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9호 기획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원칙을 깨버린 껍데기 인터넷 강국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면서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이상진  
조회수: 3677 / 추천: 43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에 심각한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일명 ‘실명제 바이러스’다.

지난해 정보통신부도 공공기관 게시판에 실명제를 도입하려다 네티즌들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한 적이 있다. 바로 그 바이러스가 지난 해 12월부터 선거법과 관련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에서 논의되고 있다. 실명제는 많은 비판과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결국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름과 주민번호를 밝혀라
이번에 논란을 빚은 ‘인터넷 실명제’의 내용은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제출한 안으로, 인터넷 언론은 ‘선거기간’ 동안 ‘선거관련’ 게시판과 채팅실에서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실명을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보자 홈페이지는 사실상 제외된다.

선거법 개정안 제8조 5항에 따르면 ‘인터넷 언론사’란 ‘정치·경제·사회·문화·시사에 관한 보도, 논평 및 여론 등을 전파할 목적으로 취재, 편집, 집필할 기사를 인터넷으로 통하여 보도, 제공하거나 매개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경영, 관리하는 자와 이와 유사한 언론의 기능을 행하는 인터넷홈페이지를 경영, 관리하는 자’로 규정되어 있어 시민사회단체 홈페이지는 물론, 정치적 내용을 게재한 개인 홈페이지까지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사실상 모든 사이트에서 선거기간 동안, 선거 관련 글을 올리려는 네티즌의 실명 확인을 위해 회원가입을 받아야 하고, 실명 확인을 하지 않은 네티즌은 글을 게시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실명 확인을 위한 기술적 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에는 1천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또한 신용회사와 행정자치부는 신용정보 데이터베이스와 주민등록 데이터베이스를 사이트 운영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신용정보업자가 신용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실명을 확인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고, 국회 행정자치위는 주민등록 데이터베이스를 실명 확인을 위해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인터넷 실명제’ 불복종 선언, 범국민운동으로...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12월부터 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언론매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 왔다. 지난 2월 9일 ‘인터넷 실명제’가 정개특위에서 합의되자, 한국인터넷신문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인터넷검열반대공대위,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그 뒤 126개 시민사회단체와 지역 공동체를 비롯해, 오마이뉴스와 같은 인터넷 언론사, 미디어 다음 등 일부 닷컴사는 실명제에 대한 ‘불복종’ 의사까지 밝히고 나섰다.

인터넷 실명제의 철회를 요구하는 이들은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보인권을 ‘죽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 단체들은 인터넷 실명제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즉각 위헌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힌 상태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월 17일 실명제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통해, ‘인터넷 실명제는 사전검열이며, 익명성에서 기인하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고, ‘본래의 수집목적에서 벗어나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정보통제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음을 지적했다. 익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헌법 제21조에서, 자기정보결정권은 헌법 제17조에서 각각 보장하고 있다.

또한 국가인권위는 ‘인터넷 실명제가 목표로 한 근거 없는 비방과 흑색선전을 방지할 다른 방법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이 제도는 국민의 기본권 제한을 밝힌 헌법 제37조도 위반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헌소송이 제기되었을 경우 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장여경씨는 “미국 조지아주에서도 1996년 인터넷 실명제를 추진했으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았다. 유럽 의회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하여 인터넷상에서의 익명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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