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3호 이동영의
그리드란 무엇인가?
자원을 공유하자

이동영  
조회수: 4371 / 추천: 66
요즈음 간간이 눈에 띄는 용어 중에 ‘그리드’라는 말이 있다. 그리드 컴퓨팅은 학계에서는 이미 관심의 초점이 되었고, 이제 차츰 일반인들에게도 소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호에서는 그리드 컴퓨팅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겠다.

그리드는 원래 격자, 모눈이라는 뜻인데, 이 뜻은 그리드 컴퓨팅과 얼른 연결이 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전산학 용어로는 대규모 분산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그리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출판사의 편집자라고 한다. 그리드의 개념을 소개한 책에 딱딱한 학문적 용어 대신 그리드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그리드라는 말은 전력 그리드에서 온 것으로 생각되는데, 전력 그리드를 먼저 설명하는 것이 컴퓨터 그리드를 이해하는 데에도 좋은 비유가 될 것이다.

전력 그리드

전력 그리드란 발전소, 변압기, 송전선 등으로 이루어진 전력망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용자가 전국 어디【??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기만 하면 어느 발전소에서 생산되어 공급되는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용자는 그 전기가 어느 발전소에서 생산되어 어떤 경로로 공급됐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한 지역에서 전력 소모가 늘어나면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가 자동적으로 공급되어 균형을 맞춘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집집마다 자가발전기를 사용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어느 집에서 갑자기 전력소모가 늘어나도 옆집의 남는 전기를 사용할 수 없다. 상수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상수도망이 서로 연결되어서 한 지역에서 물이 모자라면 다른 지역에서 끌어쓴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드 컴퓨팅도 이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에 있는 처리 용량, 저장 용량, 자료 등의 자원들을 통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사용자에게는 마치 전체 네트워크의 컴퓨터들의 능력이 합쳐진 하나의 거대한 가상의 컴퓨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용자가 자신의 PC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연결된 다른 컴퓨터들의 능력도 쉽게 빌려 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차츰 진화해 온 기술

그리드는 어느 순간 갑자기 발명됐다기보다는 오랜 동안 발전해 온 기술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드는 기본적으로 수십 년 동안 분산컴퓨팅이란 이름으로 연구되어 온 기술들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발전에 따라 여러 컴퓨터를 묶는 것이 현실화되고 일반화된 것이다.

기존의 비슷한 개념의 예로 컴퓨터 클러스터 혹은 클러스터링이 있다. 수십 대 정도의 PC를 묶어서 대규모 과학기술 계산 등에 사용되는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리드 컴퓨팅은 이것을 훨씬 큰 규모로 확장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드 컴퓨팅이 학계에서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예전에 할 수 없었던 거대한 규모의 과학기술 계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 가지 차이점은 클러스터링에서는 똑같은 컴퓨터들을 묶는 경우가 보통인? 그리드에서는 서로 다른 컴퓨터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만큼 만들고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던 파일 공유 P2P 네트워크도 그리드 컴퓨팅의 초보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소리바다 등의 P2P 네트워크를 거대한 하나의 저장장치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SETI 프로젝트(외계에서 오는 전파를 분석해서 외계인의 메시지를 찾는 프로젝트)도 네트워크에 연결된 수많은 컴퓨터들의 계산 능력을 모아서 쓴다는 점에서 그리드 컴퓨팅의 초보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드의 장점

컴퓨터들을 그리드로 묶어서 사용하는 것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 같은 자원을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므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PC의 이용 효율은 10%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사용자가 무슨 일인가를 시키기를 기다리며 놀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낭비되는 시간을 유용한 일에 사용할 수 있다면 전체적으로 이용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에서는 충돌 모의실험 등을 위해 값비싼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왔는데, 사무용 컴퓨터의 쓰이지 않는 처리용량을 이용하는 그리드로 이를 대신한다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PC 뿐만 아니라 값비싼 슈퍼컴퓨터나 연구장비 등을 공유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크다. 또 다른 장점은 수많은 컴퓨터를 묶어서 얻는 거대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아주 큰 규모의 과학기술 실험 등이 가능하게 되었다. 앞서 말했던 SETI 프로젝트가 그 좋은 예이다.

양날의 칼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그리드도 그 힘만큼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자료 유출 등 프라이버시와 보안문제의 가능성을 먼저 떠올릴 수 있고, 그리드의 엄청난 계산 능력이 암호 해킹 등에 악용될 우려도 있다. 흔히 어떤 암호를 깨려면 슈퍼컴퓨터로 몇 십 년이 걸린다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컴퓨터 프로세서의 속도 향상에다 그리드 기술을 더하면 예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