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8호 사이방가르드
올랑의 사이보그 성형수술 극장

이광석  
조회수: 4902 / 추천: 54
자신의 외모가 내면적 본질에 비해 턱없이 소외되었다는 강박에 이르면 정신의학적으로 일부는 ‘신체기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에 걸린 것으로 의심해야 한다. 성형이 하고 싶어 얼굴이 근질거리거나,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잘난 여성의 얼굴 거죽을 벗겨내어 자신의 얼굴에 이불 깁듯이 기워 넣고 싶다거나, 진공 청소기로 몸의 과장된 일부를 쭈욱 흡입시켜버리고 싶은 지경에 이르면 장애가 중증으로 돌변한다.

유명 여성들의 가장 잘난 부분을 자신의 얼굴에 꼴라쥬로 이어 성형한다면, 이건 완전 ‘울트라 엽기짱’ 수준일까? 실제로 올랑(Orlan)이란 프랑스의 한 멀티미디어 행위예술가는 ‘최고의 걸작: 성녀 올랑의 환생’이란 기획으로 8번 이상의 성형수술 극장을 선보였다. 모나리자의 이마, 프시케의 눈, 유로파의 입, 다이애나의 코, 비너스의 뺨 등 유명 그림들에 나오는 여성들의 이목구비를 디지털 이미지로 조합한 ‘얼굴본’을 가지고 그녀는 실제 성형 작업에 임했다.

올랑은 80년대부터 성형수술 과정을 통해 소위 ‘카날 아트(carnal art)’를 꾸준히 소개한 국제적 인물이다. 그녀를 첫 대면하는 사람은 ‘카날’과 ‘카니발’의 경계를 구분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필자 스스로도 93년 뉴욕에서 행해진 그녀의 수술극장 퍼포먼스 비디오를 보면서 구토를 일으켰고, 한 등발 좋은 여성이 기절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다면 올랑은 그저 포스트모던한 ‘엽기녀’ 혹은 중증의 성형 수술에 시달리는 여자에 불과할까?

우리에게 정체를 구성하는 외모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는 의도한대로 생기지도 않을 뿐더러, 외모의 시간적 변화 또한 자신에게서 ‘타자’의 영역에 속해 있다. 자신으로부터 외모가 소외되는 현상은 ‘바깥’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더욱 더 강화된다. 여성성, 물신성 등의 가치는 바로 외부에 의해 주어지는 것들이며, 신체는 ‘나’의 것이 아니라, ‘그것’ 혹은 ‘의복’의 영역일 뿐이다. 그래서 올랑에게 신체는 오직 사회적으로만 구성된다.

그녀의 수술극장은 자본주의 사회에 의해 규정된 여성 외모의 미적 규준을 깨기 위해 그녀 스스로 극장의 감독이 되어 벌이는 예술적 퍼포먼스다. 환자, 시술자, 참관인들은 파코 라반에서 디자인된 오트 쿠튀르 수술복을 입는다. 수술실은 소품용으로 준비된 십자가상, 모조 과일, 수술극장의 큼지막한 크레딧 벽보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녀는 시술 동안 정신분석과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위성을 통해 자신의 관객들과 전화를 나눈다. 그녀의 이러한 엽기적이고 키치적인 시술에는 다중(multiple) 정체성에 대한 예술적 실험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외모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현대 여성들이 지닌 욕망의 광기를 드러내는 작업의 일환이다.

90년대말 이후 그녀의 시술은 멀티미디어 작업으로 확대된다. 포토샵 등의 작업을 통해 그녀의 얼굴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위성이나 이메일 팩스 등으로 작업 내용을 전송하는 전시 기획도 갖고 있다. 애초 그녀의 얼굴이 수정, 제거, 덧붙이기가 가능한 ‘소프트웨어’와 같다고 언급했을 때, 이와 같은 디지털 기술은 가장 적절한 수단이다. 특히 멕시코 여행을 통해 얻은 1999년 디지털 작업 ‘자아-잡종들(self-hybridations)’은 얼굴 이미지의 사이보그적 변형성을 극대화시킨 퍼포먼스로 기록된다. 올랑은 고정화되고 닫혀있는 전체로서의 신체 개념을 수정과 변형의 대상으로 역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신체 재구성은 궁극적으로 사이보그 정체성을 향해 열려 있다. 일찍이 ‘사이보그 선언문’을 썼던 도너 해러웨이가 사이보그를 일종의 ‘해체되고 재구성된 후기모던의 자아’로 바라보았던 것처럼, 권력에 의해 타자화 된 신체의 해체와 재구성을 올랑은 수술극장을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물론 그녀에게 새로운 디지털 기술은 신체를 재가공·재구성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수술에 의한 변형과 디지털에 의한 신체의 재디자인은 최종적으로 신체 소멸을 위한 기획이다. 서구의 기술 수단을 가지고 서구의 미적 기준을 깨려 한다.

하지만, 매일 밤마다 그녀를 괴롭히는 수술 후유증은 여전히 큰 고통으로 남는다. 포스트모던한 다중의 정체성에도, 그녀에게 끈질기게 달려드는 그 아픔은 절대 지우지 못할 ‘단 하나’ 남는 ‘모던’한 실체인 셈이다.

올랑의 홈페이지 http://www.orlan.net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