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호 북마크
여러분! 정보초고속도로 위에서 행복하십니까?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지음, 백욱인 옮김, <디지털이다>, 커뮤니케이션북스, 2000

김미혜  
조회수: 3862 / 추천: 52
1995년,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10년 후를 내다보면서 나날이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를 '낙관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도 1995년의 일이니, 그간에 일어난 변화를 생각한다면, 그로부터 8년이나 지난 지금 그의 책을 화제에 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뒷북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바타 꾸미기에 몰두하던 초등학생이 엄마의 꾸지람에 자살을 하고,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순식간에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사이버 테러가 발생하는 우리 인터넷 문화의 현주소를 생각한다면 ‘정보초고속도로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이 범상치 않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과연 정보초고속도로 위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네그로폰테 자신이 탈중심화를 디지털 시대의 특성 중 하나로 꼽았거니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독자 개개인의 몫일 것이다.

MIT의 미디어테크놀로지 교수이며, 미디어랩의 공동 창설자이기도 한 저자는 다행히 정보 관련 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파고들기보다는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네트워크가 어떻게 진화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재미있게 펼쳐 보이고 있다. 누구든 쉽게 디지털과 디지털 문화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놓았다는 것이야말로 <디지털이다>의 장점이다. 그리고 뒤늦게 그의 책을 만난 덕분에 얻을 수 있는 재미도 있다. 8년 전 그의 예언(?)이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을 발견하고는 "그래. 정말 세상이 이렇게 변했지."라며 맞장구를 치면서 느끼는 재미가 그것이다.
네그로폰테는 물질의 기본 단위인 아톰(atoms)에서 정보의 기본 단위이자 0과 1의 조합인 비트(bits)로 우리의 삶이 이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비트를 중심으로 디지털 혁명을 통한 변화의 의미, 그에 따른 미래 사회의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또한 네트워크의 진정한 가치를 정보가 아니라 공동체(community)에서 찾고 있다. 네트워크가 완전히 새로운 전세계적 사회 조직을 만들게 될 것이며, 그 속에서 모든 개인은 수신자이면서 또한 발신자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개인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야말로 네트워크의 진정한 가치라는 것이다. 네그로폰테는 디지털 문화 속에서 성장하는 새로운 세대의 잠재력을 주장하면서 기존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상호작용이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그것이 새로운 문화의 기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론이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치고 있다는 증거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의 보급이 확대되어 국가간·인종간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전쟁이 사라질 것이라는 낙관론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네트워크를 통해 각자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극단적 발언들이나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유언비어들이 빠르게 유포되면서 오히려 반목과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초고속 인터넷 사용율, 컴퓨터 보급율, 인터넷 이용 시간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우리 나라에서조차 사이버 테러는 날이 갈수록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네티즌들의 자정 능력에 대한 무한한 믿음만으로 그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고 보는 것이 과연 옳을까? 네그로폰테의 디지털 시대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일 뿐 우리가 ‘만들어 가는’ 변화의 흐름으로 그려져 있지 않다는 비판은 이러한 점에서 정당하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는 여전히 미래완료형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정보초고속도로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안내서의 세부 항목을 채우는 것은 네그로폰테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의 몫이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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