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3호 표지이야기 [교 육 부 이 러 닝, "왜 이 러 니 ?”]
이러닝, 공교육에 활용하면...
기술에 고마워해야 하나,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이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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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닝이라 할 때 떠오르는 단상이 있다. “대학교 때 들었던 중급미시경제학 수업이 생각난다. 교수는 인터넷과 빔프로젝트,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수요곡선의 도출 과정과 모형을 입체적으로 영상화해서 설명해 주었다. 2년 동안 암기로 되내어야 했던 수요곡선 속에 숨겨진 논리를 드디어 오감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교수님에게 감사해야 하나? 기술에 고마워해야 하나?”

이러닝은 무엇인가

교육부는 이러닝을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전달되거나 활성화되는 학습 내용과 학습 방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산업자원부(산자부)의 ‘이러닝산업발전법’에서는 ‘전자적 수단·정보통신 및 전파·방송기綬?활용하여 이루어지는 학습’이라 정의돼 있다. 반면 학계에서는 이러닝을 ‘인터넷을 이용한 학습을 가능하게 하거나 지원하는 교육적 콘텐츠, 학습서비스 그리고 제공 솔루션 전체’로 상정한다.

국내에서 이러닝이라는 용어는 2001년 한국교육공학회의 춘계학술대회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됐다. “디지털화된 멀티미디어 정보와 그 정보들간의 네트워크로 형성된 학습환경에서 이뤄지는 교수-학습의 목적을 위해 공학을 수단으로 제공되는 모든 학습경험”, “디지털화된 정보를 매개로 학습 주체의 적극적인 정보 수집, 취사 선택, 편집 가공 및 평가 판단의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으로 전환하고, 이를 다른 학습자와 함께 공유하는 학습 활동”, “웹을 통해 제공되는 학습”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닝에서 ‘e’가 인터넷 기반 기술을 의미한다는 점, ‘Learning’의 주체가 교수자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이라는 점은 대체적으로 합의하는 듯하다. 산업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이행하면서 교육은 강사 주도식 교육과 교과서 기반 교육으로부터 점차 TV, 라디오, 컴퓨터, CD-ROM과 같은 기술 기반 교육으로 발전돼 왔다. 이러닝은 기술 기반 교육(TBT: Technology Based Training)으로부터 인터넷 기반 기술, 정보 통신 기술을 이용한다는 의미다. 단 Learning이 학습이냐 교육이냐 하는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닝은 산업인가 교육인가

올해 1월 의원입법으로 ‘이러닝산업발전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러닝 산업을 제도적·정책적으로 육성시키겠다는 취지다. 한국사이버교육학회 이상희 회장이 발의한 것으로 산자부가 소관부처로 돼 있다. 이에 따라 이러닝지원센터(ERLC), 이러닝산업진흥원, 한국사이버교육학회 등은 이러닝을 산업적으로 육성하고 교육적으로 활용하는데 필요한 홍보 및 설계, 기업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이러닝 시장은 매년 평균 6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시장 규모는 2조 5천억 원 정도로 내년도는 3조 5천억 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추산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세계 이러닝 시장 규모도 년 60% 이상씩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통과된 이상희 안에 따르면 이러닝은 ICT 기술과 인터넷 기반 기술 활용한 산업 및 교육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99년 인터넷 보급의 확산 이후, 그간 관련 법규정들은 노동부, 교육부, 정통부, 행자부 등 각 부처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각각 인터넷통신훈련제도, 평생교육법, 공무원사이버교육운영규정,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법 등으로 분산돼 있었다. 이러한 교육과 훈련, 학습에 사용될 이러닝을 보다 적극적으로 상품화해 산업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이 법안의 통과로 산업(e)과 교육(Learning)은 정식으로 혼인을 맺은 셈이다.

이러닝의 원리와 전망

이러닝은 원리적으로 학습자와 교수자 사이에 학습 내용(콘텐츠)이 매개한다. 이 메커니즘을 보다 세밀히 보면 학습자(A), 콘텐츠 생산자(B), 교수자(C), 서비스 제공자(D)가 있다. 이러닝의 기본적인 네 주체는 각기 전문화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한 주체가 여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교육적 관점이 아니라 산업적 관점에서 이러닝에 접근하고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교수자, 콘텐츠 생산자, 서비스 제공자의 각각의 상품이 필요하며 시장 수요가 필요하다. 현재 이러닝 교육 시장의 가장 큰 고객은 기업이다. 기업은 사원 재교육과 기술, 상품 및 기업 홍보를 위해 효율적이고 비용이 저렴한 이러닝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교수자, 콘텐츠 생산자, 서비스 제공자는 이러한 기업 수요에 맞춰 콘텐츠를 개발하고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로부터 거래가 생기고 상품의 유통이 발생해 시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러닝은 이미 초중등 교육 시장까지 뻗어나간 상태다.

이러닝을 공교육에 적용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결코 새로운 발상도, 시도도 아닐 수 있다. 다양한 의미 해석에서 보면 상호 이해의 폭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의미의 변천 및 확장 과정을 볼 때 인터넷에서의 VOD 시청쯤으로 교육부 이러닝을 예상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의 교육부 사업들 중에 이러닝이 있었는가 아닌가 하는 논란을 접어 둔다면 적어도 앞으로의 이러닝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닝이 학습이냐 교육이냐를 두고 이해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는 공교육의 대체냐 보완이냐의 문제와 연관된 민감한 부분이다. 명칭은 이러닝이라 불리지만 전혀 학습자 중심의, 자기 선택적 학습의 형태가 아니면서, 교수자가 필요 없는 형태의 이러닝을 학교 현장에 학습 보조용이라는 이름으로 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인터넷, 빔프로젝트, 파워포인트에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들’만 늘어가고 ,급기야는 공교육의 근본 자체가 흔들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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