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8호 미디어의난 [미디어센터,미디어 민주주의를 위한 전진 기지]
미디어 민주주의의 진전과 영상미디어센터의 등장

조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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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민주주의’를 향한 의제 설정
역사시대동안 문자가 그래왔듯이, 21세기에 ‘영상’ 언어는 의사 소통과 정보 전달, 여론 형성과 교육 활동 등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생산과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 첨단영상산업의 폭발적 팽창, 영상 커뮤니케이션의 문화적인 확산에 따라, 영상 미디어는 더 이상 소수 전문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특수한 언어, 혹은 소수 엘리트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고급 문화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필수적으로 이해하고 운용할 줄 알아야 하는 언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영상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함께 지금 이 시대가 보여주는 변화의 진폭은 우리의 의식구조와 정체성, 공동체성, 세계관의 형성과 자기 삶에 대한 성찰, 사회적 삶의 방식의 심대한 변화까지를 포괄한다. 그에 따라 영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능력은 하나의 권리로서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과 문화적 사용 능력(리터러시)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0세기에 확립된 보편적 권리의 하나라면, 영상과 그 미디어를 빼놓고 문화와 일상생활을 얘기할 수 없는 시대에 영상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며 자신의 의사를 영상 미디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은 점차 21세기의 새로운 기본권으로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커뮤니케이션 권리).

그런데 그것이 21세기의 새로운 기본권으로써 사회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문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의 문맹은 곧 문화적 단절과 사회적 삶의 포기나 다름없는 것처럼, 이제 영상 미디어에 대한 접근과 문화적 향유, 표현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기왕의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흐름 속에서 점차 새로운 사회·문화적 소외와 불평등이 이중으로 겹쳐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의 급속한 영상산업의 팽창 뒤에는 심각한 불균형이 도처에 야기되어 왔다. 영상 미디어는 누구나 쉽게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소비의 차원일 뿐 비판적인 수용이 아니며,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허물어져 가고 있지만, 미디어 환경은 여전히 이를 독점하고 있는 소수 생산자가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경제적 생산수단의 문제와 함께 영상 문화를 소비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그 문화적 생산수단을 확보할 수 있느냐로 좁혀진다. 문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기존의 ‘문화 민주화’가 소수 전문가들이 생산한 문화(고급문화)를 다수가 향유할 수 있도록 하향식으로 확산시키는 것이었다면, ‘문화 민주주의’는 참여와 자치의 민주주의를 문화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다수 대중이 직접 문화를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센터는 바로 그 생산수단에 손쉽게 접근하고 직접 생산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제공하면서 유통과 배급, 상영과 공유,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으로서의 토론을 촉진하는 21세기의 새로운 공공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상미디어센터의 등장, 독립영화운동, 언론운동, 영상미디어교육운동 등의 수렴
이미 서구에서는 1960년대를 지나면서 텔레비전이 대중 문화를 주도하고 비디오의 새로운 실험들이 이루어지면서 학교도서관을 리모델링하는 차원의 미디어센터나 퍼블릭액세스센터 등이 등장했지만, 국내에서 공공문화 기반시설로써 ‘영상미디어센터’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4-5년 전이다. 2000년 상반기에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영화진흥위원회에 제기한 ‘독립영화전용관’ 설치 문제가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독립영화의 활성화와 더불어 보다 포괄적인 영상 미디어운동을 고려한 ‘영상미디어센터’의 형태로 확대 발전하게 된 것이다.

2002년 5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MediACT, http://www.mediact.org)의 출범에 이르러 비로소 ‘영상미디어센터’의 구체적인 개념화와 현실화 구상, 실질적인 설립 프로세스가 드러난 것이지만, 이러한 미디어센터 설립의 필요성은 독립영화운동이나 시청자운동, (영상)미디어교육 등이 태동한 1980년대부터 이미 존재했다. 그러다가 21세기 벽두에 기술적, 정책적, 운동적 가능성 등이 현실화되는 지점에서 영상 미디어와 관련된 배급·상영, 교육·향유, 접근·표현의 다층적 사회적 요구와 필요가 교차되고 동시다발적으로 부각되고 수렴하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독립영화의 안정적인 배급과 상영을 위한 독립영화 전용관의 설립 추진과 더불어 예술영화상영을 위한 시네마테크 운동, 그리고 2000년 초에 개정· 시행된 통합방송법이 명시하고 있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위한 퍼블릭액세스센터 설립의 필요성, 지역문화공간에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영상미디어교육뿐만 아니라 각급 학교의 정규·비정규 교육과정에서 증대하고 있는 영상미디어교육의 수요를 해결할 지역 미디어교육센터의 필요성 등에 대한 요구와 운동이 지금의 ‘영상미디어센터’로 수렴된 것이다.

그런데 그 수렴의 과정에서 하나 빠진 게 있다. 현재 광화문에 위치한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경우, 앞서 언급했듯이 애초에 ‘독립영화전용관’ 설치가 ‘영상미디어센터’의 설립으로 (예산과 공간상의 문제로 결국 양자택일의 문제가 돼버리면서) 전환되어, 독립영화나 일반시민·청소년들이 직접 생산해낸 영상창작물을 상영할 안정적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절름발이’로 개관·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디액트도 그렇지만, 각 지역에서 설립될 영상미디어센터는 독립영화전용관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어야 하며, 퍼블릭 액세스 활성화 차원에서 다양한 포맷의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도록 소규모 방송 스튜디오 공간까지 포함해서 통합적으로 설계하도록 추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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