 말을 배우게 되는 때와 비슷한 시기로 5살의 수화 사용자는 약 500개의 단어와 어휘를 알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수화는 음성언어처럼 자연스러운 언어습득과정을 거치게 되는 청각장애인들만의 고유한 언어로서, 모든 나라의 청각장애인들은 자신들의 수화를 가지고 있다.

나아가 비장애인들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수화는 문화 자체이며 문화창달의 수단이기도 하다. 미국 남부지방의 흑인 청각장애인들은 백인들과 구분되는 그들만의 수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첨단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로 언어장애를 완화시키고 첨단기술개발 지원으로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지적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편 우주에서 떨어진 듯한 컴퓨터 용어가 보편적 언어가 되면서 기계를 통한 소통에 집중되는 시대에, 얼굴을 마주하고 세세한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1차적 소통수단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언어 권리에 대해서도 새삼 다시 생각하고, 더불어 살기 위한 대안들이 실천되기를 바란다.

청각장애인들은 수화언어에 의해 모든 삶을 영위하므로 청각장애인들의 권리는 수화에서 나온다. 즉 수화언어는 정보접근을 위한 청각장애인들의 이동권이고, 생존을 위한 도구이며, 다문화시대에 한 축으로 마땅히 인정받고 대우받아야 할 청각장애인들의 전부이며 그 수단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진정사건을 어떻게 풀어갈지... 간절한 염원으로 새해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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