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2호 북마크
지구를 지켜라! 그런데 어떻게?
『래디컬 에콜로지』, 캐롤린 머천트 지음, 허남혁 옮김, 이후, 2001

윤현식  
조회수: 3077 / 추천: 53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구호가 있다. ‘미래 세대의 필요 충족 능력의 감소 없이 현 세대의 필요 충족을 보장하게끔 인류는 발전을 지속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이 구호의 이면에 들어앉아 있다. 간단히 말해 환경을 보전하면서 발전을 계속 가져가자는 것이 이 구호의 의미다.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언뜻 보면 모순적인 이 구호는 우리 시대의 혼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즉, 먹고살기 위한 개발은 계속 되어야 하는데, 그 반대편에서 환경의 보존 역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은 환경의 파괴를 전제로 하고 환경보호는 개발의 억제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도래하면 환경보존 논리는 개발논리에 밀려 후퇴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회생이 최대의 목표였던 80년대 미국은 그 대가로 환경정책을 반세기나 후퇴시켰고,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을 위해 대한민국은 골프공화국이 되어버리는 현상 속에서 ‘미래 세대의 필요’는 언제나 뒷전이 된다. 그렇게 보자면 ‘지속 가능한 발전’은 장담할 수 없는 구호로 보인다.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라는 구호는 이제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되는 절실한 과제이다.

대기 온도가 올라가고 북극이 예상보다 빨리 녹아 내리고 있다는 우울한 뉴스는 다음 세대에 대한 걱정은커녕 당장 지금 세대에게 있어서도 절박감을 가지게 한다.

환경 재앙의 위기는 현실화되고 있지만 환경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지, 그 대응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환경단체들이 제 아무리 떠들어도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일이 있었는가보다”하는 정도의 감흥밖에는 남겨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환경문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상당한 용기를 요구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감이 잘 안 잡히기 때문이다.

캐롤린 머천트의 <래디컬 에콜로지>는 환경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래서 소중한 입문서의 역할을 한다. 입문서라고는 하지만 이 책은 그리 녹녹치 않다. ‘급진 생태주의’라는 제목 때문에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내용 하나하나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부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가장 기초적인 이야기부터 가장 무거운 이야기까지 생태문제와 관련된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환경문제와 관련된 제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제1부에서는 환경문제를 둘러싼 현상, 세계관, 환경윤리와 정치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개별적 윤리관과 환경의 문제가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논하는 부분은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자아에 근거를 둔 자기중심적 윤리관이 어떻게 생태중심적 윤리관과 부딪치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은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이 기본적으로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가를 지적한다.

책의 구분으로 2부는 ‘사상’, 3부는 ‘운동’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3부의 경우는 사상의 종류와 운동의 내용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속 가능한 발전’을 논하는 부분에서는 실제 친환경적인 삶을 살고 있는 토착민 및 친환경적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지속’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지만, 개발논리가 이들의 삶을 어떻게 황폐화시키고 있는지를 함께 보여줌으로써, 환경의 문제는 결국 개발이냐 지속이냐라는 이분법적 사고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입문서가 가지는 깊이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저자의 배려는 각 장마다 본문과 관련된 읽을거리를 충실히 소개하고 있는데서 잘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생태여성주의자이면서 급진생태주의의 이데올로그이면서도, 입장에 따른 경향의 과잉을 피하고 입문서로써의 중심을 잃지 않고 있는 데에서 저자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잿빛 지구에 푸른빛을 찾아주는 방법’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방법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저자는 생태주의의 국제적 연대가 그 방법의 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예전부터 이야기되었던 방법이고, 급진적 생태주의만의 독자적인 주장은 아니다. 입문서이기 때문에 더욱 자세한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을 수도 있다. 뭐 어쨌든, 지구는 지켜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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