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0호 Cyber
도메인 네임, 정당한 권리자는 누구?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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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비슷하게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다녔던 어느 교육기관은 행정업무의 전산화 바람을 탔는지, 어느 해 갑자기 수강신청을 온라인 선착순으로 받기 시작했다. 워낙 학점 경쟁이 치열했던 곳이어서 였는지, 아니면 인지상정이라고 해야 할지, 학점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강의는 인기가 좋았다. 선착순이라는 말을 듣자 학생들은 좋은 학점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소문난 강의를 듣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했다. 피씨 방의 인터넷 속도가 최고라면서 수강신청 시작 1시간 전부터 피씨 방에서 머무른 일군의 학생들이 있었고, 좋은 학점을 주는 것이 어떤 과목인지도 잘 몰랐던 나 같은 학생은 정보를 얻기 위해 그 교육기관의 컴퓨터실에 자리를 잡았다. 비슷한 장소에 여럿이 모여 있으면 접속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서 수강신청을 하겠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고…. 어쨌든 수강신청 시작 5분전부터 연결을 시도한 나는, ‘접속자 수가 많아서 교육기관 홈페이지에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화면을 30분 이상 쳐다 본 후에야 홈페이지 접속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인기 있는 과목은 이미 모두 정원 초과된 상태였다. 거의 전화모뎀에 가까운 속도를 자랑하던 그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내가 어찌나 미련하게 느껴지던지. 간신히 수강신청을 마친 컴퓨터실의 학생들은 ‘선착순’은 재화 분배의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라면서 성토를 했었다.

선착순이 정당한 권리?
도메인네임은 어떤가. 도메인네임은 원칙적으로 선접수·선등록이다. 그래서인지 오프라인에서 광고와 좋은 상품생산 등을 통하여 유명한 상표를 가지게 된 상표권자보다는 도메인네임 선점자가 그에 대한 우선권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동안 유명회사를 나타낼 수 있는 도메인네임이나 유명단어를 포함한 도메인네임을 선점해 두었다가 비싼 값에 되팔았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처음에도 모든 도메인네임 선점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었으며, 지금은 이득을 얻기 위한 도메인네임 선점을 대체로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고 있다. 즉 선접수·선처리의 원칙은 다른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에 적용되는 방침이다. 이 때의 다른 법률이란, 주로 상표법, 부정경쟁방지및비밀보호에관한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인터넷주소자원에관한법률(2004. 7. 30.부터 시행, 이하 ‘인터넷주소법’)이다.

부당한 도메인 네임은 소비자를 혼란시키는 상술의 하나
우선 영업활동을 하는 회사간의 도메인 분쟁은 상표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이 적용된다. B라는 회사가 A라는 유명회사의 상표인 도메인네임을 등록한 뒤, 그 사이트에서 A의 상품과 유사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하자. 이 것은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한다. A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것과 같은 혼동을 일으키려는 위험이 있다고 하여 부정경쟁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 위 두 법에 의하면 이 경우 상표권자 A는 B에게 도메인네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청구할 권리가 있다.

만약 B가 다른 종류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하자. 양자(A, B) 사이에 거래상, 경제상, 조직상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여지는지, 또는 B의 상품판매가 A 상품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관계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이는 광의의 혼동이라고 하여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 되고, 도메인네임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viagra.co.kr’이라는 도메인네임으로 건강보조식품을 판매하던 한 회사는 그 유명한 발기기능장애 치료제인 ‘viagra’ 판매회사와 연관관계가 있다는 혼동을 일으키고, ‘viagra’의 식별력도 손상시킨다고 하여 도메인네임 사용 금지의 법원 결정을 받았다(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있어, 아직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안티사이트나 비사용자도 도메인네임의 정당한 권리자
특정 도메인 네임을 가지고 있는 이들 중에는 특별히 영업을 하지 않으면서, 개인적인 목적으로, 혹은 안티사이트를 운영할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거나, 아무런 사용도 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현재 국회를 통과한 인터넷주소법에 의하면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의 도메인이름등의 등록을 방해하거나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도메인이름을 등록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새롭게 개정되어 시행을 앞두고 있는 부정경쟁방지법은 이보다 더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제3자에게 판매할 목적, 그 밖의 상업적 이익을 얻을 목적’을 여기에 추가했다.

우선 개인적인 비영리 홈페이지에 사용할 목적으로 도메인네임을 보유한 것이라면 이는 국내의 제반 법률에 위반한 도메인네임의 등록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도메인네임을 안티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하여 사용한 경우를 보면, 국제적인 도메인네임 관리기구인 ICANN의 정책상 정당하다고 인정된 경우도 있고, 부당하다고 한 경우도 있다.

아무런 사용도 하지 않은 경우, 역시 부정경쟁방지법에 위반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국내 판례의 입장인 듯이 보인다.

하지만 새롭게 시행되는 인터넷주소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은 아무런 사용도 하지 않았거나, 안티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하여 도메인네임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까지 금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한다. 그러나 안티사이트 운영이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의 도메인네임 등록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봐서는 안된다.

안티사이트의 운영은 비판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며, 명백한 비영리 사용이다. 특별한 운영을 하지 않고 단지 도메인네임을 보유하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지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하여 그것이 유명상표권자나 제3자에게 판매하거나 대여할 목적이라고 해석될 수는 없는 것이며, 부당한 이득을 취하기 위한 보유라는 점에 대하여 명민한 검토를 거친 후에야 법위반에 해당한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선착순이 원시적인 경쟁방법이라고 성토했더라도, 우리는 그 선착순에 조용하게 복종했다. 선착순의 부작용을 막는다고,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그런 법 적용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상업적 사용이 아니라면 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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