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9호 장애없는
틱낫한 스님이 뭐라고 하시는 거지?
(숨소리)...헤헤...

김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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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차별 사례를 모으기 위한 세미나를 거듭하면서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는 여러 장애유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감각장애인인 시ㆍ청각 장애인의 참여가 부족하다. 대체로 지체장애인이 중심이 되어 장애인운동을 전개해오기도 했지만, 장애인 운동 내부에서도 다양한 장애유형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자원개발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다고 본다.

이러한 장애인 내부의 차이를 간과하지 않기 위하여 여성장애인 차별연구팀은 시각장애인여성회와 농아인여성회를 방문하여 당사자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당신의 경험담을 풀어주는 시각장애인여성회의 사무국장은 50세가 가까움에도, 불문학을 전공하고 유학까지 한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삶의 이유에 충만해 사는 듯했다. 녹내장으로 완전하게 실명을 하게 된 지 4년째,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삶의 중도에 장애를 갖게 되서 더욱 민감하게 느끼게 되는 세세한 경험의 차이를 일상의 차별로 더욱 잘 나타낼 수 있는 장점을 오히려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들을 분주하게 시각장애인여성회에서 풀어내고 있다.

그이에 의하면, 어느 날 TV에서 틱낫한 스님의 이야기가 특집으로 방영되었다. 스님에 동화되고 있던 터여서 방송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곧 답답해지게 되었다. 화면의 모든 내용이 나레이션이나 동시통역을 통해 음성화되었으나 정작 듣고 싶었던 틱낫한 스님의 메시지는 육성으로 나와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자막으로 처리되는 듯했다. 장애인이 되기 전과 현저하게 비교되는 이러한 정보량의 부족은 지적욕구와 활동이 왕성한 사람에게는 커다란 상실의 아픔이었다는 것이다. 하물며 어려서부터 장애인인 경우에 정보의 부재가 결국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만든 것 아니냐고, 그이는 자신이 장애인이 되어서야 비교체험을 통해 자각했고 이를 외치고 싶다고 한다.

이러한 두 번의 만남 이후에 의식적으로 TV 화면을 어둡게 하고 청취만 해보았다...

그리고 어떤 점이 다를까 하여 청각장애인을 위해 편집된 영화의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보았다. 영화 속에는 모든 사소한 듯한 의성어, 의태어들이 지문과 함께 처리되었다. 아- 그렇지. 우리는 숨가쁘게 달리고 난 다음에 나는 소리를 ‘헤헤’ 혹은 ‘헉헉’이라고 표현하지. 그럼 풀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는, ‘사르르’ 혹은 ‘스스수’라고 해야 할까. 여기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그 분위기는 어떻게 전해야 하지...

시각화된 것이든 음성화된 것이든 모든 듣고 보이는 것들이 삶의 내용을 채워주는 것이라는 새삼스런 자각에 참으로 씁쓸하다. 장애라는 고독함이 다시 온 몸을 훑어 내린다. 이미 문제로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머리에 의한 것이 아닌, 가슴이 먼저 동화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 인생의 계획에 전혀 없었던 시각장애를 갖게 되고 보니, 이 사회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보입디다. 이러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이 사회가 ‘장애사회’가 아닙니까?”

단지 보이던 것을 보지 않게 되었다고, 듣던 것을 듣지 않게 되었다고, 걷다가 걷지 않게 되었다고 모든 능력과 희망을 앗아가 버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는 이 장애사회에서 ‘장애’라는 말을 없앨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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