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4호 사람들@넷
파병철회 그날까지 널린 노래방은 계속된다
노래는 무쇠를 녹이고 삶을 부른다

김창균  
조회수: 2991 / 추천: 48
(주먹을 불끈쥐고 구호에 맞게 흔들며)
“정부는 명분없는 파병을 즉각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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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것이 아닌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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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음,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널린 노래방 개장

지난 7월 22일 12시,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서는 신명나는 노래방 한마당이 열렸다. ‘노래로 무쇠를 녹이겠다’고 모인 이들은 파병반대 널린 노래방 커뮤니티 동호회원들이다. 처음으로 노래방 마이크를 쥔 사람은 널린 노래방을 제안한 레드클레프(커뮤니티 아이디). 그는 직접 작사·작곡한 ‘총을 내려라’라는 노래로 노래방 개장을 알렸다.

“총을 내려라 총을 내려∼, 부시 내려라 부시 내려∼”
이어지는 스테이지 박쏭. “우주로∼ 우주로∼, 투쟁! 투쟁!” ‘앞으로! 앞으로!’라는 동요를 개사해서 부르며 노래방을 이어갔다.

널린 노래방을 본 시민들은 지나가던 발걸음을 더 이상 떼지 못했다. ‘뭐 하는 짓이냐’는 눈초리로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렇게 해서 파병이 철회되겠어”라며 “더 강력하게 해야지”라는 이들도 있었고, 널린 노래방 회원들과 함께 흥에 겨워 춤추고 노래하는 이들도 있었다.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서 널린 노래방을 개장하려고 하자, 대오를 갖추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경찰들. 경직된 모습으로 꼿꼿하게 서 있던 경찰들도 이내 웃음보가 터지고 만다. 구호를 외치고 팔을 흔들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던 기존의 시위방식과는 다른 모양새에 긴장이 풀렸던 모양이다.

노래뿐 아니라, 각종 몸짓, 저글링 하기, 피리불기 등

노래방에서 어디 노래만 부르랴, 널린 노래방도 마찬가지다. 각종 몸짓과 다양한 재주를 선보이며 노래방의 흥을 돋우었다. 토마토로 저글링 하기, 오카리나 불기, 피리 불기, 장구 치기, 주문 외우기 등등.

‘오구로’라는 아이디를 쓰는 회원은 책을 펼쳐들고 주저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주문을 외웠다. 그는 “별 다른 의미는 없다”며 “주문은 외국어 비슷하고 시 비슷하니까 ‘파병반대 하라’고 주문을 외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현재 번역중인 라틴어로 된 시 구절을 읽은 것이었다.

노래방의 진가는 해가 져야 비로소 나타나듯 저녁 시간이 되자, 널린 노래방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박쏭이 블로그를 통해 만난 충북제천 간디학교에 다니는 유탱이(커뮤니티 아이디)는 밤 11시 30분 경, 식구들과 함께 노래방을 찾았다. 유탱이는 장구를 쳤고 동생은 피리를 불었다. 마지막으로 4명의 식구들이 ‘바위처럼’을 부르며 ‘널린 가족 노래방’을 장식했다.

널린 노래방에 참여한 회원들은 처음에는 ‘저 노래 못해요’하며, 선뜻 나서지 못하고 쑥스러워하다가도 노래만 시작하면, 무언가에 신명이 오르는지 1-2시간은 기본으로 내리 불러 제겼다.

‘노래할 사람 여 붙어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녹아내릴 듯한 무더위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이들의 ‘액션’은 과연 얼마나 무쇠를 녹일 수 있을까? 여하튼 이들의 ‘1인 노래방 릴레이 시위’는 장장 나흘 동안 90여 시간이나 계속됐고, 참여인원은 70여명에 이른다. 박쏭, 오구로, 레드클레프, 이대리, 최재훈 등의 널린 노래방 주최 회원과 함께 그들이 조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하늘아이, 유탱이 등, 말 그래도 소문만 듣고 찾아 온 손님들도 20여명이나 됐다.

‘연설과 구호는 사절입니다’

파병반대 널린 노래방은 지난 7월 15일 박쏭, 오구로, 레드클레프, 이대리(커뮤니티 아이디), 최재훈 등과 함께한 ‘피스몹(peace mob)’ 뒤풀이 자리에서 레드클레프의 제안에 의해 시작됐다. ‘파병에 반대하거나 울분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널려 있다’며 ‘널린 노래방’을 통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바로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사람들 을 조직했다.

박쏭은 “항상 좀 더 재미있고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위 방식을 찾고 있다”며, “연설과 구호를 사절하고 관성화된 집회방식을 탈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전국민의 대대적인 호응 속에 각종 집회에서 하나의 고정된 방식으로 자리 잡은 촛불시위도 그의 눈에는 소극적이고 재미없는 방식인 듯 했다.

그동안 박쏭은 피스몹을 비롯해 다양한 퍼포먼스 형식의 시위를 펼쳐왔다. 최근에는 김선일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하늘을 보기가 부끄럽다‘는 구호가 적힌 박스를 쓰고 그의 동지인 오구로와 함께 사무실을 출퇴근 한 일도 있었다. 박쏭은 지금 또 어떤 퍼포먼스를 준비중일까.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노래 한 자락, 어때?

널린 노래방의 1차 개장은 지난 7월 25일 밤 10시를 기해서 폐장됐다. 박쏭은 “생각보다 사람들의 참여가 미진했다”며, “잠시 노래방을 점검하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씩 저녁 7시에 광화문 등에서 열대야를 피해 나온 시민들과 함께 이동식 노래방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혀까지 말려버릴 듯한 무더운 여름날, 속수무책 파병 전야 소식을 접할 때마다 밀려오는 짜증과 울분을 풀기 위해 파병반대 널린 노래방에 잠시 들러, 한바탕 노래 한 자락 불러 제끼는 것은 어떨까. 그러고 나면 몸도 마음도 시원해지지 않을까.

파병이 철회되거나 가수가 동나는 그날까지 널린 노래방은 계속된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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