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2호 기획 [KR도메인,2단계개방논란]
KR 도메인 2단계 개방, 위험한 도박?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한 신중한 검토 필요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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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R 도메인에 2단계 체계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즉, ‘abc.kr’과 같이 2단계에 이용자들이 이름을 등록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언뜻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KR 도메인 체계 자체가 바뀌는 만큼, 쉽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어 여기에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지난 5월 7일, 인터넷주소위원회(http://nnc.nic.or.kr)는 공청회를 통해 2단계 도메인 체계 도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KR 도메인의 경우 지금까지는 ‘jinbo.or.kr’과 같이 세 번째 단계에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등록하도록 하는 정책을 취해왔다. 반면, COM이나 NET의 경우에는 ‘jinbo.net’과 같이 두 번째 단계에 이름을 등록할 수 있다.

KR 도메인의 두 번째 단계는 CO, OR, NE와 같은 ‘공공 도메인’이나 혹은 SEOUL, PUSAN 등 ‘지역 도메인’이 이용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2단계 도메인은 인터넷주소위원회에서의 논의를 거쳐 생성된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주장은 2단계 도메인을 일반 이용자에게 개방하자는 것이다.

2단계를 개방하자는 가장 큰 이유는 이용자들이 짧고 기억하기 쉬운 도메인 이름을 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설문조사 결과 3단계보다는 2단계 체계를 원하는 이용자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3단계로 운영해 왔던 상황에서 도메인 체甕?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2단계 개방의 효용성과 발생가능한 문제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인터넷 관련 정책의 경우 한번 바꾸면 다시 되돌리기 불가능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 2단계를 일단 개방한 후에는 다시 3단계 체계로 되돌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2, 3단계 병용시 혼란 우려

윤복남 변호사는 2단계에 등록할 경우 기존에 3단계에 등록한 등록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가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처음부터 2단계 등록을 시행한 나라들과는 달리, 이미 co.kr이나 or.kr에 등록한 등록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새롭게 등록을 받는 2단계 이름 공간을 완전히 새로운 도메인 공간으로 보고 기존의 등록자에 대해 특별한 우선권을 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기존의 등록자가 2단계 등록에 실패한다면 기존의 등록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반발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bc.co.kr을 이미 등록하고 있는 등록자가 abc.kr 등록에 실패한다면, abc.co.kr의 등록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도메인의 가치가 하락함과 동시에 abc.kr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반발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기존의 3단계 도메인 등록자에게 2단계 등록의 우선권을 준다고 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abc.co.kr과 abc.or.kr의 등록자가 다르다면 누구에게 우선권을 줄 것인가? 또한 누구에게 우선권을 준다고 해도, 이는 기존의 도메인 등록자에게 더 많은 권리를 준 것일 뿐이며, 도메인 등록의 권리를 박탈당한 일반 이용자들의 반발을 사게 될 것이다.

기존의 등록자들이 2단계를 추가로 등록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기업들이 자사의 상표권을 보호하기 위해 신규 도메인이 생성될 때마다 도메인을 등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2단계 개방 찬성론자들은 일시적으로 혼란이 야기되거나, 추가 등록의 부담이 발생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2단계 도메인의 효용이 클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도메인 등록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

2단계 개방의 또 다른 근거로는 2단계 체계의 도입으로 도메인 등록에 대한 신규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침체되어 있는 도메인 등록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2단계에서 등록을 받고 있는 .COM과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해외 사례로는 독일의 .DE 도메인을 들 수 있다. .DE는 2단계 개방 정책을 취하고 있는데, 2004년도에 국가도메인으로서는 세계 최대인 7백만의 도메인 등록을 자랑하고 있다.

이에 반해 .KR의 경우 2004년 현재 60만개 정도로, 2003년부터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평화마을 피스넷의 전응휘 사무처장은 이는 검증되지 않은 편견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똑같이 2단계 개방 정책을 취하고 있는 캐나다나 프랑스같은 경우는 등록된 도메인의 개수가 한국보다 훨씬 적으며, 반대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3단계 등록만을 허용하는 영국의 경우는 현재 509만 개로 독일 다음으로 많은 등록 도메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등록 도메인의 개수는 단지 2단계 개방 여부로 설명할 수 없으며 경제 규모나 도메인 정책 등 다른 요인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국가 도메인의 등록수와 각국의 .COM 도메인 등록수를 비교해보면, 많은 국가도메인을 등록하고 있는 국가에서 많은 .COM 도메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2단계 개방을 통해서 .COM 도메인의 시장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편 .KR과 같은 국가 도메인은 .COM과는 달리 공공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단지 ‘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공 정책적 측면에서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주소 공간이 고갈될 우려 제기되

2단계 개방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주소 공간의 고갈’ 문제다. 현재 .COM의 경우 단어 두 개를 조합한 것까지 이미 등록이 되어 있어서 더 이상 쓸만한 도메인을 등록하기 힘들 정도로 주소 공간이 ‘고갈’된 상황이다. KR 역시 2단계를 개방하면 2-3년 내에 .COM과 같이 도메인 공간이 고갈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3단계 체계에서는 co.kr 공간이 고갈될 경우 biz.kr과 같이 새로운 2단계 공공 도메인을 생성하여 공간을 확충할 수 있지만, 2단계를 개방해 버리면 KR 아래에서는 더 이상 공간을 확장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미래의 이용자는 KR 도메인에 매력적인 이름을 등록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특히, 영어를 쓰는 라틴어 문화권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도메인 활용은 훨씬 제한적이기 때문에 도메인 공간이 더욱 줄어든다는 지적도 있다.

2단계 개방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주소자원 고갈에 대한 보완책으로 충분히 많은 수의 유보어(이용자가 등록할 수 없는 이름 목록)를 만들어 향후에 공공 도메인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다. 카이스트(KAIST)의 전길남 교수는 2글자 도메인 모두(aa-zz, 00-99)를 유보어로 하고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용자들은 더 짧은 도메인을 원할지 모른다. 하지만 위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명확한 해답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2단계를 개방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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