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3호 기획 [주 민 등 록 제 대 안 을 찾 아 서]
개인별신분등록제실현을위한공동연대, ‘목적별 공부안’ 제시
호주제폐지운동과 정보인권운동의 연대를 위하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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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별신분등록제 실현을 위한 공동연대’가 자신들이 준비한 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국동성애자연합의 케이는 성적소수자의 고충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드러내기가 너무도 두렵다.”

케이의 말은 신분등록에 관한 딜레마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개인이 국가에 신분등록을 하는 것은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다. 그런데 왜 신분등록이 두렵거나 싫은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신분등록제도가 차별을 내포하고 있고, 이로 인해서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피해가 실재하기 때문이다. 시민권을 얻기 위한 신분등록 자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차별과 공포의 시작이라면, 만인“?보장되는 평등한 시민권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차별과 공포가 없는 새로운 신분등록제도를 상상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의 현행 국가신분등록제도는 호적제도와 주민등록제도를 두 축으로 하고 있다. 호적제도는 일제시대 때 식민지 통치 수단으로 도입됐고, 주민등록제도는 박정희 군사정권 때 국민 감시 수단으로 만들어졌다. 두 제도 모두 인권의 암흑기에 권력의 노골적인 대민 통제 전략으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두 제도의 결합으로 이뤄진 유례없이 강력한 감시 통제 시스템 하에서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호주제 폐지 운동

호적제도의 문제점으로는 ①호주제 ②가(家)별편제 ③인적편제 ④공시제도 등이 지적되고 있다. 그 중에서 호주제는 호주승계의 남성우선조항, 부성강제조항, 결혼 후 처의 부가입적 조항 등 가부장주의를 제도화한 것으로써 성차별적 제도의 대표적 사례로 비판받아 왔다. 한 세기에 걸친 호주제 폐지 운동은 최근에 이르러 그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16대 국회에 이어 17대 국회에서도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 상정될 예정이며, 국회의원의 대부분이 찬성하고 있는 만큼 호주제 폐지는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호주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던 호적제도 자체의 개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민법 개정안이 애초의 취지에서 다소 후퇴한 면이 있다는 점과 현행 호적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신분등록제도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이다. 호주제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점들은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반인권적 차별이 여전한 가운데 이름만 바뀐 호주제가 유지될 위험성도 존재하고 있다.

정보 인권 운동

정보 인권 운동은 신분등록제도가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점에서 비판해왔다. 현행 호적제도는 개인의 신분등록을 위해서 가문을 통째로 기록하고 있고(가별편제), 개인의 일대기를 일목요연하게 하나의 공부(公簿)에 기록하고 있으며(인적편제), 이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공시제도)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이른바 정상가족의 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직접적인 차별과 공포의 대상이다. 또한 호적제도와 주민등록제도가 주민등록번호로 연동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무방비 상태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이를 대중운동으로써 구체화시켜낼 수 있는 주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연대를 위하여

호주제 폐지 운동과 정보 인권 운동의 두 가지 맥락에서, 공동연대의 목적별 공부안은 획기적이고도 시의적절한 대안임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목적별 공부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완성하고 현실화하는 일이다. 호주제 폐지 운동과 정보 인권 운동은 연대해야 하고, 이를 통해 더욱 강해져야 한다.

다시 처음의 딜레마로 돌아가 보자. 시민권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공간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시민권을 위해서 차별과 공포를 감수할 것인가. 우리에게 강요된 부당한 양자택일을 거부하고 차별과 공포 없이 시민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상상하자. 자유롭고 풍요로운 관계맺음에의 권리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지금 함께 주장하자.



호주제 폐지와 관련된 진행상황


지난 16대 국회에서 끝내 처리되지 못한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이 17대 국회 개원과 함께 다시 제출된다.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지난 5월 31일 여성정책설명회에서 “17대 국회의 원구성 직후 호주제 폐지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 장관은 “17대 국회의원 중 90% 이상이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인바 있다.

이번 민법개정안은 16대 국회에서 제출됐던 안과 거의 유사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에 이 개정안은 민법상에서 호주 개념의 삭제, 가(家) 개념의 삭제, 자녀성의 부성강제조항의 삭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의견을 고려해서 호주 개념은 삭제하되, 가(家) 개념은 부부중심의 현실적인 가족 개념으로 전환하고, 부성승계원칙을 따르되 성의 변경 및 모성승계를 허용하는 안으로 조정되어 지난 16대 국회에 제출됐다.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민법의 절차법으로서의 호적법 개편이 곧 뒤따라야 한다.

그동안 현행 호적부에 대한 대안으로서는 이른바 가족부과 개인별신분등록부가 논의되어 왔다. 이번에 발표된 공동연대안은 기본적으로는 개인별신분등록부로써 기존의 개인별신분등록부 또는 일인일적제라고 통칭됐던 조대현 판사안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음은 현행 호적부의 특징을 통해서 각각의 안을 비교 정리한 표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해 그동안 호주제 폐지 운동에 중심에 있었던 여성단체들은 원칙적으로는 조대현 판사안을 지지하지만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가족부와 조대현판사안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한편 대법원 안은 제출된 바 없지만, 대체로 조대현 판사안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민법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정부측 안이 반대에 부딪혀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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