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8호 Cyber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하나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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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한 인간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처벌받거나 돈을 내야 한다면, 그 인간이 자신이 한 행동을 알고 있기는 해야 된다. 알 수 있었는데도 주의하지 않아서 몰랐거나. 하지만 사람의 내심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나. 결국 여러 가지 주변 상황을 들어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다고 할 수밖에. 게다가 직접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의 범죄를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처벌하려면 그 기준이 더욱 정밀해야 될 것이다. 네트워커들이여, 인터넷서비스 제공자에 대하여 책임을 물었던 몇 가지 판례를 보면서 혹시 내 행위로 서비스 제공자가 처벌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시길.

공개자료실에 올린 자료는 운영자 책임없어
중앙대학교 홈페이지 자료실 게시판에 어느 벤처기업이 개발한 멀티미디어 제작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인 ‘칵테일 98’이 업로드되어, 400회의 조회건수를 기록하면서 한 달 이상 공개된 상태로 있었다. 중앙대는 프로그램 개발자의 항의를 받고 즉시 자료실 게시판을 폐쇄하였다. 프로그램 개발자는 중앙대에 3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법원은 중앙대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했다.

중앙대에 위 게시판을 설치, 운영함에 있어 불법복제물의 등록여부를 수시로 확인, 통제하여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자료실이 모든 이용자에게 개방되어 있고 ② 자료의 등록이 자동화된 기술적 과정을 통해서 수행되며 ③ 게시판에 영리목적이 없으며 ④ 항의를 받은 즉시 중앙대가 조치를 취한 점이다(서울지방법원 1999. 12. 3. 선고 98가합111554 판결).

소리바다 운영자는 저작권침해임을 알고 있었다?
다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소리바다 판결이다. 소리바다 운영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1천9백6십만3천40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는데, 이에 대하여는 현재 상급법원에서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법원은 소리바다 운영자가 저작권 침해 행위를 알고 있었다는 기준으로 몇 가지를 제시하면서 손해배상을 명했다. 소리바다 운영자가 알고 있었다는 것은 ① 미국의 냅스터(Napster)의 성공에 착안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인데 ② 프로그램 개발 당시 이미 미국에서 냅스터의 저작권 침해에 관하여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③ 또한 음반회사들이 권리 침해에 대하여 소리바다에 알려 준 사실이 있었으며 ④ 소리바다 역시 서비스 운영상태를 점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03. 10. 24. 선고 2003가합857 판결).

이 사건에서, 소리바다 가 사전에 이용자들이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MP3파일을 주고받은 것을 알았는지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용자들의 행위가 개인적으로 음악을 듣는 정도의 이용에 불과하여 저작권 침해라고 볼 수 있는지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저작권 침해라고 한 것이다. 또 소리바다는 이용자들의 IP주소만을 찾아주는 것으로 저작권 침해의 인식이 없는 가치중립적인 P2P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옥션은 알고 있었다. 고로 유죄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서비스 제공자가 이용자의 불법행위를 알았다는 점을 보다 쉽게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보자. 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에 관한법률이라는 것이 있다. 줄여서 ‘음비법’이라고 하는데, 이 법에서는 행정당국에 등록하지 않고 음반 등을 영업적으로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인터넷 경매사이트인 ‘옥션’에 개인 회원들이 음란 시디를 경매로 판매했다. 그런데 문제는 음란 시디를 판매한 사람이 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옥션은 음비법 위반죄를 도왔다는 이유로 처벌받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무죄판결을 받았었다. 법원은 ① 경매과정의 처리과정 자체가 미리 설치해 둔 컴퓨터 프로그램의 실행에 불과하며 ② 불법물로 적발된 물품은 판매할 수 없는 처리를 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③ 음란 시디 판매자들이 1회에 한해 판매한 것인지, 영업적으로 음란시디를 판 것인지 아는 것은 상당한 기간동안 판매내용을 분석해야 되는 것이므로 옥션은 범죄 사실을 알았다고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서울지방법원 2002. 4. 2. 선고 2001노7854 판결).

그런데 대법원은 옥션이 이러한 범죄행위를 알고 도왔다고 했다. 그 이유는 ① 일단 옥션이 음란물이 거래된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었고 ② 음란 시디를 판매하는 사람이 행정당국에 등록을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며 ③ 음란시디의 판매자들이 3장부터 많게는 81장까지 팔은 사람이 있다는 점을 종합하면 회원들이 영리로 음란 시디 판매업을 하는 사실을 알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03. 11. 13.선고 2002도2108 판결).

비슷한 경우, 그러나 판결은 하늘과 땅!
소리바다의 경우 소리바다 운영자가 경고를 받고도 서비스를 계속했으니까, 적어도 경고 이후에는 저작권 침해를 알고 있었다고 해도 너무 과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영자가 ‘돈을 번다’는 점을 제외하면, 첫 번째 케이스(책임이 없다)와 세 번째 케이스(책임이 있다)는 비슷한 경우였다. 사람의 개입 없이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고, 경고를 받고 서비스를 중단했으며, 한 달 이상 방치한 것이나, 81회나 팔도록 몰랐다는 것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두 가지의 상반된 입장 중 대법원 판례처럼 앞으로 계속 판결한다면, 아마 서비스 운영자들이 각종 법에 정통해야 할 것이다. 또 매일같이 온갖 게시물을 둘러보면서 위법한 게시물이 발견된 즉시 게시물을 내리라고 해야 할 텐데, 이것은 너무 엄격하다는 느낌이다. 심지어 새로 개정된 저작권법에 의하더라도 위법 행위를 알고 서비스를 중단하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세 번째 판결이 대법원 판결이니 그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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