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9호 여기는
두 번 다시 앓고 싶지 않은 열병, ‘얼짱 신드롬’

이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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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1월 모 일간지에 ‘얼짱 신드롬 부추기지 말자’라는 칼럼을 썼다. 당시 여자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 가장 주목받은 선수는 1순위로 지명된 정미란이 아니라, 포털 사이트 다음이 실시한 ‘스포츠 얼짱 뽑기’ 팬투표에서 안정환을 누르고 1위에 올랐던 신혜인이었다. ‘얼짱 신혜인, 여자 농구 활력소 될까?’와 같은 선정적인 기사가 일간지 스포츠면을 장식했고, 내가 글을 실은 것도 이즈음이다.

얼짱 신드롬을 비판하는 많은 목소리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얼짱 신드롬은 늦가을 산불처럼 끝도 없이 번져 갔다. 얼짱 신드롬의 극단에 ‘강도 얼짱’이 있다. 현상 수배범이 예쁜 외모 덕분에 얼짱의 별명을 얻고, 그의 팬클럽까지 생겨난 것이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범인일 리 없다.’ ‘자수시켜 마누라 삼고 싶다’는 어느 네티즌의 말은 얼짱 신드롬이 빚어낸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일면이다.

‘정치 얼짱’도 등장했고, 최근에는 청문회 증인까지 얼짱 대열에 합류했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라는 분노 뒤에는 ‘그래, 한 번 가보는 데까지 가봐라’하는 탄식이 남는다. 2002년이 네티즌의 건강한 참여 정신에 우리 모두 감동한 해였다고 한다면, 2003년은 매체의 선정주의와 자정 능력을 상실한 우리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던 해였다.

얼짱 신드롬을 부추긴 건 8할이 포털 책임
19세기 초 사진술 발명, 19세기 말 영화기술 등장, 그리고 이후 텔레비전이 발명되면서 영상과 이미지의 대량 복제가 가능한 시대가 됐다. 뒷부분에서 말하겠지만, 외모지상주의가 활개 칠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된 것이다. 만일 이런 인프라를 개인적인 영역에서 실현할 수 있게 된다면 상황은 어떻게 변할까.

영상의 생산과 복제는 디카(디지털카메라), 폰카(휴대전화카메라), 웹캠(화상카메라) 같은 것으로 개인이 구현할 수 있게 됐고, 미니홈피나 블로그, 메신저 등을 통해 네티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이미지를 대량 복제하고 유통할 수 있다. 2003년 한국의 얼짱 문화의 시작은 이런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강력한 인프라와 유용한 도구들이 늘 매체의 선정성과 쉽게 결합한다는 점이다.

원래 ‘짱’이란 말은 그 학교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학생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10대들은 ‘글짱’, ‘노래짱’, ‘춤짱’ 등 그들만의 ‘짱’을 만들어 냈고, 스타를 직접 만나고 싶어한 10대들은 ‘얼짱’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빌려, 이런 꿈을 실현 가능한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이 과정에서 ‘짱’ 속의 폭력적 함의는 발랄하고 다양한 짱 문화 틈새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건강했다. 그들 스스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고 새로운 문화의 강을 건너기 위한 작은 징검다리를 하나하나 놓고 있었던 것이다.

상업성에 눈먼 포털 사이트가 ‘얼짱’ 현상을 지나칠 리 없었다. 느닷없이 포털 사이트가 강에 나타나 여기저기 놓인 징검다리들을 모두 걷어내고, ‘얼짱 신드롬’이라는 크고 튼튼한 다리를 놓아 버렸다. 10대는 물론이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건너갔다. <친구> 같은 영화에 열광한 관객들을 나무랄 순 없지만, 폭력을 미화하는 데 일조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얼짱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탓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이를 신드롬으로 부추긴 온라인 매체, 특히 포털 사이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포털 사이트는 비정상적인 미디어이거나, 선정주의만이 넘치는 B급 미디어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어떤 면에서 포털은 스포츠신문보다 사회에 더 큰 해악을 끼친다. 비판적으로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고 엄청난 물량의 나쁜 정보를 쏟아내는 미디어의 힘 앞에, 네티즌과 독자, 시청자의 자정 능력만을 믿는 건 순진한 기대에 가깝다.

만일 신문이나 방송 같은 매체들이 이 열풍에 덩달아 휘청거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범국민적인 ‘신드롬’으로 번져나가진 않았을 것이다. 철 지난 얘기지만, 이른바 ‘숏다리’ 와 ‘큰바위 얼굴’을 지닌 사람들을 코미디 소재로 전락시켜 버린 건 순전히 방송 매체 탓이었다. 포털 사이트와 ‘한통속’으로 묶여 비난받지 않으려면 신문, 방송, 잡지 같은 오프라인 매체들만이라도 정상적인 미디어 기능을 수행해 주기 바란다. ‘언론도 기업’이라며 한 줌의 도덕도 낄 자리 없다고 항변한다면, 적절한 침묵만이라도 부탁한다. 제발.

외모지상주의 부추기는 얼짱, 몸짱 신드롬
얼짱과 함께 몸짱이 인기를 끌고, 강도 얼짱, 청문회 증인 얼짱까지 등장할 무렵, 온라인 게시판에 얼꽝, 몸꽝이라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짱, 몸짱의 대척점인 셈이다. 얼짱 신드롬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지적은 이미 지겹도록 들었다. 얼짱, 몸짱 신드롬을 포함하는 외모지상주의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공중파에서 밀어낸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의 노력처럼 실질적인 노력과 행동이 필요하다. ‘나쁘니까 고쳐라’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얼꽝, 몸꽝이란 말이 나온 것을 보면, 우리가 경계해야 할 목록에 외모 특권 행위뿐 아니라 외모 비하 행위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옥동자’로 잘 알려진 개그맨 정씨는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유머 때문에 모 사이트 이용자들이 선정한 혐오 개그맨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잘난 척 하기는’이란 말을 유행시킨 벌이 아닐까. 옹졸한 나는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하지 말자’란 말을 자꾸만 되뇌어도 옥동자는 용서할 수 없다.

최근 모 포털 사이트에 ‘지식짱 선발대회’ 이벤트가 등장했다. 얼마 전까지 ‘얼짱’ 메뉴로 화면을 온통 도배하던 곳이다. ‘얼짱 부모님 선발대회’와 ‘지식짱 이벤트’ 를 동시에 열고 있는 이 포털 사이트를 어떻게 봐야 하나. 다양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나? 아니면 써먹을 만큼 써먹은 얼짱 신드롬에 더 이상 흥미가 없어지고 있나? 이유야 어찌됐건 이제 ‘그만하면 마이 묵었으니 고만해라.’ 안타깝지만 어차피 한 번쯤 치러야 할 홍역이었다고 치자. 두 번 다시는 이런 열병은 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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