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1호 여기는
스포츠 게시판 들여다보기

이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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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시즌이 시작됐고 봄과 함께 프로야구도 개막했다.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각종 게시판에도 축구, 야구 얘기로 활기가 넘친다.

스포츠 게시판은 축구, 야구 게시판

포털을 비롯한 여러 웹사이트를 보다 보면 네티즌의 관심 스포츠는 축구와 야구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물론 축구와 야구가 오프라인에서도 최고의 인기 스포츠이니 이를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네이버는 메이저리그야구(MLB) 소식이 스포츠 메인 화면을 대신하고 있다. 다른 종목 소식을 알기 위해선 반드시 메이저리그야구 뉴스를 거쳐 가야 하는 것이다. 축구 대표팀 경기를 공중파에서 생중계하지 않을 경우, 스포츠 게시판은 방송사를 비난하는 메시지로 가득 찬다. 얼마 전 모 방송사는 사전 예고 없이 축구 대표팀 경기를 50여분 지연 방송하여 네티즌의 뭇매를 맞은 일도 있다. 축구와 야구 이외의 얘기를 스포츠 토론방에 눈치 없이 올렸다가는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스포츠 게시판은 시사, 정치 게시판만큼이나 ‘뜨거운’ 공간이다. 네티즌의 관심도 높을 뿐더러,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모두가 전문 해설가가 되고 때론 감독이 되기도 한다. 익명 게시판에는 욕설도 많이 등장할 정도로 핏대 올리며 논쟁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남자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치러진 직후의 스포츠 게시판은 그야말로 한바탕씩 홍역을 앓는다. 만일 부진한 경기를 했다면 스포츠 게시판은 새 감독 후보들이 어김없이 물망에 오르고, 선수 몇 명은 국가대표에서 탈락시킨다. 이런 흥분은 축구협회 게시판으로 그대로 전이된다.

스포츠 신문, 포털 스포츠 섹션

스포츠 게시판은 포털 사이트에서 주요 이슈로 부각하는 스포츠 기사를 고스란히 따라가게 되는데, 스포츠 토론방에 토론거리를 제공하는 포털 사이트의 뉴스 섹션은 스포츠연예신문과 아주 흡사하다. 스포츠신문의 헤드라인처럼 아주 선정적이며 검증되지 않은 자극적인 제목이 메인 화면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스포츠 토론방의 토론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LG 축구팀의 연고지 변경설이 나왔을 무렵 네이버에는 ‘호나우두 안양 입단?’(네이버 2월 25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링크가 메인 화면에 실렸다. 물음표에 담긴 의미는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한 번 봐주면 좋구...’ 정도 될까? 코엘류 감독 퇴진설이 처음 불거졌던, 포르투갈 언론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바로 이어진 기사는 ‘차기 감독 김호’였다. 물론 결정된 사항은 아무 것도 없고 다만 축구협회가 외국인 감독을 물색 중이라는 사실뿐이다. 프로야구 연속 안타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박종호 선수에 대한 기사를 보면, ‘박종호, 홈런으로 연속 안타 신기록 이어가’라는 기사가 ‘박종호 홈런 신기록’으로 뒤바뀐다(네이버 4월 16일). 이렇게 제목에 속은 네티즌의 분풀이 게시물 또한 스포츠 토론방의 단골 메뉴다. 토론 분위기 조성에 득 될 것이 없음은 물론이다.

스포츠 메인 기사가 스포츠 게시판의 분위기를 좌우하면서, 히딩크, 박찬호, 김병헌, 최희섭, 이승엽, 서재응, 안정환, 최성국을 빼면 사실 별로 얘기할 게 없어진다. 이들이 포털 메인 화면을 돌아가며 장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찬호나 이승엽은 잘하면 물론 기사가 되고 토론방이나 게시판에서 칭찬이 이어지지만 부진해도 여전히 적지 않은 이슈가 된다. ‘이승엽 안 풀리네, 빅초이 심호흡 중’ 같은 기사가 다른 종목의 승전보보다 높은 콘텐츠적 가치를 보인다. 축구 게시판에서 심심하지 않게 볼 수 있는 ‘히딩크 타령은 이제 그만’류의 글들에도, 2년이 다 돼 가는 현재까지 히딩크 효과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최근 이 인기 목록에서 빠진 코엘류를 대신할 새 인기 검색어가 곧 추가될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축구나 야구에서 말이다.

축구, 야구 아니면 얼짱

아, 아니다. 축구나 야구 말고 핫이슈로 떠오를 수 있는 스포츠 아이템이 있긴 하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지겹도록 듣고 있는 얼짱 신드롬이 스포츠 분야를 비껴갈리 없기 때문이다. 농구 얼짱 신혜인, 배구 얼짱 이형두, 골프 신데렐라 얼짱 안시현 등 종목별로 포진한 얼짱 얘기는 네티즌이 좋든 싫든 토론방이나 게시판에 불쑥불쑥 끼여든다. 얼짱과 축구가 절묘한 결합도 있다. 여자 축구 대표팀 김유진 선수다. 축구 얼짱 김유진 선수 얘기는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최종예선을 치르고 있는 여자축구대표팀 기사에서 쉽게 빠지지 않는다. 김유진 선수는 나이키사가 발표한 축구대표팀 새 유니폼 발표회에서 모델로 등장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중국의 모 기자가 ‘한국의 축구 미인’으로 소개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김유진 선수에 관한 이야기가 기사화 되었다면 물론 포털 사이트나 스포츠 토론 게시판 주요 면을 장식하게 된다.

네티즌은 속이지 못한다

작년, 남자 축구대표팀이 베트남과 오만에 연이어 패한 후, 축구 토론 게시판에 ‘축구대표팀 입국하면 계란 세례를 하자’는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이 있었다. 그리고 네티즌의 이런 모습을 취재해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 기자 본인이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이었다. 모 스포츠신문의 기자가, 폭행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던 김병현 선수 처지를 옹호하는 글을 올린 차두리 선수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욕설과 비난을 남긴 일이 있었다. IP 추적에 의해 전모가 밝혀졌다.

계란 세례 해프닝도 차두리 홈피의 욕설 장본인을 밝혀낸 것도 모두 스포츠 게시판을 열람하던 네티즌의 집요한 추적 덕분이었다. 스포츠 분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네티즌은 절대 속일 수 없다. 네티즌 중에는 특정 분야 스포츠의 전문가도 많다. 수준 미달의 기사를 쓴 기자는 토론방의 도마 위에 오르는 걸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스포츠 기사들은 당연히 스포츠 전문 담당 기자들이 작성하지만 ‘~카더라’식의 추측성 기사들에 대해서는 네티즌도 이제 신물이 났다. 스포츠 게시판에는 이런 식의 기사를 비판하는 댓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기야 ‘열린우리당 압승은 효리의 음모?’라는 기사를 써 갈기는 스포츠 신문이나 이를 받아 싣는 포털 사이트의 행태에 대한 비판은 이미 닳고닳은 얘기인지도 모른다.

스포츠 토론방이 보다 스포츠다워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페어플레이의 정신 아래 펼쳐지는 정정당당한 승부의 짜릿한 재미 때문이다. 프로 스포츠의 빗나간 승부욕이 스포츠 게시판을 때로 물들인다고 해도, 스포츠 토론방에서만큼은 우리 언제까지나 페어플레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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