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1호 영화
범죄의 재구성 혹은 사기의 재구성
감독: 최동훈. 출연: 박신양, 백윤식, 염정아, 천호진, 이문식. 2004년 작품

이안숙  
조회수: 3826 / 추천: 59
한국영화에서 범죄장르의 영화를 보게 되다니... 몇 년 전에 로버트 드니로가 나왔던 범죄영화인 <히트>를 보고 열광했던 기억이 난다. 은행털이범에 관한 영화로 은행털이범과 형사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잘 짜여진 내용과 배우들의 연기에 감동하며 우리나라에는 언제 저런 범죄영화가 나올까 생각했었다. 한국에서는 뉴스의 꼭지를 장식하는 가면 쓴 은행털이범들의 허술하고 우발적인 범죄만이 비춰지고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언제나 무인카메라에 잡히고 아니면 용맹한 직원에 의해 잡히고 마는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 그렇다고 범죄를 미화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영화가 현실을 뛰어 넘기는 힘들다는 의미에서 - 형태의 범죄가 대다수니 말이다.

할리우드적인 장르로 인식되는 범죄장르에 한편의 영화가 도착했으니 바로 <범죄의 재구성>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영화는 전문 사기꾼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 사기꾼들이 한명 씩 특기가 있었으니 사문서 위조, 금융사기 혹은 여자를 속이고 등쳐먹는 제비까지 다양한 특기를 가지고 모여들어 이른바 드림팀을 구성한다. 드림팀의 핵심은 김 선생(백윤식)으로 연륜과 믿음을 주는 외모가 특징이다. 그를 뒷받침하는 인물이 이 모든 사기를 기획하고 이끌어가는 최창혁(박신양)으로 얼마 전에 감옥에서 나왔다. 그들이 모의하는 범죄란 한국은행에서 위조수표를 이용한 50억 원 인출사건을 말하는데 사실 금액부터가 좀 약소하기는 하다. 로또로 100억이 당첨되는 이 시대에 다섯 사람이 50억이라니 끽해야 한 사람당 10억이 아닌가? 역시 아직은 이런 장르의 영화가 처음 만들어져서인지 배포가 너무 작다. 할리우드라면 한 500억 정도는 사기를 칠 텐데 말이다.

어쨌든 이들은 서로를 믿지만 실은 믿지 않고 있으며, 이것이 이들을 실패하게 하는, 아니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 사기를 관객들이 의심하게 만드는 구실을 한다.

이른바 범죄영화라면 계획을 치밀하게 짜고 범죄를 실행하는 순차적인 단계를 그릴 텐데... 이 영화는 범죄가 일어난 이후 경찰에 추격을 당하다 죽게 되는 최창혁의 죽음에서부터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제목에도 있지만 범죄의 재구성을 하게 되는 과정이다.

<박하사탕>처럼 현재에서 조금씩 과거로 거슬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계속 넘나들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들의 조사를 따라간다. 조사가 막히면 영화도 막히고 조사가 원활하게 되면 영화도 진행하는 형태로 말이다. 관객은 이 범죄를 조사하는 경찰의 시점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관객 나름대로 이 한국은행 사기사건을 재구성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혹은 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범죄의 허점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있으니 그건 바로 현재에 존재하는 최창혁의 형 최창호(박신양 1인 2역)와 구로동 샤론스톤(염정아)의 존재다. 그들만이 현재에 남아서 형사를 상대해 주고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알아왔듯 범죄영화의 어떤 인물도 결코 선량한 시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이것도 관객에 대한 사기,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맞다, 사기다. 그것도 1인 2역을 맡은 박신양이 정말로 영화 속에서도 1인 2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형인 최창호는 사기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김 선생(백윤식) 일당에게 사기를 당하고 자살했으며, 영화 처음에 최창혁의 죽음은 관객에 대한 사기이며, 김 선생 일당에 대한 사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결코 범죄의 재구성이기 보다는 전반적인 사기의 재구성을 담고 있다. 범죄란 여기서 한국은행 사기사건을 말하는데 이것은 김 선생을 응징하기 위한 최창호의 한판의 극적인 사기였다는 것으로 영화는 결말을 향해 간다. 어쩌면 모든 것이 사기라고 짐작하는 것은 경찰과 구로동 샤론스톤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들 마저도 어느 정도는 순진해서 모든 것이 사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가 아니라도 신문을 펼쳐보면 무슨 분양권 사기니 결혼사기니 등등 사람들을 속이는 범죄들이 난무하다. 사기를 당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사기꾼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하면서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사기영화가 아니고 형에 대한 복수라는 주요 테마를 가지고 있듯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지금의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아 괜히 우울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범죄의 재구성이 아닌 진실의 재구성이나 뭐 이런 식의 영화가 나올 수 없는 건 그것이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란 지금의 사회를 반영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니 말이다. 한국은행을 사기치는 것이 그렇게 쉬울까 싶기도 하지만 영화는 사실 그 사건 자체의 완전범죄를 설득해 내는 데는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바꿔 말하면 그 범죄의 완벽함이 아니라 최창혁의 김 선생에 대한 사기의 완벽함으로 이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의 재구성>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기를 당하는 것이 별로 기분이 좋진 않겠지만 만약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를 믿고 따르라고 한다면, 뭐 이런 말에 속아보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그러면 나중에 나도 증언하고 싶다. 정말로 그의 말에는 진실이 있었다고, 그래서 나는 믿고 싶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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