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9호 사람들@넷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카페 ‘바끼통’
파병반대이름이어쓰기…이라크에 평화가 오는 그날까지 계속된다

이상진  
조회수: 5450 / 추천: 108
바끼통 운영자들의 모습:
왼쪽부터 ㅅ꼬미, saba, 날자.
2003년 2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그 시점에 생명을 걸고 반전을 외치며 이라크에 갔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박기범씨다.

“무언가 돕고 싶었습니다”
이 카페를 처음 개설한 사람은 박기범씨의 학교 선배인 프랭스씨다. 후배가 전운이 감도는 이라크로 떠났다는 말을 듣고 무언가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다. 무작정 카페부터 개설한 프랭스씨는 우선 이라크 현지에서 박기범씨로부터 날아온 편지나 메일들을 카페만이 아니라 여러 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

차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4일 1주년을 맞은 바끼통 카페는 현재 회원수가 4천 8백여명이 넘고 운영자도 10여명이나 된다. 일반적으로 사회운동카페는 수만 명에 달하는 유명 연애인 카페나 ‘얼짱’ 카페, 여행카페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게다가 하나의 시사적 이슈만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끄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바끼통은 이라크전쟁이라는 이슈 하나로 4천 8백여명이라는 사람들이 모이는 소통의 공간이 됐다.

“우리 모두가 바끼통이이에요”
프랭스, ㅅ꼬미, saba, 회의중, 날자, 아멜리에, 비단물, 느티나무, 사과꽃, 바람, 고마리 등 약 10여명 안팎의 사람들이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주부, 학생, 화가, 회사원 등 본업을 가지고 있으며 연령대는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하다.

운영자들은 자기 생활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카페 발의자인 프랭스씨는 사물놀이와 풍물에 관심이 많아 현재 국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전쟁을 막기 위해 이라크로 향했던 박기범씨(사이버네임: 회의중)는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동화작가다. 이라크전 당시 여기저기 카페를 찾다, 우연히 바끼통을 알게 돼 참여했다는 ㅅ꼬미씨는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어머님께 “서울에 빨리 올라가 공부해야겠다”는 핑계를 대고 부산에서 올라와 활동에 결합했다. 대학 2학년으로 작년 2월 박기범씨처럼 이라크로 들어갔던 saba씨는 이제 졸업을 앞둔 평범한 대학생이다.

이렇게 다양한 운영진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면서 바끼통에서 활동하는 데에는 ‘박기범’이라는 사람의 매력이 크다. 프랭스씨는 박기범씨에게 꼬박꼬박 ‘님’자를 붙여가면서 그의 활동에 대해 칭찬했다. “알고보니 박기범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박기범님의 순수한 마음과 소박한 활동이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니 바끼통이 커진 것은 박기범님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죠” 프랭스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바끼통의 주인은 바끼통 회원 모두다. 운영자인 ㅅ꼬미씨는 “이라크전쟁은 분명 누구에게나 눈길을 끌만한 이슈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분명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바끼통에 많을 것이라고 믿고 ‘이라크’라는 검색어로 바끼통 찾아낸 것이다. 회원들의 이러한 자발적인 참여의 모습은 ‘파병반대이름이어쓰기’ 운동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어린이와 어른들 약 1000여명이 파병반대에 이름을 걸고 서명했으며, 이는 파병이 결정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이버네임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자
바끼통 운영자들은 서로의 실명을 지금도 잘 모른다.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서로가 변함없는 사이버네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오히려 반문한다. “바끼통 활동을 하는데 왜 실명을 알아야 하죠?”라고.

최근 논란이 된 인터넷게시판실명제에 대해 프랭스씨는 “인터넷을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 같다”며, 익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익명을 이용해 여론을 혼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자신의 사이버네임에 대해 스스로 책임있게 활동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움직이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
작년 8월 박기범씨가 귀국한 후 한국에서 이라크와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새로운 활동모임, ‘소망의 나무’를 조직했다. 많은 바끼통 회원들은 그 모임에 자발적으로 동참했고 회원이 아닌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도 함께 했다.

이들은 반전평화를 위한 갖가지 거리 행사, 소망의 나무심기, 소망나무 일일 음식점, 양심적 병역거부자 염창근씨 지원활동 등으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11월 말에는 약 한 달 동안 혜화역에서 릴레이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한끼 식사 굶기, 하루 굶기를 이어가며 식사값을 절약해 이라크민중지원센터에 모금액을 전달했고, 파병반대 서명운동을 벌여 약 7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또한 이라크민중지원센터와 같은 여러 반전평화그룹들과도 연대활동을 꾸준히 벌여나갈 계획이다.

바끼통은 온라인의 장점도 잘 활용하고 있다. 새로운 소식들은 웹소식지를 만들어 알려내고 게시판과 온라인 회의를 통해 회의하고, 자료실을 통해 오프라인활동의 결과물들을 공유하는 것이다. 바끼통은 현재 자료집 발간도 준비하고 있다. 1주년 기념으로 지금까지의 활동들을 종합, 정리, 평가해 보자는 취지다.

바끼통은 2월 9일 추가파병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한 국회앞 시위에도 참여했다. 이날 파병반대 목소리에도 파병안은 2월 13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바끼통 운영자들의 낙심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통과를)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결과가 나오고 보니 기분이 찹찹하네요.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뛰었는데...” 프랭스씨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원래 운동하던 사람들이 아니라서...”라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보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볼 예정이에요. 찾아보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바끼통의 새로운 활동을 기대해 본다.

* 박기범 이라크 통신 http://cafe.daum.net/gibumir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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