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0호 기획 [우 리 는 지 문 날 인 을 거 부 합 니 다]
현대사만큼 굴곡진 주민등록제도의 역사

장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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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날인을 거부한 사람들은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가족의 반대를 꼽는다. “네가 간첩이냐”는 호통부터 눈물겨운 호소까지 사연도 다양했다. 절대불가침의 국가 명령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다, 기성 세대의 경우 신분증명을 하지 못하면 간첩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었던 시대의 공포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1962년 주민등록법을 제정한 후에도 한동안 주민등록증의 발급과 지문날인은 의무사항이 아니었다. 1968년 북한 무장침투조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 이후 ‘간첩이나 불순분자를 용이하게 식별, 색출하여 반공태세를 강화하기 위하여’ 서서히 주민등록제도가 강화되어 갔다.

1968년 주민등록번호가 전국민에게 부여되기 시작했고 1977년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처벌받았다. 특히 지문날인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먼저 도입하고 나중에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땜빵질’을 해 왔다.

먼저 1968년 아무런 법률적 근거 없이 주민등록증에 양손 엄지손가락 지문을 날인하게 하면서 지문날인제도가 시작되었다. 1970년 시행령에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서와 주민등록용지에 무인(손도장)한다’는 규정이 생겼으나 열손가락 지문을 모두 날인한다는 명시적 규정은 없었다. 그럼에도 신규발급자를 대상으로 열손가락 지문날인을 도입하고 1972년 이를 전국민으로 확대하였다. 지문날인은 1997년에 비로소 주민등록법에 명시되기까지 어떠한 법률적 근거도 없이 의무 아닌 의무로 존재해 온 것이다. 그나마 1997년 신설된 조항 역시 주민등록증의 수록사항일 뿐, 국민의 지문날인 의무를 규정한 것은 아니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가 국민의 지문을 수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 정권은 ‘간첩 색출’을 위한 것이라 했고 경찰은 범죄자를 추적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 전국민의 지문을 수집하지 않는 이유는, 뚜렷한 혐의 없이 국민의 지문을 수집하면 안 된다는 인권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한민국 국민은 만17세가 되면 국가에 나의 모든 것을 알리도록 훈육된다.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하면 안된다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알기도 전에 말이다. 지문날인 반대연대 윤현식씨는 “지문날인은 단지 손가락을 찍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의 순응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지문날인 반대연대는 지문날인을 포함한 주민등록제도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민등록’ 업무는 그 취지에 맞게 중앙정부부처인 행정자치부로부터 지방정부로 이양되어야 한다 △주민등록정보의 범위는 법률에 명확히 적시하여 필요최소한도로만 수집되어야 한다 △주민등록정보가 수집되고 이용되는 모든 과정에 정보주체인 본인의 권리가 완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열손가락 지문날인 강요는 폐지되어야 한다 △연령·성별·출신지역 등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주민등록번호는 임의의 신분증 번호로 대체되어야 하고 법률에 명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관의 사용이 금지되어야 한다 △국가신분증은 강제 발급이 아니라 국민의 필요에 따라 발급되어야 한다(http://fing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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