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2호 Cyber
컴퓨터 글꼴, 저작권 있을까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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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힘드셨지요. 앞으로도 많은 과정이 남았으니, 서로 도우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합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연말 그래도 정성을 보이겠다고 일일이 손으로 연하장 문구를 썼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연하장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글은 직접 쓰신 건가요? 초등학생 글씨 같아요”였다. 이런! 올해부터는 타이핑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컴퓨터에 쓰이는 이 훌륭한 글꼴들을 발명한 사람들은 그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일까? 혹은 글자는 인류의 공동자산이므로 다른 사람이 보다 쉽게 이용하게 하는 것이 좋을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글꼴

우선 컴퓨터용 글꼴을 만들기 위한 작업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대법원 2001. 6. 29. 선고 99다23246 판결). 글꼴 제작자는 한글 글꼴 1벌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2,350개의 완성형 글자에 대한 원도(原圖)를 작성하고,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이미지 파일을 만들고, 이를 기존의 서체파일 제작용 프로그램인 폰토그라퍼(fontographer)로 불러온 후, 폰토그라퍼의 윤곽선 추출기능인 트레이스 백그라운드(trace background) 기능을 실행하면 자동으로 글자의 윤곽선이 화면상에 추출된다. 이를 다시 마우스를 사용하여 윤곽선의 모양과 크기를 조정하는 등으로 좌표값을 변경하여 서체의 모양을 수정 가감함으로써 윤곽선 설정작업을 완성하고, 이와 같이 윤곽선이 완성된 서체도안을 폰토그라퍼의 데이터베이스 파일로 저장한다. 그리고 응용프로그램에 맞는 포맷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폰토그라퍼의 서체파일 자동 생성(generate)기능을 이용하여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 타입1이나 타입3 또는 트루타입(True Type)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형태의 파일을 생성시킴으로써 글꼴 파일을 완성한다.

위와 같이 생성된 글꼴 파일(소스코드)은 사용자의 입력에 따라 특정 모양의 글자에 해당하는 코드(code: 위치값 및 외곽선 명령)를 읽어 들여 이를 문자 크기 정보와 함께 하드디스크나 프린터에 내장되어 있?래스터라이저(rasterizer)로 전송하고, 래스터라이저는 문자의 크기에 맞추어 윤곽선을 표현하는 좌표의 위치값과 이들을 연결하는 직선 및 곡선을 계산하여 윤곽선을 그린 후, 그 내부를 원하는 색으로 칠하여 비트맵(bitmap: 點) 이미지를 생성한 다음, 모니터나 프린터 등 출력기를 통하여 출력하게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든 글꼴의 보호에 대하여 몇 가지 판례가 있다.

글꼴에 예술적 가치가 없으면 저작권도 없다

우선 만들어진 글꼴 자체는 저작물이 아니므로 저작권법상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인쇄용 서체도안과 같이 실용적인 기능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창작된 응용미술 작품으로써의 서체도안은 거기에 미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실용적인 기능과 별도로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적 특성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저작물로써 보호된다’고 한다(대법원 1996. 8. 23. 94누5632 판결). 다시 한번 이야기하면 인쇄용 글꼴의 도안 자체는 실용적인 기능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응용미술 작품에 해당하는 것인데, 한글의 모양을 인쇄하여 사상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주된 기능과 독립적인 예술적 특성이나 가치를 가지지 않으므로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다만 일정한 한글 글꼴의 형태가 갖는 차별적 특징이 현저하게 개별화되고 위 글꼴 자체가 일정한 제품임을 표시하는 표지가 된 경우 동일한 글꼴의 제품을 판매하는 행위가 부정경쟁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 판시한 바는 있다(서울지방법원 1999. 8. 13. 98카합3521 결정).

창작성 있는 글꼴파일은 보호한다

글꼴파일 자체는 어떠한가. 글꼴파일은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유사한 글꼴파일이 자신의 글꼴파일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①글꼴파일에 창작성(글꼴파일을 제작하는 과정에 있어서 글자의 윤곽선을 수정하거나 제작하기 위한 제어점들의 좌표 값과 그 지시, 명령어를 선택하는 것의 창작적 개성)이 있어야 하며 ②침해자의 글꼴 프로그램이 자신의 글꼴파일에 의존하여 만들었어야 하고 ③침해자의 글꼴 프로그램에서 윤관선의 수정 내지 제작 작업을 한 부분의 소스코드가 자신의 글꼴파일의 대응부분과 동일하거나 상당부분 포함되었을 것을 요구한다(대법원 2001. 6. 29. 99다23246 판결). 따라서 어떤 사람이 만든 글꼴파일 프로그램이 원래의 글꼴파일 프로그램을 파일의 포맷만을 변환시킨 채 전체로써 이용하고, 포맷의 변환과정에서 발생한 지엽적인 오류를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면 이런 것은 프로그램 저작권의 침해가 된다(대법원 2001. 5. 15. 98도732). 하지만 단순히 두 개의 글꼴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는 프로그램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서울지방법원 1999. 8. 13. 98카합3521결정).

또한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글꼴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므로, B가 A가 만든 글꼴 프로그램에 의하여 출력된 한글 글꼴을 모방하여 한글 글꼴을 도안하고, 이를 기초로 새로운 글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이는 프로그램 저작권의 침해가 아니게 된다(서울지방법원 1999. 8. 13. 98카합3521결정).

배타적 독점권보다 앞서는 사회적 공유

저작권의 보호대상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저작권법은 인간의 지적 창조물에 대해 법적인 보호를 부여하여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 한편, 그 보호가 지나쳐 지적 창조물의 과실을 사회가 충분히 향유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을 방지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저작권법 제1조). 글꼴 자체를 저작권으로 넓게 보호한다면 자칫 문자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인정하게 되는 것으로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글꼴파일 프로그램의 저작권은 보호하되, 글꼴 자체는 문자와 독립된 명백한 창작성이 인정되지 않는 한 보호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태도는 타당한 저작권법의 목적에 맞는 적당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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