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8호 북마크
다 알 수 있다는 것과 다 알고 있다는 것의 차이는?
<유비쿼터스 : 공유와 감시의 두 얼굴> 리처드 헌터, 윤정로·최장욱 옮김, 21세기북스

윤현식  
조회수: 3152 / 추천: 40
9.11 테러사건은 전 세계를 공포와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그 이후 미국은 테러기지의 초토화와 테러 지도자 검거, 테러배후의 파괴라는 명목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수많은 인명이 살상당했고, 천년을 이어 내려왔던 인류의 문화유산은 산산조각이 났다. 세계는 테러의 공포로 인해 한번 숨죽였고, 미국의 폭력에 또 다시 움츠러들어야 했다. 테러는 무고한 인명이 언제든지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미국은 자신의 편을 들지 않는 모든 세력을 적으로 돌림으로써 미국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9.11의 진상은 아직 몇 십 년이나 더 있어야 다 밝혀지겠지만, 당분간은 테러를 유발한 자신들의 죄상보다는 테러의 피해국이라는 가증스러운 명목으로 미국이 저지를 범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테러의 폭풍은 몇몇 특정 국가만을 대상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인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 자국 및 자국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조하거나 국제사회에서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몇몇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의 국가를 잠재적인 테러국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 나라의 국민들 역시 잠재적 테러범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의 피해의식을 전 세계 인류에게 바코드를 부착하는 형태로 치유하고자 한다. 국가단위의 감시와 통제를 넘어 지구적 차원에서의 감시와 통제를 자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출입국자에게 생체정보를 채취하고, 미국에 입국하는 모든 개인의 신상정보를 국적국가의 정부에게 요구하고자 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결론은 물론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이 요구하는 개인정보의 내용은 수집 ‘가능’할 수 있는 정보항목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입고있는 옷, 신고있는 신발, 소지한 모든 물품, 가정생활용품 일체에는 상품의 코드번호, 판매처, 판매일, 가격이 저장된 RFID 태그가 부착된다. 가정의 모든 전자제품은 온라인을 통해 조작이 가능해지고, 초소형 CC카메라는 거리, 관공서, 사무실, 심지어 가정의 각 공간에 설치된다. 자동차는 GPS 시스템을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자신의 위치를 외부에 알릴 뿐만 아니라 텔레매틱스(Telematics)는 실시간으로 자동차의 상태를 전자적으로 확인한다. 각각의 정보수집장치는 모두 온라인에 연결되어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고 수집된 정보는 데이터베이스에 집중되며 또한 공유된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결과적으로 완벽한 감시를 가능하게 할 것이며, 말 그대로 ‘개인’은 종말을 고할 것이다.

감시행위와는 별도로 이러한 정보가 넘치는 사회는 또한 정보의 공유를 통해 전혀 다른 사회구조를 양산할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한 정보의 공유와 이해의 합치는 소위 ‘네트워크군대’를 양산한다. 이 군대는 지금도 특정한 이해를 위해 공존하며, 예를 들어 오픈소스운동이나 mp3 공유운동이 네트워크군대의 특징과 힘을 보여준다. 완전한 정보의 공개는 이렇게 감시와는 별개의 긍정적(?)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사회’는 감시를 통한 통제라는 극단의 상황과 정보의 완전한 공유라는 또 다른 극단의 상황을 동시에 발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유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상태’, 즉 ‘모든 사물이 네트워크를 할 수 있는 상태’를 유비쿼터스(ubiquitous)라고 한다. 모든 컴퓨터와 사물이 하나로 연결되는 네트워크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 속에서 나의 개인정보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리처드 헌터의 <유비쿼터스 : 공유와 감시의 두 얼굴>은 어정쩡한 결론으로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인간이 선한 존재임을 믿는다’ 그럴까? 자, 그렇다면 이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미국은 전 세계 인류의 개인정보를 모두 파악할 수 있을까? 헌터의 말처럼 미국이 선한 존재임을 믿어주어야 하나?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