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3호 만화뒤집기
남성다운 남성의 승리(?)
<올드보이>

김태권  
조회수: 3180 / 추천: 60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은 초라한 인물이다. 영화 첫 장면에 보이는 취느?모습으로 등장한 그는 멋대가리 없음은 물론이요, 차라리 애처롭기까지 하다. 재수 없을 정도로 멋있는, 펜트하우스에 살며 요가로 몸을 푸는 그의 꽃미남 적대자와는 과연 정반대다.

거꾸로, 만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은 분위기 있는 사내이다. 아웃사이더를 자처함에도, 주위 사람들은 나름대로 주인공의 매력을 느낀다. 그는 세상일에 무심하지만, 주위의 세상은 그에게 묘한 관심을 보인다.

여기서부터 만화 <올드보이>는 지루한 마초 판타지가 된다. 한국과 일본의 성인(남성)만화에서 흔히 보게 되는 그런 세계관이다.

판타지 속의 마초! 남성만이 인간인 세상에서, 완벽한 마초야말로 정녕 완벽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에게 덤비는 자들의 동기는, 한갓 비뚤어진 질투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적대자는 끝내 이렇게 말하고 마는 것이다 - “(나도) 너 같은 사내가 되고 싶었는데.” 아직 만화를 보지 않은 독자님 탓에, 그 동기를 속 시원히 쓰지 못하는 점, 양지하시길.

이 대목에 이르러 우리는 허탈하다. 그토록 오래고 고된 감금이, 고작 초등학생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되었단 말인가. 하기야, 그럴 법도 하다. 성인(남성)만화의 세계관에 따르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멋진 마초에 대드는 자는 아무리 봐도 제 정신이 아닐 테니까. 과연 만화에 나오는 적대자는 광기 어린 용모를 가지고 있다 - 깨끗하게 면도한 갸름한 턱, 두피에 달라붙은 숱 적은 머리, 여성적인 선을 가진 얄쌍한 입술. 주인공의 남자다운 턱, 부숭부숭한 머리, 넓고 두툼한 입술과는 확실히 대조를 보인다. 마치 중성과 남성처럼. 그리하여 만화는 ‘교훈적인’ 주제를 전달하는 것이다. 중성에 대한 남성의 승리. 여성적 남성에 대한 남성다운 남성의 승리. 이것은 무거운 주인공과 가벼운 적대자의 설정에서 이미 결과가 나와 있던 승부이다. 아무리 봐도 주인공이 패배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만화 <올드보이>의 긴장감이 보다 떨어지는 까닭이, 단지 연재만화 구조라는 특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 영화는 주인공과 적대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배려했다. 주인공은 범속한 인물이 되고, 적대자는 매력적이다. 덕분에 영화 <올드보이>는 승부를 미리 짐작할 수 없이, 시종 서스펜스를 잃지 않는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나면, 묘한 질문이 고개를 든다. 이 영화의 주제는 무엇일까 - 폭력과 복수는 결국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 그러나 관객은 이미 영화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관객의 시선은 그 ‘피폐함’에 미처 가 닿을 여력조차 잃었다. 영화에 몰입한 나머지, 관객은 이미 제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놓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는 조심스럽게 브레히트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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