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0호 Network+Art
노재운표 아트입니다!

양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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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재운은 미술을 뿌리에 둔 미디어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미술 영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젊은 작가입니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주요 작업들은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습니다만, 일부 무리한 해석으로 인해 우리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볍게 그의 작업을 노재운표 아트라고 생각해보면서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노재운표입니다
사람들은 노재운의 작업을 감상하기 위해 전통적 예술 장르의 미학들을 동원해서 이해하려하고 표준화된 감상방식을 제시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노재운표 작업에 담겨있는 선택된 이미지와 영화(史)의 이해가 적절히 조화롭게 구성된 그것(?)과 넷 아트의 특징을 적절히 구성해 놓아 관람자들의 감상에 방해가 되는 것을 왜 모를까요? 물론 새로운 예술은 기존 예술의 흉내 및 파괴로부터 시작했기에, 노재운표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전통으로부터 이해하려는 노력을 부정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무리한 접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노재운의 작업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단!! 사람들이 말하는 노재운의 작업을 넷 아트(Net Art), 그 중에서도 넷.필름(Net.Film)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혹은 마노비치(Lev Manovich)가 언급했던 것처럼 브로드 밴드 시네마 혹은 매크로 시네마로도 생각해 보자고요. 아니면 노재운의 작업을 뉴미디어 작업이라고 봐야할까요? (이런~ 아무튼... 확인해보자!!)

노재운의 작업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가볍게 컴퓨터를 사용해서 작업을 한다는 점으로부터 시작해 봅시다(왜냐하면 용어나 장르에 맞추어 그의 작업을 해석하려는 무리한 시도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노재운의 작업은 컴퓨터를 통한 수학적 함수들에 의해 제작 및 조작됩니다. 그리고 작가가 채집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분절된 해상도의 극대화, 잘라내기 그리고 붙이기(Cut and Paste), 합성하기 등을 통해 생산해 냅니다. 노재운의 근래 작업들(Fatal Beauty, Mars, Crashes in S. Korea, Baudrillard in Seoul 등)에서 이를 잘 보여주는데, 작가는 자신이 조작한 내용을 몇 가지 그래픽 툴과 쿨레쇼프 효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가에 의해 조작된 현실은 20세기의 주요한 기술이라고 말들을 하는 몽타주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앞서 언급한 쿨레쇼프라는 몽타주 기법은 시간적 몽타주와 쇼트내의 몽타주를 나누어 이해할 수 있는데 노재운의 작업은 두 가지 다 포함해야할 듯합니다. 물론 후자의 것이 두드러집니다. 노재운의 작업에서 보면 영상을 구성하는 각각의 이미지들은 별개의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적 몽타주가 개입되면서 하나의 의미를 구축합니다(음... 여기서 중요합니다). 의미의 구축은 작가가 제시한 내용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만 관람자가 스스로 의미를 조작해내며 의미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감상자에 의해 구성된 자율적 조작 해석이 이루어지면 보다 다양하게 노재운의 작업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의 작업인 ‘치명적 아름다움(Fatal Beauty)’은 지난 2002년 14회 아시안 게임(Asian Game)때 방문했던 북한 응원단 이미지를 작가의 해석(치명적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는 감상합니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가 의미를 지원하기에 충분히 작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응원단과 배경음악을 모르는 외국인이 감상할 때도 관람자의 감상법은 사라지지 않고 자의적인 해석이 발동되면서 작업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상법은 노재운의 작업을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는 관람방식이 될 듯합니다. 다시 말해 조작된 내용을 능동적 해석방식을 열어두고 감상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스펙터클이라는 문제
알다시피 20세기 예술은 환영주의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현대 예술이 대중과의 거리가 점차 생기는 지도 모릅니다만, 환영이라는 매력적인 유혹은 어쩌면 우리에게 독(毒)일지도 모릅니다. 환영의 유혹은 미디어 환경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데, 방송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상품 광고들이 좋은 예가 됩니다. 광고와 같은 유혹적 시각중심 집합체는 우리를 스펙터클 사회 속의 피상적 군중으로 남게끔 합니다. 노재운은 이 점을 경계하고 있고 광고(휴렛팩커드를 중심으로)를 통해 스펙터클 사회가 제공하는 풍경에 대해 허구, 풍자, 주의, 질문을 던지며 우리에게 스펙터클한 요구를 그만두도록 권고합니다. 그러나 스펙터클한 이미지의 경계는 작가 스스로는 충분하게 갖춰진 상태이지만 아직 미술판(?)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미술 관계자들은 여전히 미술이라는 장르는 스펙터클한 요소를 지닐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음.. 그러니깐 그들의 판단과 작가의 실천사이에는 피곤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얘기지요).

노재운 개인전
노재운은 6월에 개인전(Skin of South Korea, 인사미술공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넷 아티스트로서 노재운이 보여줄 이번 전시에는 몇 가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이버 공간과 실제 공간의 사용입니다. 사이버 공간은 기본적으로 장소와 시간을 압축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실제 공간은 장소와 시간을 점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작가 노재운은 어떻게 해석할지 지켜볼만 합니다. 두 번째, 스펙터클과 작가 노재운입니다. 그가 미술 관계자들의 스펙터클 요구를 어떻게 극복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보여줄 전시에는 스펙터클의 눈이 아닌 작가의 시선을 (잠시) 지지하며 감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시·말·해 작가에게 환상적인 그 무엇(?)을 요구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그의 전시는 프로젝트 전시가 될 듯하다고 합니다. 전시(Skin of South Korea)는 작가가 마련한 장(Site)에서 유저들이 참여하는 장치가 마련될 듯합니다(작가는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남한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껍질 혹은 피부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보여줄지 저 역시 궁금합니다(아니면 정말 남한의 껍질일지도 모릅니다). 그럼 6월까지 그의 전시를 기다리면서 그의 작업(www.vimalaki.net)을 감상해볼까요?

P.S 4월은 투표의 달입니다. 투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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