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3호 표지이야기 [교 육 부 이 러 닝, "왜 이 러 니 ?”]
EBS 수능 방송, 무엇이 문제인가
교육부와 학교장 “자율”, 교사와 학생 “강제”

이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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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7일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절감 대책’이라는 ‘사교육비경감대책안’을 발표했다. 사교육 시장 조사 및 원인 분석과 대안 마련을 위해 작년 5-6월에 걸쳐 사교육비대책팀 및 해당 위원회가 구성된 이후의 성과물이다.

단기적으로는 과열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근본적으로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단기 4개안과 중·장기 6개안으로 총 10개 추진 과제를 제시했다. 10대 추진과제 중 첫째가 ‘수능 과외 흡수 : 이러닝 체제 구축’이다. 여기에 ‘EBS 플러스 1’ 채널을 수능 전문 채널로 특화하고 EBS 수능 방송을 실제 수능시험과 연계하겠다는 방침이 제시돼 있다.

“EBS에서 출제하겠습니다”

대책안이 발Ⅵ?후 순식간에 교육계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 것은 이러닝보다는 4월 1일 정식 오픈한 EBS 수능 방송이었다. 10년이 훨씬 넘게 외길을 걸어온 EBS 수능 방송이 갑작스레 뜨거운 감자 처지가 된 것은 EBS 수능 방송을 실제 수능시험에 반영하겠다는 교육부의 3차례에 걸친 강한 의지 표명 때문이다.

처음 실제 수능과의 연계라는 원칙 제시만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자 안 장관은 EBS 수능 교재만이 아니라 강의 내용에서까지 문제를 출제하겠다는 발언을 두 차례나 한 것이다. 입시 학원들이 EBS 수능 교재를 주 교재로 선택한 탓이다.

이러한 발언으로 세 가지 희귀한 현상이 새롭게 발생했다. 첫째는 EBS 수능 강의 내용까지 녹화·방영해 알짜배기만을 학습시켜주는 새로운 학원들이 생긴 것이다. 둘째는 학교 정규 수업 시간에 EBS 수능 방송을 방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셋째는 스카이라이프, EBSi, KT, 하나로 등 EBS 수능 방송 채널권자 및 회선업자들은 EBS 수능 방송 덕분에 신상품 판매 및 신규 회원 확보에 성공했다. 실제 스카이라이프는 이 정책을 계기로 불과 3-4개월 사이에 많은 신규 회원을 확보했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교육비 절감에는 별 효과를 얻지 못한 채 공교육의 모체인 학교 교육까지 학원화시킨 가운데 결국 스카이라이프 및 회선 업체들만 배불리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설득력을 얻은 셈이다.

엉터리 설문조사, 사교육비 절감 효과 모름

사교육비 절감에 EBS 수능 방송이 효과가 있으려면 실제 수능과의 연관성을 더욱 긴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안 장관의 발표에 기립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그리고 실제로 EBS 수능 방송이 사교육비 절감의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5월 27일 사교육비절감대책 발표 100일 기념 중간 평가 보고서에서 수능 강의 후 사교육비가 약 20% 절감됐다고 보고했다. 이 20%는 교육부가 제시한 공식적인 통계결과이자 언론을 통해 많이 인용된 통계수치다. 그러나 이 발표 직후인 6월 1일 전교조 및 진보교육연구소, 민노당 등은 교육부에 의해 실시된 설문조사에 심각한 결합이 있었다고 분석 평가했다. 교육부가 의뢰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리서치앤리서치’에 알아본 결과, 질문과 분석 결과가 허술했다는 것을 비공식적으로 시인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 두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된 문항은 4월 전후로 사교육비가 얼마나 변했는지 물어보는 질문과 EBS 수능 방송이 사교육비 절감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분석 결과다. 첫 번째 의문은 사교육비 감소 현상과 EBS 수능 방송 시청률 증가와의 상관관계다. 질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사실은 단 둘 뿐이다. ‘4월 이후 사교육비가 감소했다’와 4월 이후 ‘EBS 시청률이 올랐다’이다. 그런데 결과를 ‘EBS 수능 덕분에 사교육비가 감소했다’로 결론냈다. 두 번째 의문은 사교육비 절감에 대한 예상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긍정적인 의견보다 더 높음에도 긍정적인 반응인 더 크다고 보고한 것이다.

교육부 “자율”, 학교장 “자율”, 교사와 학생은 “강제”

반면 대부분의 교육 관계자들은 교육부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며 당시 안 장관의 발표에 대해 심각한 이의 제기를 했다. “정책의 실효성과 성과를 높이기 위해 언론을 이용했다”며 “그렇게 홍보되면 어느 부모고 학교장이고 학원이고 EBS 수능 방송에 목매달지 않을 입시 관계자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지난 6월 초 실시됐던 전국 수능 모의고사에서 상당 부분이 실제로 EBS 방송 및 교재에서 출제되자 학교장들이 파격적으로 EBS 수능 방송을 학교 수업에 이용하는 ‘오남용’ 사태가 벌어지고 일이 잦아졌다. 고득점과 대학 합격자 수를 높여야 하는 학교측 입장은 학부모가 원한다는 편리한 명분을 등에 업고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의 자율 시행 원칙이 문제로 지적된다. 교육부는 지난 4월 첫 방송이 나가기 전·후로 EBS 시청에 필요한 장비를 일선 학교에 설치시키고 EBS 수능 방송과 이러닝을 학교에서 적극 활용해 줄 것을 당부하는 홍보물을 대량 배포했다. 그리고 EBS 수능 방송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학교장에게 위임한 것이다.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EBS 방송을 잘 활용해 달라는 것과 이러닝을 공교육의 보완적 수단으로써 활용해 줄 것을 당부와 함께.

그러나 결국 학교장은 정규 수업 시간과 자율 학습시간을 이용하고 모든 학생에게 획일적으로 방송을 보도록 강제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셈이 됐다. 교육부는 자율에 맡겼고 학교장은 자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교육의 양 주체인 교사와 학생들은 틀라면 틀고, 들으라면 들어야 하는 강제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됐다.

EBS 수능 방송과 실제 수능과의 연관성 강조 발언, 그리고 ‘자율’이라는 선량한 어구 속에 숨은 학교장의 치외법권적인 구속력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게 공교육이 파괴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규 수업 시간 중에는 EBS 수능 방송 청취를 금지하고, 수업 외 시간에는 원하는 학생들만을 위해서 수준별·단계별로 방영하는 등의 원칙이 시급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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