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8호 여기는
실보다 득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텔사의 오만

이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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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9일 인텔의 한국 대리인인 ‘와이.에스.장 합동특허법률사무소’가 디지털카메라 사이트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를 운영하는 (주)디지탈인사이드(대표 김유식) 앞으로 팩스를 보내 왔다.

‘(…) 당사는, 귀사가 당사의 주지·저명한 「INTEL INSIDE」 표장과 극히 유사한 「dcinside.com + 도형」상표. 서비스표를 대한민국 특허청에 2002. 5. 30자로 등록 출원하였고, 동 출원이 2003. 12. 6자로 공고되었다는 매우 유감스러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텔은 ‘intel inside’가 지난 10년 동안 집중 광고해온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상표이고, 디시인사이드가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inside’ 형식의 상표 사용 중지를 요청했다. 김유식 대표는 이에 거부 의사를 표명했고, 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 소위 ‘디시폐인’이라고 불리는 디시인사이드 이용자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인텔 제품 불매 운동과 더불어 인텔의 경쟁사인 AMD의 CPU를 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온라인 패러디로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 시위까지
미군장갑차 사건 때 효순·미선을 추모하기 위해 메신저 대화명에 삼베 표시나 까만 리본 표시를 달았던 것처럼, 디시폐인들과 네티즌은 인텔에 대한 항의 표시로 대화명에 ‘인텔 KIN’이란 표시를 달았다. ‘KIN’이란 말을 오른쪽으로 돌려보면 ‘즐’이란 말과 비슷한 모양이 된다. 이는 인터넷 대화나 게시판에서, ‘당신과 이야기하기 싫다. 짜증난다.’ 등 상대를 부정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로, 각종 게시판에서 ‘즐’이란 말의 사용이 금지되면서 이를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미지 패러디의 본산지답게 ‘intel Kinside’ 로고가 만들어져 유포되기도 했다.

작년 12월 26일 정보공유연대(www.ipleft.or.kr)는 ‘인텔의 행위는 지적재산권을 남용하는 횡포’ 라며 이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디시인사이드 직원 과 관계자들, 그리고 디시인사이드 사용자들은 인텔 한국지사 앞에서 인텔의 조치에 항의하는 침묵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인텔과 디시인사이드간의 싸움, 유사 분쟁의 서막
인텔의 경우는 ‘주목’을 많이 받은 것일 뿐이지, 여러 IT 관련 업체들이 현재 이와 비슷한 상표권 분쟁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의 상표권, 특허 분쟁은 기업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힘없는 중소기업을 고사하려는 치사한 ‘밥그릇 뺏기’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조짐이 보이기만 하면 변리사들이 일감을 따기 위해 여기저기 들쑤셔 분쟁을 만든다. 이기던 지던 결국 변리사들에게 좋은 일만 시킬 뿐 업체들은 골탕을 먹기 마련’이라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파이낸셜뉴스> 김성환 기자의 기사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모든 ‘~inside’는 인텔 것인가’ 기사에 실린, 와이.에스.장 법률사무소의 의견 중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2년 전 한 스포츠 신문이 칼럼 제목을 ‘골프 인사이드’라고 했다가 인텔의 요구를 받고 ‘골프 내시경’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설명한 대목이다. 신문사에서 기사 꼭지 제목인 ‘골프 인사이드’를 상표로 정식 출원하기라도 했을까? 디시인사이드의 경우보다 더 황당한 사례가 이미 있었던 것인데, 다만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우선 ‘신문’에만 한정하여 2004년 1월 현재 이와 같은 형식의 칼럼 제목을 사용하고 있는 사례들을 찾아보았다.

굿데이 - 그라운드 인사이드
동아일보 - 메트로 인사이드 / 무비 인사이드
세계일보 - 아메리카 인사이드
스포츠 조선 - 스포츠 인사이드
스포츠투데이 - 스포츠 인사이드 / 골프 인사이드
일간 스포츠 - 월드 인사이드 / 월드 사커 인사이드
전자 신문 - 마켓 인사이드
중앙일보 - 브랜드 인사이드

와이.에스.장 법률사무소는 골치 꽤나 아프겠다고? 아니다. 언론사 팩스 번호를 파악하고 예전에 보냈던 공문에서 몇 개 단어만 교체해서 보내기만 하면 된다. 이 중 일부는 공문 내용대로 제목을 수정할 것이고, 혹 반발할 경우 그때 대응하면 된다. 노트북 전문사이트 ‘노트북인사이드’나 ‘레포츠인사이드’ 등 ‘~인사이드’가 들어간 수많은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동일한 경우로 분쟁을 일으켰다면, ‘~소프트’ 형식의 사례들을 열거하기 힘들었을 것처럼. 많은 네티즌과 여러 언론 매체들은 이번 사태가 인텔에게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이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게임을 하는 것일까.

이번 사건은 말하자면, ‘~인사이드’ 형식을 사용하고 있는 모든 회사, 매체, 개인, 단체에 대한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선전포고’이며 ‘으름장’이다. 지난 한 해 미디어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디시인사이드와의 분쟁 이후, 국내의 거의 모든 온오프라인 매체에 ‘~인사이드’ 분쟁이 보도됐다. 흥분한 디시폐인들은 메신저로 게시판으로 블로그로 ‘펌’과 ‘펌’을 거치며, 이 사실을 열심히 전파했다. ‘~inside라고 쓰면 안 된다니!’라고. 이는 디시인사이드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오히려, ‘~inside’ 형식의 상표를 사용하고 있을 수많은 업체들, 그리고 잠재적 사용자일지도 모르는 네티즌을 향한 대국민 경고 방송이고, 쐐기 박기이다.

만일 ‘인텔, ~인사이드 형식 명칭 사용 불허’와 같은 밋밋한 제목의 보도자료가 언론 매체에 배포됐다면 이렇게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득보다 실이 많다고 한 네티즌의 경고 따위는 아랑곳 않는, 와이.에스.장 법률사무소의 설명을 보라.

“디시인사이드의 경우는 이름 없는 온라인 업체가 아니다. 이름 있는 업체이기 때문에 오히려 홍보 효과가 있다. 모델케이스가 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우리의 기억 속에 ‘~inside’라는 단어만 남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언론 매체가 이 사건에 더 이상 흥미를 잃어 모두 관심을 돌린다고 해도, 부디 이번 일에 대해 무덤덤해 지지 않기를 바란다. 인텔사의 횡포와 오만함에 대해, 네티즌(소비자)의 경고를 무시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함을, 결국 득보다는 실이 많은 싸움이었음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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