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0호 여기는
탄핵 정국 속의 패러디 문화

이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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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탄핵 사태 이후 온라인 게시판과 개인 홈페이지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규탄하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탄핵안 표결에 참여한 193명의 국회의원들에 대한 성토와, 촛불시위 참여 제안, 4·15 총선을 통해 심판을 촉구하는 목소리, 그리고 내각제 개헌 음모론까지.

비판의 여러 방법 중,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어떤 작품이나 문구, 사진 등을 비틀어 비판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있다. 패러디라고 불리는 이 방법은 원본을 비판적 시각으로 모방하여 원본의 메시지와는 다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근의 몇 가지 사안들을 중심으로 네티즌의 패러디 문화를 살펴보자.

패러디의 사례와 방법
네티즌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사진 합성이다. 잘 알려진 영화의 포스터나 광고 사진에 특정 인물의 모습을 삽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광고 문안이나 익숙한 문구를 패러디한 텍스트 기반의 방법도 있지만 메시지 전달력 면에서는 이미지를 통한 방법이 효과적이다.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에 힘입어, 이를 패러디한 ‘월간 궁녀’나 ‘궁녀 센스’같은 패러디 저작물 또한 큰 인기를 끌었다. 모 인터넷 월간지는 별책부록을 활용하여 특집 면에 이를 싣기도 했다.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원본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게 되면서, 이미지를 활용한 패러디는 네티즌에게 가장 일반적이고 손쉬운 방법이 됐다. 이렇게 작성된 패러디 이미지는 디시인사이드 같은 사이트를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나 개인 홈페이지 등에 공개되고 그 중 흥미를 유발하는 재미있는 자료들은 ‘펌’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메신저나 미니홈피, 블로그 등을 통해 그야말로 순식간에 유포되며, 간혹 몇 분전에 내가 다른 이에게 보낸 파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몇 단계를 거쳐 전달된 다음 내게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탄핵 정국에도 어김없이 패러디 사진들이 많이 등장했고, 탄핵안 가결에 참여한 국회의원 193명의 얼굴을 맞혀서 터뜨리는 ‘국회기생충 박멸플래시 게임’까지 등장했다. 합성 사진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인 디시인사이드에는 지난해 네티즌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무적의 솔로부대’ 합성사진의 다른 버전인 ‘투표부대’ 합성사진도 올라왔다. 이런 패러디 저작물에 흐르고 있는 기본 정신은 비판이 되는 대상에 대한 저항이다.

패러디 문화와 건강한 안티 정신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패러디는 기성 혹은 주류 문화를 비틀거나 원본의 잘못을 꼬집는 방법으로 널리 활용돼 왔다. 온라인에 한정하여 보자면 패러디 문화의 힘을 보여준 상징적인 매체로 딴지일보를 꼽을 수 있다. 딴지일보는 원본의 단순 패러디에 그치지 않고, 네티즌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이슈들을 꾸준히 생산하고 비판적 메시지를 응집하는 데 있어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런 비판 정신은 청룡영화제나 가요대상 등을 패러디한 토룡영화제나 밥상가요제에서도 볼 수 있다.

<미디어오늘>은 토룡영화제나 밥상가요제 같은 시도에 대해 집단 이기주의와 맹목적인 ‘안티’를 벗어나 주류문화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고 평하며, 패러디 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에게 ‘미디어와 문화감시자’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

블로그와 패러디의 만남, 미디어몹
이승철씨(<미디어몹> 대표)와 최내현씨(<미디어몹> 편집장), 그리고 팬더, 카오루, 함주리, 너부리 등의 필명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딴지일보 출신의 필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정치 패러디 사이트 <미디어몹>이 지난 3월 2일 정식 출범했다. 미디어몹의 기사 콘텐츠는 삼류방송이라고 명명한 ‘ZBS’와 삼류주간 웹진 <르 지라시>를 통해 제공되고 있다.

<미디어몹>의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잡지 <르 지라시>와 블로그의 결합이다. 미디어몹 블로그를 사용하면, 누구나 정치, 사회 이슈에 대한 풍자논객이 될 수 있는데, ‘언론의 마지막 권력, 편집권을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걸린 <미디어몹> 블로그에는 매일매일 새롭고 재미있는 내용의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블로그의 핵심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트랙백은 어떤 이가 블로그에 글을 올렸을 경우 이와 관련되는 글을 내 블로그에 따로 올리면서 이 두 글을 서로 연결하는 일종의 링크와 같은 장치이다. <미디어몹> 블로그에도 이 트랙백 기능을 채택하고 있어 블로거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블로그, 바꾸는 게 대세다’라는 <미디어몹>의 광고문안 또한 모 이동통신사의 광고 패러디다. 이명선 앵커가 진행하는 ZBS의 ‘헤딩라인뉴스’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의 특종 보도 중 ‘한국 핵개발 선언’을 보면, 야당이 주축이 되어 부국강병과 일본의 재무장을 견제하기 위해 전술 핵무기개발을 개시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한국 핵무기 개발에 찬성하나 제발 핵무기의 미국수출은 금지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이 프로젝트의 코드네임은 ‘탄핵’이라고 한다.

<미디어몹> 편집부는 편집부가 작성하여 제공하는 정기적인 기사 콘텐츠 외에 웹진의 내용 중 3/4 정도를 별도 편집을 가하지 않는 네티즌 블로그 글로 채울 예정이다. 블로그와 결합한 패러디의 새로운 시도가 신선하다. 패러디 문화 속에는 네티즌의 건강한 비판 정신이 담겨 있다. 패러디는 패러디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단순히 패러디로 그치지 않고 악덕을 교정하고 실질적인 대안도 제시하는 힘이 있다. 건강함이 넘치는 다양한 패러디 문화가 봄과 함께 활짝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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